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Hot Issue] 그 시인들, 이 세상 참 아름답게 가꾸네
[문학계 Hot Issue] 그 시인들, 이 세상 참 아름답게 가꾸네
  • 이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12.09.1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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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산돌, 재능기부 나눔시선집 두 번째 권 <뜨거운 향기 바람에 덜어내며> 펴내

살아서 마주 보는 일조차 부끄러워도 이 시절/저 불 같은 여름을 걷어 서늘한 사랑으로/가을 강물 되어 소리 죽여 흐르기로 하자/지나온 곳 아직도 천동치는 벌판 속 서서 우는 꽃/달빛 난장 산굽이 돌아 저기 저 벼랑 /폭포 지며 부서지는 우레 소리 들린다/없는 사람 죽어서 불 밝힌 형형한 하늘 아래로/흘러가면 그 별빛에도 오래 젖게 되나니/살아서 마주잡는 손 떨려도 이 가을/끊을 수 없는 강물 하나로 흐르기로 하자/더욱 모진 날 온다 해도 -76쪽, 시인 김명인 ‘가을江(강)’ 모두

<뜨거운 향기 바람에 덜어내며>(나눔문학촌)표지
지난 4월 재능기부 나눔시선집 1권 <사람이 향기로운 것은 사랑 때문이다>를 기획한 시인 고산돌. 그가 이번에 ‘재능기부 나눔시선집’ 2권 <뜨거운 향기 바람에 덜어내며>(나눔문학촌)를 펴냈다. 이 시집 제목에서 말하는 ‘뜨거운 향기’는 땡볕(모진 눈초리)에 헉헉거리는 아이들(향기)이다. 그 아이들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는 이 몹쓸 세상을, 시인들이 원고료 없는 나눔시로 ‘바람에 덜어’낸다는 그 말이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 강은교, 고산돌, 고정희, 공광규, 도종환, 안도현, 유안진, 이소리, 정진규, 정호승 등 시인 32명이 쓴 시가 한글과 일본글로 나란히 실려 있어 눈길을 쏠리게 한다. 우리 시인들이 재능으로 기부한 나눔시를 일본어로 옮긴 까닭은 일본에도 우리나라처럼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 아파하는 이웃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시집 수익금은 모두 어린이재단과 (사)행복한교육 등을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에 있는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데 쓰인다. 강순자, 강인옥, 김규태, 송중덕, 영희, 이광택 등 화가 12명이 그린 그림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확 트이게 만든다. 이 시집을 펼치면 마치 시화전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시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그림 때문이다.

이번 시집을 엮은 고산돌 시인은 ‘시집을 엮으며’란 머리글에서 “지난 봄, 선배 문인들과 마음 예쁜 이웃들이 모아준 사랑을 그물코 삼아 엮은 나눔시선집 첫 권 <사람이 향기로운 것은 사랑 때문이다>로 봄이 더디 오는 그늘진 곳의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전할 수 있어 몹시 행복했다”고 쓴다.

그는 “오늘도 너무 많은 아이들이 가슴 타도록 뜨거운 향기를 바람에 덜어내며 희망을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기에 다시 재능을 엮었다”라며 “이 시집을 통해 독자들 사랑이 전해져 아이들에게 희망을 키우는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적었다. 그래. 시인들이 쓴 시 한 편에 따른 원고료는 적지만 그 시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재능기부로 쓰일 때 그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 다 드러낼 수 있겠는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연탄 한 장’ 몇 토막

시집 70쪽에 실려 있는 시인 안도현이 쓴 ‘연탄 한 장’이야말로 이 재능기부 나눔시집에 딱 맞는 시인 것 같다. 그래. 가난한 시인이 힘들여 쓴 시 한 편을 원고료도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해 선뜻 내놓는 것도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자, 이제 슬슬 시집 속으로 나들이를 가자.

