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 목마 타고 가을 속으로 떠난 2012 박인환 낙엽문학제
[테마기획] 목마 타고 가을 속으로 떠난 2012 박인환 낙엽문학제
  • 고산돌 객원기자
  • 승인 2012.11.01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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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색의 길을 걷다', 지난달 27일 망우리공원에서 열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목마와 숙녀’ 모두

가을이 깊어간다. 산이 울긋불긋 불타고, 들이 울긋불긋 불타고, 물이 울긋불긋 불탄다. 하늘이 울긋불긋 불타고, 나도 울긋불긋 불탄다. 너도 울긋불긋 불타고 우리들 사랑도 울긋불긋 불탄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울긋불긋 불타는 가을을 맞아 산사나 계곡 혹은 공원 등지에서 열리는 문학예술행사도 울긋불긋 불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이 가을 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박인환 낙엽문학제’다.

행사장 풍경

일간문예뉴스 [문학in]이 이끌고, 본지 서울문화투데이·한국작가회의 회보편집위원회와 프레스바이플이 손을 맞잡은 ‘2012 박인환 낙엽문학제-사색의 길을 걷다’가 심술궂은 가을비와 거칠게 부는 가을바람 속에서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문인과 화가, 일반인, 청소년 등 30여 명이 참가한 이번 문학제는 이날 낮 12시 박인환 시비 앞에서 열린 추모제를 시작으로 참가자들은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옷을 입은 채 행사를 치렀다. 이날 추모제는 가을비가 너무 거세게 쏟아져 박인환 묘소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행사가 박인환 시비 앞에 떡과 막걸리를 올리며 묵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 관계자들이 문학제에 앞서 박인환 시비 앞에서 묵념으로 예를 갖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거친 비바람 때문에 시인 박인환 묘소와 시비를 시작으로 이중섭,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지석영 묘소를 둘러보는 ‘사색의 길을 걷다’와 노래공연 등이 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100여 명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던 백일장과 사생대회 또한 참석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행사장을 향하는 참가자들.

고산돌 시인 사회로 열린 메인 행사는 문학in 이소리 대표 개회선언에 이어 시인 공광규(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인사말, 소설가 정소성 축사, 시인 박희호 축사, 이성이 시인 ‘목마와 숙녀’ 시낭송, 최소연 시인 ‘세월이 가면’ 시 낭송으로 이어졌다. 시인 맹문재가 쓴 (안양대 교수) ‘박인환과 김수영, 그 차이’는 계속 쏟아지는 가을비로 이소리 시인이 핵만 콕콕 짚어 정리했다.

 소설가 정소성은 이날 축사에서 “가을비가 쏟아지고, 가을바람이 거칠게 부는 악천후 속에서 열린 2012 박인환 낙엽문학제는 일간문예뉴스 문학in이 지닌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행사준비를 꼼꼼하게 준비했는데, 비바람이 몰아쳐 참석자들이 너무 적어 참 아쉽다. 그래도 이만한 사람이 모인 것은 문학in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한국작가회의 공광규(시인) 사무총장은 “외국에 나가보니 문학행사에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정도 숫자가 더 알찬 행사를 치를 수 있다”라며 “오늘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은 이번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를 쓴 준비위원들에게 시인 박인환 선생이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며 시인 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을 직접 낭독했다.

시인 박희호(문학in 주필)는 “앞으로는 한 달 앞에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뒤 행사날짜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한 달 앞 기상예보 확률이 30%쯤밖에 되지 않지만”이라며 “오늘 날씨가 맑았으면 울긋불긋한 단풍과 낙엽이 수북이 쌓인 이 망우리 공원관리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2012 박인환 낙엽문학제를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다음 해를 기약했다.

문학제 백일장에 참가한 치현초등학교 학생들

소설가, 유시연, 시인 이소리가 심사를 맡았던 이번 박인환 낙엽백일장에서는 혜성여고 1학년 김서연 양이 쓴 시 ‘가을’이 최우수상으로 뽑혔다. 일반부 우수상에는 시 ‘억새’를 쓴 성주영 씨가 차지했고, 청소년부 우수상은 시 ‘가을 단풍을 물리친 비’를 쓴 문다원(서울치현초등학교 3학년) 양이 차지했다.

일반부 장려상은 산문 ‘단풍’을 쓴 채성실 씨가, 청소년부 장려상에는 시 ‘가장 멋진 그림’을 쓴 문시원(서울치현초등학교 5학년) 양이 차지했다. 우수상 2편(일반부 1명, 청소년부 1명)과 장려상 2편(일반부 1명, 청소년부 1명)은 서울문화투데이, 일간문예뉴스 [문학in] ‘글방앗간’에 차례대로 실을 예정이다.

비가 온다.
망우공원에도 낙엽과 함께 비가 온다.
빗속에 보이는 가을은
먼 옛날의 기억을 불러온다.
그 추억의 옆에도
그 추억의 위에도
비가 온다.
추억도 젖으면 낙엽이 되는가.

비가 온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젖은 추억과 함께 비가 온다.
눅눅히 젖은 추억은
이 늦가을 오후의 그림자와 같다.
이 그림자 끝에도
가을 낙엽이 젖어
옛 추억도
옛 우정도
옛 그리움도
옛 아름다움도
모두 젖어 낙엽처럼
흩날린다.

이 가을도 젖으면 추억이 되는가.

-‘2012 박인환 낙엽문학제’ 최우수상 김서연 양 ‘가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