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좌석 없어 욕먹은 송순섭의 ‘백범 김구’
[기자의 눈] 좌석 없어 욕먹은 송순섭의 ‘백범 김구’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2.09.26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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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섭 명창의 창무극 백범 김구

지난달 29일 저녁. 전날 태풍 볼라벤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하루를 지나 또 다른 태풍을 기다리는(?) 폭풍전야였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백범김구’ 창무극공연 공연장 매표소 앞에는 좌석표를 받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자도 좌석을 받기 위해 줄을 서려던 중 공연의 총예술감독을 맡은 송순섭 명창(77세,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예능보유자)이 서 계시길래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려고 다가가니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짓고 계셨다.

다가가서 인사를 하는데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웅성 불평의 말들이 들려왔다.내용인즉, 초대권을 받았는데 좌석이 없다니 기껏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은 황당하고 어이없을 밖에.

이는 공연 주최측에서 빈좌석 방지를 위해 초대권을 과다 발행했기 때문에 일어난 '울지도 웃지도' 못할 해프닝이다.

우리 소리 공연은 아직도 일반관객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귀한 초대권을 돌렸음에도 정작 공연 당일 관객들이 제대로 들지 않아 어떨 땐 휑한 좌석을 보며 공연을 할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렇다보니 무대에 선 소리꾼들은 솔직히 힘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좌석 수를 넘어가도 초대권을 발행해야하는 웃지 못할 씁쓸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좌석은 우여곡절 끝에 복도에 앉아서 보는 것으로 타협이  됐다. 사실 이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쓰는 것은 우리소리 공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다.

해외 라이센스 대형뮤지컬과 오페라에는 몇 십만 원씩 하는 고가의 티켓도 좌석을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나는 상황들을 보고 있기에 말이다. 그래서 이날의 해프닝은 어쩌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기쁘기도 한 ‘사건’이다.

송 명창은 공연 처음과 끝의 인사말을 통해 여러 번 이에 대한 송구스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국악공연에 좌석이 없을 정도가 됐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며 면구스러운 일임에도 자조적인 위안을 했다.

창무극 ‘백범 김구’는 선생의 독립운동사를 그려낸 웅장한 대작

지난해에도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백범 김구는 백범 선생의 탄신일인 이날을 시작으로 광주(9.7)를 거쳐 서울대문화관(9.13)에서 열렸다. 다행이 예악당 공연에 이어 매 공연마다 성황을 이뤘다는 후문이다.

송순섭 명창이 공연 시작일을 백범 탄생일로 정한 것은 백범 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그 스스로 의지의 소산이다.

공연에 대한 평가를 관객들에게 들어봤다. “백범의 일생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돼서 의미가 있었다. 가슴 벅찬 감동이 있었다.”(길 모씨) “아버지도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이제껏 한 번도 할머니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이번 공연을 보고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한 할머니에 대한 마음을 생각해보게 됐고 이해하게 됐다.”(정 모씨)

기자도 이날 관객들이 느낀 것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무대장치가 좀 더 세련됐으면 공연이 훨씬 빛이 났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이런 공연에는 정부나 기업들이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고 관객들도 자신들 뿐만 아니라 친구, 이웃들에게 권해서 티켓을 사서 관람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공연들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백범 선생님을 말씀하셨다.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며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라”고.

송순섭 명창은 얼마 전 기자와 인터뷰에서 위의 백범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의 판소리가 우리들의 이야기로 세계인들이 함께 감흥을 느끼는 것이 우리 문화의 근원이며 우수성이 발현되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안주하지 않고 우리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예술혼을 불태우는 송 명창 앞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