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홍석화 (주)에이치컬쳐 대표이사·감독] 클레이 애니메이션, 아날로그 향한 디지털시대의 갈망
[인터뷰 - 홍석화 (주)에이치컬쳐 대표이사·감독] 클레이 애니메이션, 아날로그 향한 디지털시대의 갈망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9.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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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TV 볼 시간 없어…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주력

     찰흙 등으로 인형을 만들어 움직이며 촬영하는 형식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우리에겐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월레스 앤 그로밋’으로 익숙하다. 2차원의 단순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3차원적 등장인물과 배경들은 입체감은 물론 친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때문에 광고, 예능, 교육 등 가릴 것 없이 여러 분야에서 촉망받는 기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클레이 애니메이션 시장은 위축돼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불모지에 ‘움직이는 조각’을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뛰어든 조소과 졸업생은 이제 세계 시장에서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대표가 됐다. 맨땅에서 시작해 고지까지 올라온 그는 요즘 젊은이들의 꿈인 ‘성공한 벤처기업가’이다. 장난기 가득 머금은 그의 웃음은 상대방을 넘어서 주변 환경까지 밝고 유쾌하게 만든다. 익살스러우면서도 해맑은 그의 웃음을 거부할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홍석화 에이치컬쳐 대표. 그의 뒤에 보이는 '입술 안에 있는 눈' 로고가 인상적이다.

-입술 안에 눈이 있는 들어있는 로고가 특이하다. 어떤 뜻인가?
“눈으로 말한다는 뜻이다. 모든 걸 직접 보여주는 걸로 얘기 하겠다는 뜻이다.”

-에이치컬쳐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이름의 ‘에이치’(알파벳 H)는 ‘하면 된다’에서 나온 것이다. 또 내 이름의 ‘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고.(웃음) 꼭 애니메이션뿐만이 아니라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설립했다. 국내 몇 안 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회사 중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보통 애니메이션 회사하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떠올리지만 에이치컬쳐는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200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자체 기획물은 4개가 있고, 그 외에도 해외랑 꾸준히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외주제작도 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용과 교육용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특이하게 사무실에 정원과 텃밭이 있다. 꽃밭은 물론, 고추, 상추, 토마토뿐만 아니라 옥수수까지 심어져 있다. 사무실에서 재배해 먹고 있는 건가?
“사무실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아침, 점심, 퇴근 전에 돌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고추를 몽땅 수확해 직원들 모두 한 보따리씩 가져가기도 했다. 지난해 추석에는 토란이 풍년이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자체가 아날로그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갖기 위해서 텃밭을 가꾸기도 한다. 원래 사무실도 역삼동에 있었는데,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해 자전거로 20분만 나가면 양재천이 나오는 여기로(양재동) 이사 왔다. 덧붙여 말하자면, 사무실 가구들도 모두 손으로 직접 만든 것들이다.”

그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아날로그를 향한 그리움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이 발전하면 할수록 결국은 아날로그를 재현하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따뜻한 조명과 손으로 빚어 만들어진 그 느낌을 살려야 하는 게 관건이므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느낌을 늘 되살리기 위해 사무실 환경을 이렇게 조성했단다.

사무실 텃밭에서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한 홍 대표.

-대표작 ‘코드네임 아줌마’에서 스파이 아줌마란 캐릭터가 상당히 흥미롭다. 어떻게 탄생된 작품인지 궁금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하기 마련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캐릭터가 무엇일까 생각했더니 바로 우리 엄마더라. 우리 엄만 아줌마이고…. 그래서 거기서부터 시작하게 됐다. 시나리오도 잘 나와서 세계단편영화제에서 시나리오상도 수상했다. 아줌마는 생활력이 강하고 억척스럽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개인적인 관심을 갖지도 않고 특별한 이름도 없이 그저 아줌마라고 불리기 일쑤이다. 그런 면에서 난 아줌마가 스파이란 직업에 아주 적합하단 생각이 들었다. ‘코드네임 아줌마’의 등장인물들 모두 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이 맡은 일은 세상을 바꿀 만큼 중요한 것들이다. 요즘 할리우드 추세도 그렇지 않나. 영웅소재가 바닥을 보이고 있는 거다. ‘쿵푸 팬더’에서 뚱뚱한 팬더가 무술 고수가 된다거나, 못생긴 괴물이 주인공인 슈렉도 그렇고… 일상의 평범함에서 오는 비범함이 세계 대세인 것 같다.”

그는 아줌마와 배트맨을 비교하며, 구분되는 점은 아줌마의 능력은 본능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인간이란 궁극적으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사는 거라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좋은 유전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바로 우리들의 엄마이고, 아줌마인 것이라고. 아줌마는 단순히 한국문화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도 같기에 해외에서도 통할 것이라 생각했고, 처음부터 해외를 겨냥해 작업에 들어가서 모든 걸 영어로 제작했다고 한다.

