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경은 리케이댄스 예술감독] “제로, 10년 내공 고스란히 녹아있어… 레퍼토리에 주력할 것”
[인터뷰 - 이경은 리케이댄스 예술감독] “제로, 10년 내공 고스란히 녹아있어… 레퍼토리에 주력할 것”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9.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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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케이댄스 10주년 기념공연 ‘제로’, 21~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리케이댄스 10주년 기념공연 'ZERO'가 21일부터 2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10년이란 시간을 거치며 더욱 확고해진 리케이댄스만의 독창적 언어와 폭발적 에너지를 만날 수 있는 이번 공연은 빈 공간 속에 연속되는 에너지의 파동에 초점을 맞췄으며, 채워질 때마다 비운다는 의미를 담았다.

     춤의 본질인 움직임과 이미지에 충실하면서도, 빈터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번 공연은 오로지 ‘몸’의 움직임만이 중심이 되며, 다른 장치에는 기대지 않는다. 텍스트에 얽매이는 설명 대신 시적인 이미지와 몸의 움직임만으로 관객을 무대 속으로 이끌어 가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끌어안는다.

     이번 공연을 기획·제작한 리케이댄스는 안무가 이경은에 의해 2002년에 설립된 전문현대무용단으로서, 창작에 대한 열정과 열린 자세, 유연하면서도 폭발적인 춤 테크닉을 기본으로 타 장르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더욱 개성 있게 진화하고 있다.

     영혼이 담긴 예술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에 주력하며, 한국현대무용 발전의 선두에 서 있는 리케이댄스의 이경은 예술감독을 만나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리케이무용단 이경은 예술감독

-이번 공연 ‘제로ZERO’에 대해 소개해달라.
“지금까지 계속 해온 숫자시리즈의 일환이다. 리케이댄스 10주년 기념공연이기도 해서 ‘10’을 주제로 해볼까 하다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빈터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단 뜻을 담아 ‘0’이라고 했다. 0이란 숫자는 빈 공간이란 뜻도 담고 있지만, 어찌 보면 우주의 사인으로도 볼 수 있다. 덧붙여, 사람의 몸 또한 하나의 우주라고 본다. 이러한 의미를 두루 담아 올리는 공연이다. 이미지와 움직임에 주안점을 두고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도 20년 넘게 계속 춤을 추면서 이번 공연을 레퍼토리화 시켜 계속 가다듬으며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다.

리케이댄스는 ‘춘몽’으로 2007년 젊은 단체 최초로 경기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우수예술작품 다년간지원사업’에 선정돼 3년간 집중지원을 받은 바 있다. 그때를 발판삼아 리케이댄스는 보다 더 리서치와 주제확장에 힘을 쏟을 수 있었고, 당시 축적된 내공을 이번 공연 ‘제로’에서 어김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리케이댄스 10주년 기념공연 '제로ZERO'

 -다른 무용단과 비교해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며, 각종 수상을 휩쓸고 있다. 어려운 한국무용시장에서 무용단 창립 10주년을 맞은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금까지는 행운이 많이 따라줬던 것 같다. 앞으로는 보다 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으로 관객에게 보답해야겠단 생각뿐이다. 혼자가 아닌 우리 무용단과 함께 동행 하는 기분으로 색다른 방향의 작품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제작진과 단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거라 그는 누차 말했다. 끝없는 영감을 주는 단원들과 신뢰를 주는 제작진들이 팀으로 모여 농축된 에너지가 나올 수 있었던 거라고 말이다.

-멕시코 컨템포러리 댄스 페스티벌(2011), 일본 후쿠오카 프린지 페스티벌(2009)부터 베네수엘라, 캐나다, 미국, 독일, 아프리카 등 세계무대에도 참가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계속 보여줄 계획인지?
“공연단체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기존 것은 보다 더 튼튼히 하고, 앞으로도 새로운 레퍼토리를 구축해 나가며 해외무대에 꾸준히 설 예정이다. 우리 무용단 내에서도 해외 프로모토들에게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최소 1년에 5회 이상은 해외 공연을 하려고 한다. 지금 우리 세대가 해외진출에 도전해야하는 세대가 아닌가 싶다.”

-동양인 최초로 아프리카 세네갈 국제무용축제에 참가하며 세계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프리카에서 반응은 어땠는가?
“아프리카처럼 적극적으로 공연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나라는 처음이었다. 관객들은 마치 자신이 무용수가 된 마냥 우리보다 더 공연을 즐겼다. 유럽은 조용히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환호를 하는가하면, 일본은 대체적으로 반응이 없고 적극적이지 않다.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자신들이 먼저 음악의 리듬에 동요가 돼서 공연을 즐기더라. 아프리카에는 동양인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에 어딜 가나 시선을 받았다. 심지어 우리를 신기하게 여기고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았다.(웃음) 공연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극장을 꽉 채웠다.”

-최근에는 연극, 오페라에까지도 참여를 하며 활동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다.
“주로 안무만 하다가 연극 ‘오이디푸스’에는 직접 출연도 했다. 올해에도 국립창극단과 함께 하는 작품 외에도 여러 작업을 한다. 연극에서의 안무는 드라마적으로 꼭 필요한 움직임을 넣는 것이기에 내 안무세계에 있어서 상당부분 영향을 주고, 영감을 주기도 한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연극 안무작업은 계속 하고 싶다. 국립오페라단의 ‘지귀’ 안무를 맡았었지만 최근에는 연극에 비중을 두고 있다.”

