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울려퍼진 태권도 기합소리
도쿄에서 울려퍼진 태권도 기합소리
  • 이수경 교수/일본도쿄가쿠게이대학
  • 승인 2012.11.2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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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가쿠게이대 태권도동아리, 축제 기간내 태권도시범으로 큰 박수 받아

한국어 차렷, 경례!! 로 시작과 끝 맺고,  하나, 둘, 셋, 넷... 외치며 리듬 맞춰

필자가 재직 중인 도쿄가쿠게이대학교는 11월22일부터 3일간의 학교 축제가 시작되었다. 그 전날엔 전체 교수회 등 중요 회의 4개가 연속으로 있었기에 저녁까지 회의를 했었고, 그 뒤에 필자는 외부에서 빌린 귀중한 자료 복사 및 정리 때문에 심야가 되어서야 연구실을 나섰다.

▲ 태권도부 학생들 시범

새벽에 겨우 잠들었기에 축제 당일은 솔직히 쉬고 싶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축제 분위기도 볼 겸 필자가 고문으로 있는 우리 학교 태권도부 학생들의 무도 시범을 응원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향했다.

아름다운 숲으로 이뤄진 캠퍼스 곳곳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고, 평소엔 여유가 없어서 볼 수 없었던 하늘과 단풍과 캠퍼스의 어우러지는 풍경이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그림처럼 다가왔다.

태권도 시범 시간에 맞추려고 부시시한 얼굴로 서둘러서 갔건만 그래도 지도 교수가 왔다고 반가워하는 애들이 고마워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했다. 그 중의 몇 명은 작년에 필자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태권도 교류에 참가했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이 무대 위에 오르자 흥겨운 음악과 더불어 태권도부 동아리 부장의 간단한 태권도 설명이 있었다. 한국의 무도이고, 선이나 유연성이 아름다운 무예라는 설명과 더불어 몇 가지 시범을 알기 쉽게 보여준 뒤, 단체 시범이 있었다.

모든 시범에는 차렷, 경례!! 라는 인사로 시작과 끝을 맺었고, 동작에는 하나, 둘, 셋, 넷 등을 외치며 리듬을 맞췄다. 그런 동작은 전부 한국어로 표현되었다. 

▲태권도 격파시범. 한국어로 구령을 지른다.

물론 한국어 발음이나 기합력은 분명 필자가 방문했었던 한국 체육대 태권도학과 학생들처럼 전문적 특기생들이 아니기에 그들의 예리한 동작이나 매서움을 볼 수는 없었으나, 우리 학생들이 공부와 알바 사이에 시간을 만들어서 열심히 연습한 노력이 질서 정연한 움직임으로 나왔고, 태권도를 스스로가 즐기고 있음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시범 무대이기도 했다.

돌려차기나 이단 옆차기 등으로 송판 격파 등의 시범이 이뤄질 때는 관객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박수를 쳤었다. 겨루기 때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 양보 없는 진지함이 보였고, 단체 대련 때는 일사 불란한 움직임과 발차기 등으로 태권도의 깔끔한 선의 동작이 예술적이었다. 동작 하나하나마다 역할 분담을 맡은 학생들이 마이크로 설명을 덧붙여서 알기쉬운 태권도 소개가 되기도 했다.

▲태권도부 여학생들의 시범

약 30분 정도로 모든 시범이 끝나자 [우리 태권도부 동아리에서는 이번 축제 때 찌지미(파전 종류를 일본서는 재일 교포들이 사용하는 발음을 따서 찌지미라고 부른다) 판매 부스를 만들었으니 여러분들이 오셔서 태권!! 이라고 말씀하시면 20엔을 깎아드리겠습니다. 저희 부스에도 오셔서 많이 팔아주세요, 태권!!] 이란 말로 학생들 음식 판매 선전까지 곁들였다.

관객들의 박수와 웃음 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동아리 학생들도 무대를 마친 만족스러움으로 모두가 무대를 내려왔다.

▲태권도 동아리 학생들과 필자

그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수고했다고 격려를 하면서도 가슴 속으로는 이렇게 우리 학생들이 태권도와 한국 음식 문화까지 즐거이 소개하는 이 평화로운 광경과는 달리 한일 정치/외교가 엉뚱한 곳으로 치닫고 있으니 마음 한켠에선 불편함을 불식할 수 없었다.

우리 학생들의 밝고 순수한 한국 문화 사람이 어떻게든 시민 교류로 이어져 든든한 한일 외교 관계를 구축시키는 힘이 되어 준다면 하는 바램이 간절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학생들과 함께 한국의 태권도 관련학과 학생들이나 태권도 관련 선수들이 방문해 줘서 공동 시범 무대를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향후, 필자가 얼마전에 개설한 한국학 연구소를 통해서 이런 지속적인 문화 교류에도 한일 관련 기관 등의 도움을 받아서 좀 더 좋은 형태로 발전시키도록 이어진다면 좋겠다는 다짐을 가졌다.

