[공연리뷰-극단성좌 익사이팅마당극 허풍] "태풍은 허풍 앞에 물러나고~!"
[공연리뷰-극단성좌 익사이팅마당극 허풍] "태풍은 허풍 앞에 물러나고~!"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2.08.31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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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끌어들이는 노련한 배우들의 개그애드립 만발

‘거짓말은 나쁘다.’ 라는 명제를 살펴보자.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하기 위한 거짓과 위악은 범죄다. ‘거짓말은 나쁘다’라는 원 명제에는 모순되지만 우리말에는 ‘하얀 거짓말’ 또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거짓이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또는 상대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거짓과 일정부분 상통하는 것이 우리말 속에 ‘허풍’이 있다.

'허풍' 출연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허풍에는 거짓말과 달리 해학이 내재돼 있다. 물론 심한 허풍으로 누군가 그 허풍의 진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허풍에 당한다면 그것 또한 ‘나쁜’거짓말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편의 공연으로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허풍’을 마주할 수 있다. 지금 대학로에서 뜨기 시작한 익사이팅 퓨젼 마당놀이 ‘허풍’(연출 권은아)이 그 주인공이다.

허풍은 40년 전통을 이어온 극단 성좌가 지난 17일부터 오는 9월16일까지 동숭동 이랑시어터에서 올리고 있는 창작마당극으로 올해 거창연극제 초청작으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던 작품이다.

허풍은 극의 주인공 이름으로 배우 김정균이 맡았고 뮤지컬배우이자 안무가인 주원성(한부자 역)이 콤비를 이뤄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시원한 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과장된 명성으로 결국 출마까지 하게되는 '허풍'

작품은 몰리에르 원작 ‘할 수 없이 의사가 되어’를 각색한 것으로 요사이 대학로에서 가끔 문제가 되고 있는 선정적인 개그극과는 차별된다. 탄탄한 스토리의 정통연극에 국악과 힙합의 옷을 입혀 퓨전코미디 마당극형식을 갖추고 있다.

부부 싸움 끝에 남편을 골탕 먹이고자 하는 부인의 계략으로 억지의사가 된 스가나렐은 우리의 마당극형태에 딱 어울릴만한 이름 ‘허풍’으로 대체된다. 원작은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벙어리 흉내를 내고 있는 아가씨(한부자의 딸 송이)를 스가나렐(허풍)이 치료하고 도와주며 벌어지는 유쾌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원작의 스가나렐은 허풍으로 변모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떨결에 ‘그 분’이 강림하신 유능한 무당으로 등극한다. 그 과정에서 한부자의 딸 송이의 병을 고쳐줘야만 하는 상황에 몰린 허풍. 송이를 치료한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허풍은 정보 수집에 나서고 이를 이용해 한부자의 재산도 슬쩍 탐낸다. 여기저기 용하다는 거짓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가짜 부적도 팔아가면서….

이렇듯 ‘허풍’은 엉뚱한 설정, 몽둥이질, 장황한 언어구사, 억지스럽고 과장된 동작들이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보수적이고 규범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들을 살짝 비트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다.  

김정균, 주원성 두 배우의 역동적인 액션씬도 빼놓을 수 없는 공연의 즐거움 중 하나.
극은 40대의 김정균과 주원성의 농익은 연기가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강약을 타며 흐름을 이끌어간다. 코믹한 몸짓과 표정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사람만의 장면을 따로 떼어 놓으면 마치 만담 공연인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들의 개그애드립 앞에서 웬만한 개그맨은 바로 ‘무릎 꿇어!’야 할 것 같다.

특히 허풍역의 김정균은 즉석에서 관객들의 고민해결까지 해주는 ‘무릎팍 도사’로 활약하며 관객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한다. 객석과 무대를 온통 휘젓는 배꼽 잡는 웃음은 덤.

공연의 안무는 오랫동안 뮤지컬 안무가로 활동해 온 주원성이 전체 안무를 맡아 일사분란한 동작과 각각의 개성이 돋보이는 춤으로 무대를 한껏 더 버라이어티하게 만든다. 여기에 감초역할로 웃음을 빵빵 터트려 주는 용녀역의 김민지와 황 서방 역의 이창규의 연기는 극을 탄탄히 받쳐주고 있다.

여기에다가 국악이 극 중 음악으로 자리하면서, 시대적 배경을 잘 살려 전체적으로 구수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분명 존재한다. 극 중 한부자의 딸 송이와 그녀 친구들의 과도한 가면 분장이 자꾸 거슬렸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세상과 단절하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했지만, 이는 극의 흐름에 있어 분장의 비약이었다. 한마디로 오버메이크업. 극 중 다른 인물과의 조화에서도 너무 동떨어져 이질감이 들었다.

또한 송이의 남자친구 진섭 역의 김건은 장동건도 뺨 칠만큼 멋진 외모가 돋보였다. 하지만 그의 수려한 외모에 비해 연기가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어 오히려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감점요인이다.

'허풍' 출연진들, 연습실에서 한 컷.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전반적으로 연출이 의도한대로 가슴 탁 터놓고 한 바탕 웃음으로 위로를 받을만한 공연이었다. 순수 리얼리즘만을 44년째 고집해온 극단 성좌가 예술로서의 연극과 대중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한 작품인 만큼 그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 연기와 액션을 음악과 함께 선보여 관객의 오감만족을 이끌어내며, '허풍'은 그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획기적인 작품을 보여줬다.

이번 주말, 사나운 태풍을 뒤로 하고 시원한 허풍을 보러 가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