-오페라 안무보다 연극 안무에 더 집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극 안무와 오페라 안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연극배우들은 무용수와 마찬가지로 맨몸으로 무대에 서서 움직임에 열려있는 편이다.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오페라 싱어들은 대게 움직임에 소극적이다. 오페라에서의 춤은 오페라 싱어 외에 따로 출연하는 무용수들이 하곤 한다. 내겐 이게 너무 이분화 돼 있는 느낌이더라. 노래 따로, 움직임 따로 한다면 정확한 주제전달에 한계가 있다. 뭐든지 본인이 직접 하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니겠나.”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마칠 즈음 이경은 감독은 마치 오랫동안 서고 싶었던 무대인양 커피숍 가운데 위치한 테이블에 양해를 구한 뒤 성큼 올라섰다. 숨길 수 없는 '무대본능'이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끌어올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무용뿐만 아니라 발레, 한국무용, 필라테스, 노(일본전통극) 등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이 중 현대무용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현대무용뿐만 아니라 발레, 한국무용, 필라테스, 노(일본전통극) 등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이 중 현대무용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처음에 체조를 접하고 몸의 움직임에 눈을 떴다. 여러 가지를 다 해봤으나 현대무용이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나랑 가장 잘 맞았다. 발레나 한국무용을 하기에는 내 몸이 단아하거나 고운 선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에너지 넘치며, 힘이 느껴지는 내 몸은 마치 현대무용을 하려고 태어난 것처럼 선천적으로 잘 맞는다. 이 몸으로 발레하고 있으면 아마 주목 받진 못 했을 것 같다.(웃음) 내가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뿐이다. 자유롭고 진보적이며, 틀이 없는 면에서 현대무용은 나와 비슷하다. 또한 작가의 상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라고도 생각한다.”

 

-작품 안무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구사하려는 이미지를 움직임을 통해 어떻게 가장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그래서 작품 준비할 때마다 리서치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드러내고자하는 주제를 잘 담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공연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살짝 말해 달라.
“한번은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정전이 돼서 곧바로 중지된 적이 있었다. 후에 전기가 돌아와 조명과 음악이 켜지고 무대를 다시 시작하니 관객들의 반응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아마 ‘정전’이란 하나의 사건을 공유해서인지 모두가 하나 돼 공연을 잘 끝낼 수 있었나보다. 또 언제는 무용수가 공연을 얼마 안 남겨두고 갑자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캐스팅이 바뀌고 디렉션과 동선이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바뀐 적이 있었다. 내심 불안했는데, 오히려 그게 원래 것보다 더 좋아서 레퍼토리로 하기도 하고…. 지난 춘천아트페스티벌 때 장마로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우리가 비를 맞으며 무대에 오르니, 관객들도 우산을 쓰지 않고 함께 비를 맞으며 관람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대무용은 대중과 거리가 느껴진다. 현역 무용가로서 생각하는 이를 타개할 개선방안은 무엇인가?
“첫째는 작품이다.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작품만큼 좋은 무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와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담긴 작품이라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는 소통이다. 서로 직접 손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커뮤니티댄스가 각광받고 있지 않나. 관객 개발을 위해선 관객에게 직접 몸의 움직임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관객 스스로가 공연을 보고 싶게끔 만들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마니아층이 형성될 수 있겠나. 공동체와 소통하며 알아갈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마케팅이다.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프로모션을 진행할 기획사나 프로모토가 따로 있어서 국내투어부터 해외투어까지 기획해 줘야 하는데, 국내 여건은 그렇지가 못하다. 현재 나 역시도 무용단 내에서 직접 제작부터 기획, 프로모션까지 모두 하고 있는데 너무도 버겁다. 작품에 있어서 안무자도 중요하고, 무용수도 중요하지만 제작기획사도 중요하다. 안과 밖의 교량역할이 바로 기획사이고, 앞으로도 기획사의 역할비중은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거다. 작품 포장부터 유통까지 책임질 기획사들이 늘어나고 자리 잡아야 한다.”

그는 작품 홍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특히 자신은 무리하면서까지 홍보비용으로 지출을 많이 한다고 했다. “무용계 안에서만 광고하면 무슨 소용이겠나. 예술계 전체가 공감해야 결국은 대중들도 따라와 준다. 이렇듯 소통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공연 광고에 신경을 쓰고 있긴 하지만, 정작 매스컴에서는 장기공연 광고에만 눈을 돌리는 탓에, 공연기간이 짧은 현대무용의 특성상 작품 홍보에 어려움이 많다고.

-헤어스타일이 참 인상적이다. 언뜻 무용가 안은미와 비슷한 이미지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헤어스타일 관리법이 따로 있나?
“대학입시 준비할 때부터 쭉 이 머리였다. 관리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열흘에 한 번씩 내가 스스로 밀고 있다. 안은미 선배는 내가 존경하는 선배다. 서로 만나면 머리 얘기는 하지 않는다.(웃음)”

-꿈은 무엇인가?
“매일 매일이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끝없는 나와의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10년 뒤에도 여전히 춤을 하고 있겠지만, 그때쯤이면 내 경험과 노하우를 주변과 후배들과 함께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몸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다. 말이 없고, 설명이 없다고 해서 춤을 어렵게 생각지 말고, 그저 누구나 갖고 있는 몸을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신나면 몸을 흔들고, 우울하면 몸을 수그리듯이 그런 것도 모두 다 춤인 거다. 예술이란 대중성이 없다면 결국 예술성에도 의미가 없다. 무용가 모두 그런 생각을 갖고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작품에 힘을 쏟고 있다. 그냥 한 번만 믿고 춤 공연을 보러 온다면 아마 춤의 세계에 빠질 거라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