<뜨거운 향기 바람에 덜어내며> 출판기념회 뒷풀이를 겸한 음악회

<뜨거운 향기 바람에 덜어내며>는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에는 시인 윤동주, 김소월, 박인환, 김수영, 김춘수, 이형기, 조병화, 노천명, 고정희, 천상병, 정지용 등 이 세상을 떠난 시인 11명이 남긴 아름다운 시가 그늘진 세상에 한 줌 빛으로 환하게 뿌려지고 있다.

제2부 ‘흐르고 흘러 저물녘엔’에는 시인 도종환, 김용택, 강은교, 유안진, 김남조, 김현승, 정진규, 안도현, 정호승, 김명인 등 독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름값 꽤나 하는 시인들이 쓴 시가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 저만치 외진 구석에서 울고 있는 이웃들을 찾은 천사가 선물하는 큰 사랑처럼 사뿐히 내려 앉아 있다.

제3부 ‘그리움 돼 있겠지요?’에는 시인 공광규, 용혜원, 김수우, 임영조, 신현림, 이소리, 원재훈, 차주일, 김지혜, 이수종, 고산돌 등 지금 한창 문단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시인 11명이 쓴 시가 ‘뜨거운 향기’를 ‘바람에 덜어내’고 있다. 부록 ‘아름다운 동행’에는 나눔 시인들과 나눔 화가들, 나눔 친구들, 나눔 기업들 이름이 지문처럼 찍혀 있다.

▲책 내용 중 한 페이지
누리꾼 ‘summansa1’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고가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중에서 <재능기부 나눔시선집>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며 “말 그대로 좋은 일에 사용할 목적으로 시집이 나왔단다. 깨끗하게 정리된 정원을 보는 듯한 표지와 시들, 여러 화백들이 참가한 명화들이 좋았고, 어려서 교과서에 나왔음직한 옛 유명작가들의 시부터 현대 유명시인들이 작품이 도란도란 재미있게 엮어져 있었다”고 적었다.

5일~11일까지 재능기부 출판기념전 “아름다운 동행”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46쪽, 시인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몇 토막

시인 고산돌이 기획한 재능기부 나눔시선집 2권 <뜨거운 향기 바람에 덜어내며>는 시인들과 화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환한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이 시집은 그냥 시집이 아니라 잠자리조차 마땅치 않은 아이들 집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배고픈 아이들 밥과 반찬이다.

재능기부 나눔시집 2권 <뜨거운 향기 바람에 덜어내며> 출간을 기념하는 전시회도 잇따라 열린다. 5일(수)부터 11일(화)까지 1주일 동안 갤러리 바이올렛(서울 종로구 인사동 168번지 고당빌딩 3층. 문의 02-722-9654)에서 열리는 ‘아름다운 동행’이 그 전시회다.

이번 시집과 전시회를 기획한 고산돌 시인은 “빈곤아동과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가난한 시인과 예술가들이 재능을 모아 나눔시선집 <뜨거운 향기 바람에 덜어내며>를 출간하고, 그 나눔의 씨앗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시집에 수록된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 ‘아름다운 동행전’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고산돌 시인은 “지난 4월 ‘밥이 되는 시’(?)를 쓰고 있는 몇몇 유명시인들과 ‘밥이 되지 않는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이 빈곤 아동에게 ‘밥’과 ‘희망’을 나눠주기 위해 똘똥 뭉쳐 나눔시선집 1권을 펴냈다”며 “다시 화가들이 재능기부에 동참하여 갈등의 시대를 살며 아파하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소외된 이웃을 위로하고자 한글과 일본어 병행표기로 나눔시선집 2권을 엮어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아름다운 동행전’에는 곽덕준, 김규태, 김미효, 김석영, 김영인, 김혜자, 고영욱, 박서보, 박재익, 성하림, 신성희, 신현수, 이기선, 영희, 이경희, 이동기, 이명희, 정우주, 정현정, 최기운, 최종식, 홍형효, 다비드 예가네, 크리스티안 세마 등이 참가해 전시기간 내내 나눔시선집 판매와 사인회를 함께 펼친다.

이소리 논설위원 sc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