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리케이댄스 ZERO, 비움을 향한 우주와 몸의 합일 뜨겁게 만들다
[공연리뷰]리케이댄스 ZERO, 비움을 향한 우주와 몸의 합일 뜨겁게 만들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2.09.22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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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10주년 기념공연...21~23일까지 아르코 대극장에서 뜨거운 공연 이어져

공연이 끝나고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몰려 오면서 잠시 멍~해졌다. 마지막 장면이 환영처럼 눈 앞에서 계속 펼쳐져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1일부터 23일까지 대학로 아르코 극장에서 올려지고 있는 현대무용단 리케이댄스(예술감독 이경은)의 10년의 역사를 비움이란 주제로 응축시킨 ZERO 공연에서다

예술감독인 이경은은 자연과 우주와 몸이 합일되는 과정, 그리고 시간의 비움을 선(禪)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리케이 무용단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미래를 뚜렷이 각인시킨 멋진 무대를 연출해냈다. 

공연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의 배경이  서서히 창으로 바뀌면서 바깥 세상으로 열려졌을 때..

관객들은 잠시 어리둥절 했다. 어? 뒷 배경이?

집중해서 무대를 다시  보니 무대 뒷편에 만든 창을 통해 공연장안과 밖을 하나의 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도 무대중앙에 알몸 가부좌를 튼 상태로 공연장 밖 담장너머 길을 응시하면서.

가슴 먹먹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번 공연의 의도를 하나로 함축시킨...그간의 것들을 겸허히 비우고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주제를 확연히 나타낸 장치로서 멋진 한방 이랄까?

쇼킹하면서도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왠지 모를 통쾌함이 펑!하고 가슴을 뚫어준다. 내 안에 억압된 것들이 무대 위 외부로 향한 창을 통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같다.

공연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공연 시작 몇 분 전 공연장을 들어서니 무대 중앙에 자그마한 몸의 무용수가 가부좌를 틀고 객석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막이 오르기전...정확히 공연 시작 전이었지만 이미 무대 위는 막이 올라있었다.

하나의 점에 불과한 작은 존재에서 시작해 성숙된 몸으로 자라기까지 리케이댄스의 오늘날 성장을 상징해 주는 장치이자 많은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였다.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이경은이 10년 동안 몸집이 자란 리케이댄스의 오늘을 보여주며 비움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우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집적이었다. 

이는 오랜 준비를 통해 리케이가 만들어졌고...또 리케이가 그동안 준비하며 기다려온 시간을 의미하는 오브제라 하겠다. 즉,공연의 시작과 끝의 맞물림을 수평계로 수평을 맞추 듯 빈틈없이 계산된 뛰어난 연출이라 보여진다.

생성과 분열(성장) 질서(결실) 소멸(죽음)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무대는 점 하나를 찍으며 탄생된 생명이 곧 무수히 많은 점으로 그 점은 선과 면으로 확장되면서 크나큰 우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간의 것을 자기부정을 통해 모두 비우는 공(空), 즉  ZERO로 돌아간다. 주체와 대상의 경계도 허물어뜨리고 그 모든 것을 담고 바라보고자 하는 나만 남는다. 즉 나는 공(空)이자 무(無)이자 제로(0)라는 것이다.

공연의 흐름은 도입부에서 전반기까지 리케이가 세상과 부딪치면서 오는 불안과 고민 갈등과 대립, 소통의 과정을  긴장된 음악과 유연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으로 대비시켜 관객들을 붙들었다.

전반부의 조심스런 긴장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무용수들의 동작이 빨라졌고 음악에도 불안을 소거시킨 좀 더 경쾌하고 힘이 느껴지는  것으로 대체됐다.

공연은 무대의상까지도 철저히 계산된 무대였다. 흰색과 검은색의 반복은 순백의 열정을 표현하고. 검정과 빨강의 대비로한 의상은 붉은 색이 더욱 깊어 보이도록 연출한 부분은 무용단의 뜨거운 열정이 성숙돼간다는 이미지로 상징화 시켰다. 이번 무대의상은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맡았다.

▲이경은 예술감독

후반부의 2/3 지점에서 예술감독인 이경은이 솔로로 나와 춤을 추고 자신의 무대의상을 꼭꼭 말아서 마지막 ‘훅’ 벗어버리는 장면은 알을 깨고 나와야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는 진리처럼 허위와 가식,두려움마저도 떨쳐버리고 세상과 당당히 마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진다.

마지막 이경은의 알몸 가부좌가 연출되기 전  무용수들이 죽은 시신에게 입히는 염복을 입고 나온 장면도 파격이다. 10년의 과정에서 쌓아온 내공은 살리되 마음속 교만이나 자만 등을 죽여버리자...또는 죽었다, 이제 리케이는 새로태어난다는 메시지로 전달된다.

이는 뒤 이은 알몸의 가부좌를 튼 이경은이 바깥 세상을 응시하는 장면과 연결시켜 뇌리에 뚜렷이 각인시키는 장치다.

이날 무용수들의 몸은 참으로 유연한 스프링 같았다. 언제든 자극에 휘어졌다 제자리를 찾듯, 동작 하나하나가 부드러움 속에 단단히 박힌 뜨거운 에너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연 중간 중간 무용수들의 몸짓에서 반가사유상이 떠올랐고 열반을 염원하는 중생의 몸짓들이 느껴진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경은은 말했다. "자연스러움을 통한 우주를 담고 싶었다"고.

그리고 10년의 세월의 꽉 찬 숫자보다는 비어있음으로써, 그 속에 요동치는 에너지의 응축인 '0'의 많은 철학적 의미와 우주적의미, 생멸의 이야기를 몸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했다. 늘 자연을 보면서 내가 만든 춤도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러한 "철학이 담긴 작품이 관객들과 만나 이사회 그 어딘가에 스미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이경은이 추구하는 자연과 우주,그리고 몸의 합일에 대한 철학이 잘 투영된 듯 보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대무용은 어렵다. 조금은 관객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무대 한 켠에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남는다.

무용평론가 이종호씨의 표현처럼 ‘씩씩한 이경은 그리고 빈틈없는 이경은’의 작품을 통해 ‘춤만이 할 수 있는 것, 리케이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오래도록 즐겁게 보고 싶다.그래서 더욱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