    왼쪽부터 <코드네임 아줌마>, <붕가딩가>, <릭과 몬스터 친구들>

애니메이션은 원래 제작에서부터 투자금 회수까지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작업으로, 보통 극장용이라고 하면 최소한 2년은 걸린다고. 또한 수익은 주로 라이센스를 통해 얻는데, 캐릭터산업 위주로 돈을 버는 것. 그러다보니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 기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듯 여건 자체가 국내에서 흥하기 어려운 클레이 애니메이션이기에 그는 몇 년 전부터 해외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에이치컬쳐는 현재 미국과 애니메이션 신흥 시장인 브라질과 함께 작업 중이며, 극장용 애니메이션 진출을 위해 힘쓰고 있다. 어른보다 더 바쁜 게 바로 요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예전처럼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극장으로 가 바로 돈 내고 볼 수 있는 구조로 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

-클레이 애니메이션 시장에 어떻게 발을 들여놓게 됐는지 궁금하다.
“원래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었다. 전 무형문화재 108호 목조조각장 허길량 선생님께 사사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그건 바로 조각이 움직이는 거였다. 나도 조각을 움직이게 하고 싶단 생각에 독학으로 배우다가 YBM시사닷컴에 입사해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영어교재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에이치컬쳐를 설립하게 된 거다. 설립하자마자 EBS에서 투자를 해 외국인을 겨냥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DVD를 제작해 바로 해외진출을 할 수 있었다. 문화부 장관상도 수상하고 말이다.”

-성공한 젊은 벤처기업가를 보면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더라.(웃음) 대학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하다.
“대학생 때부터 여기 저기 무전여행을 많이 다녔다. 일본에 가서 1년 정도 있던 적이 있었다. 외삼촌 친구 분이 일본에서 사업한다는 말 하나 믿고 도움 좀 받을 생각으로 갔는데, 가서 보니 그 사업이 룸살롱 운영이더라.(웃음) 처음 석 달 동안은 클럽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낮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다가 저녁만 되면 양복을 다려 입고 출근하곤 했다. 싹싹한 성격 하나로 일한 거지 정말 못 하겠더라. 3개월 후 나와서 트럭운전과 페인트 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운전석 위치부터 다른 일본에서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애 많이 먹긴 했다. 페인트칠을 할 때엔 새삼스레 꼼꼼함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그 후에는 요코하마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벽화를 그려주며 돈을 벌었다. 그때 문화로 돈 벌어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맨몸이었지만, 진심과 열정 하나만으로 성공의 궤도에 올라섰다. 성공한 벤처기업가로서 요즘 벤처사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벤처기업이란 게 없는 시장을 내가 직접 만들어서 벌려놓는 거랑 똑같다고 본다. 겁 없이 지금까지 왔다. 지금도 하루하루 살벌하게 나아가고 있다. 욕심 없이 꾸준히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뭔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순수한 동기를 잃지 않는다면 적어도 망하진 않을 거라 믿는다. 요즘 삼성그룹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를 하면서 나 역시도 많은 생각을 해봤다. 어떻게 하면 오래 동안 꾸준히 잘 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그 답은 진실한 마음이더라. 일할 때 진실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연수원의 신입사원들이 내게 하는 말이 자신은 이 연수가 끝나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하고 싶은 일 하는 내가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난 그게 일하고 상관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일을 하든지 순수한 동기를 갖고 임해야한다는 거다. 그러면 엄청난 성공을 보장할 순 없어도 최악으로 치닫진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살짝 귀띔해 달라.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창시자이자, ‘클레이메이션’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윌 빌턴에게 내 작품과 함께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며, 당신이 필요하다’고 보냈는데,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 정말 만나자는 답장이 왔다. 윌은 ‘코드네임 아줌마’의 총감독을 맡기로 했으며, 미국에서의 투자는 자신이 이끌어내 보겠다고 했다. 때마침 정부에서 해외전문가초청비용을 지원해주는 공모에서 에이치컬쳐가 1등을 해 윌이 곧 한국에 와 우리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빠질 것 같다. 또 세계문화유산 관련해서 작업 중인 게 있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문화유산들을 다루려고 한다. BBC와 라이센스 얘기가 오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문화유산은 마켓형성이 확실하다. 작품을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 수익모델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작품을 하고 싶다는 그는 윌 빌턴에게서 더 나은 기술을 배워 뼈대부터 눈알, 손가락 하나까지도 정교하게 만들어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1975년 서울 출생 △현재 (주)에이치컬쳐 대표이사, 前 무형문화재 108호 목조각장 石雲 허길량 선생 이수 예정자 △2010 서울세계단편영화제 <Code name Azumma> 동상수상, 시나리오부분 수상, 2008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해외진출 유공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아라리쇼>, 2006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대상 특별상 <아라리쇼> - 감독, 시나리오, 2004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대상 특별상 <잉글리쇼> - 감독, 시나리오, 2004 서울 국제 카툰&애니메이션페스티벌 TV시리즈 부문 우수상 <잉글리쇼> - 감독, 시나리오(본선 3편 동시 진출- <잉글리쇼>, <왕초보영어회화>, 영화 <영어완전정복> 프로모션영상), 2000 단원미술제 조각부분 우수상, 2000 전국 대학생 조각대전 최우수상 외 다수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작품을 극장에 올리고 싶고, 또 훗날 아카데미상을 노리고 싶다. 그리고 중국에 지사를 만들 계획이다. 선진시장에 발을 걸쳐놓고 신흥시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구상 중이다. 당장의 앞날에 대해서는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꾸준하게 성심껏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