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칼럼] 정동극장의 명품전통공연장 가능성이 보인다
[공연칼럼] 정동극장의 명품전통공연장 가능성이 보인다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2.11.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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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린 지난 5일 정동극장에서 올려진 국수호 안숙선 김성녀의 <명인전>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지난 5일 정동극장에서 열린 '명인전'

 

이 자리는 정동극장(극장장 최정임)의 특 기획으로 우리 전통예술 명인들을 한 무대로 초청해 공연과 함께 이들의 숨은 이야기로 재미를 더했다.

대한민국 대표예술가로 꼽히며 ‘명인’으로 칭해지는 이들 세 사람의 품격있는 무대를 한자리에서 보기는 좀처럼 어렵다. 그래서 이날 공연은 여러모로 의미가 더 컸다.

이들은 젊은시절 국립극장예술단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선후배이자 예술의 동지로  동고동락하며 최고의 예술세계를 교류해 왔다.

공연은 명무(名舞)국수호 선생이 <장한가(일명 한량무)>로 막을 열고 뒤이어 안숙선 명창이 가야금 병창 <호남가>로  화답하면서 시작부터 뜨거웠다.

국수호 선생은 60이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춤사위는 유연하고도 힘을 지녔으며 여성적인 교태(?)마저 흘렀다. 제2의 춤인생을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국 선생은 물이 올라도 단단히 올라 있었다.

특히 남무에 이어 입춤에서는 그의 무용단의 이름 디딤처럼 국선생의 발디딤 춤사위는 마치 종달새가 재잘대며 나뭇가지를 옮겨다니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이렇듯 그의 쉼 없는 예술적  탐미는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날 공연의 여러 의미 중 한 가지를 꼽는다면 한동안 침잠해 있었던 국 선생이 왕성한 활동을 재개하면서 관객들과 간접적이지만 대화로 소통한 자리라는 것이다.

안숙선 명창은 판소리의 영원한 ‘프리마돈나’, ‘춘향’답게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와 이별가를 오랜만에 가야금 병창을 곁들여 특유의 콧소리 음색으로 멋들어진 소리를 뽑아냈다. 이에 걸맞게 이태백 국립창극단 악장이 북장단으로 추임을 맞추었다.

올해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맡은 김성녀 감독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명품입담’으로 관객과 두 명인 사이의 거리를 바짝 당겨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국수호, 안숙선은 각각의 스승들과의 일화를 비롯, 함께 공연을 다니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 둘의 모습을 조명하며 때로는 폭로에 가까운 일화들을 소개해 관객들의 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관객들은 저절로 손뼉을 치고 발장단을 맞추며 명인들의 한바탕 놀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관객들을 웃고 울리는 가운데 국수호 선생의 입춤에 안숙선 명창의 구음으로 이별가가 받쳐지면서 공연은 ‘휘모리’ 장단으로 이어졌다. 춤과 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하나로 어우러진  마지막 무대는, 한 쌍의 원앙이 노닐 듯 사랑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공연의 여운이 남은 관객들을 세 명인이 무대로 초청했지만 관객들은 이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이는 정동극장 객석 경사도가 높아 관객들이 무대 쪽으로 쉽게 내려가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날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한 관객은 “모처럼만에 속이 확 뚫리는 공연을 봤다”며 “이렇게 제대로 우리 소리와 춤을 보여주는 명인들의 자리가 자주 마련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실제로 명인들의 정통 소리와 춤을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다. 그나마 지난 5월, 문화재보호재단에서 열었던 판소리 다섯마당 무형문화재들의 ‘득음’의 경우는 꼽을만한 무대였다.

정동극장은 상설 춤공연인 <미소>로 많은 국내외 관객을 불러모으며 전통예술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명무전'과 같은 명품 공연을 계속 올려야 하는 것은 정동극장에게 던져진 숙제일 듯도 하다.  <미소> 대중화에 성공을 거둔 것처럼 명인전에 이은 예인전을 상품으로 내세워 리나라 최초의 공연장인 원각사의 맥을 이어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