시범 후에 동아리 학생들과 사진을 찍은 뒤, 그들과 헤어져서 필자는 시끌벅적한 음식 부스 쪽으로 향했다.
강의실 사이의 공간에는 음악 공연 코너가 설치되어 있었고, 강의실 주변 길 옆에는 벼룩시장 처럼 학생들의 불필요한 용품 판매 코너가 즐비하였고, 미술교육학과 학생들은 즉석 스케치를 해주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모든 분야의 교육학 전공 과목이 있기에 다양한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서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음식을 판매하는 곳에는 나름대로 코스프레를 하고선 음식 선전을 즐기는 학생들도 있었다. 대부분이 동아리 별로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교내에 설치된 학생들의 먹거리 잗터.김치찌게와 찌지미

연간 몇 백명의 학생들 수업을 갖고 있기에 가는 곳마다 학생들이 나를 알아보고선 인사를 걸어 온다. 의외로 어제 회의 탓인지 교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의 장기 자랑에 웃음으로 화답을 하면서도 오래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간단히 격려말만 건네고선 학교를 빠져 나왔다.

마음 어디선가 뿌듯한 기분으로 캠퍼스의 단풍 숲을 빠져나와 집으로 오니 관서 지방에 사는 언니와 같은 오랜 친구로 부터 선물이 왔다. 필자가 과로로 빌빌거리는걸 잘 아는 터라 매실을 봄에 사서 깨끗이 씻어 말린 뒤, 꿀에 듬뿍 절였다가 적당히 매실 이 꿀을 흡수하여 오동통해졌기에 꿀절인 매실을 큰 병 가득히 보낸 것이다. 동의보감을 적은 허준이 말한 보약 그 자체이다.

게다가 여름에 매실이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흔들어 줘야 하는 지극 정성의 음식임을 잘 알기에 더욱 더 가슴으로 감사를 느낀 순간이었다. 그녀도 학생들 가르치느라 바쁜데다 몸도 약한 사람이기에 필자를 더 이해해 줬는지 모르겠다. 먹음직 스런 밤이 듬뿍 들어간 약밥까지 한 상자 만들어서 같이 보내왔으니 얼마나 마음과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는지는 충분히 이해하리라.

2012년 여름 이후 한일 외교가 냉각기였기에 그 여파가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 오는 도쿄에서 때로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들의 한숨 소리를 들어야만 했기에 마음이 무거웠던 한 해 였으나, 맑은 가을 하늘에 힘차게 퍼진 태권도의 구령 소리와 동아리 학생들의 웃음, 멀리서 나를 생각하며 정성스러이 음식을 만들어 보내준 따스한 친구의 사랑으로 오랜만에 마음이 푸근해지는 하루가 되었다.

▲행사에 쓰인 물품들의 분리수거도 철저히 하는 학생들
일본은 지금 권력 다툼 중임은 주지하는 바이다. 기존의 [민주당] 노다 정권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아베신죠의 [자민당]은 자위대의 국방군(일본은 패전 때 군대를 갖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국제 사회에 복귀했고, 지금의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다)화와 대외 파견 및 현지에서의 교전권을 주장하며, 항구히 군사를 포기하고 외국의 전쟁터에서 교전권을 갖지 않겠다는 평화 헌법 9조의 개헌을 주장하고 있고, 교과서 내용 개정을 공약으로 하고 있다. 즉, 주변 이웃, 특히 한국 중국에 대해서 교육을 포함하여 강경히 대처하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오사카의 하시모토 [유신의 모임]도, 도쿄도 지사를 사직한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당]도 오십보 백보다. 모두 강력한 국가를 위한 우경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미 시대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의 평화 노선과는 다른 길을 향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일본을 평화적인 미래로 이끄는 길이 아님을 잘 알기에 위기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아베, 이시하라, 하시모토 대연립 정권]이 세워지게 되면 우경화 뿐 아니라 전쟁론, 핵 무장론 조차 현실화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이시하라는 도쿄 도지사 시절 때 부터 핵 무장론을 공공연히 주장하였다.

그렇게 되면 주변국도 맞서기 위한 군비 무장을 의식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 동아시아 평화 구축의 구조는 무너지며, 정상적인 배움의 터는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1945년 상반기에 일본은 전쟁 수행을 위해 초등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의 휴교를 명하고, 학생들은 공장이나 군수산업체, 방위체로 들어가야만 했고, 그런 내용이 당시의 주요 일간지 1면을 채우고 있다.

정치가의 자손이란 이유로 정치가가 된 세습의원이 많은 일본 사회.
그러한 특권층 출신이 강행하려고 하는 우경화 정책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시대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할 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필자는 우리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들이 지속되도록 적극적인 국가간 청소년 및 시민 교류가 활발히 이뤄져서 전쟁과는 결코 무관한 동아시아 사회가 유지되도록 각계 각층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0년이 넘어도 일제 강점기 역사 해결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어떤 이유든 전쟁이 용서되는 사회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몇 몇의 호전주의자에 휘말려서 어두운 미래를 만드는 우행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은 다가오는 대선이나 총선에는 현명한 판단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국민의 심판이 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