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박물관 시스템 전문가가 절실하다
[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박물관 시스템 전문가가 절실하다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 겸임교수
  • 승인 2012.12.07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스템과 매뉴얼의 중요성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 겸임교수
지난 23일은 연평도 포격 2주기였다. 2년 전 북한은 연평도에 170여발의 포탄으로 우리 영토를 무참히 공격했다.

해병대원과 민간인 각각 2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으며 16명에게는 중경상을 입혔다. 가옥과 시설의 피해역시 막대했지만 야속하게도 일상화된 인터넷 개인기기를 통해 우리국민들은 축구 생중계를 보듯 그 상황을 구경해야만 했다.

우리 군은 무능했으며, 정부와 정치권은 좌충우돌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 때도 같은 상황은 반복되었다. 이때 자주 회자되었던 것이 매뉴얼이다.

매뉴얼이 없거나 갖추어져있어도 현실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책임자는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오판을 할 경우 더 큰 사태로 번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결정이 쉽지 않음은 물론이다.

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정벌에 나섰던 나폴레옹이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에 쫓겨 퇴각했을 때 나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1년 말 영하 30도의 혹한에 온갖 고초를 겪었던 히틀러의 소련공습 때에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매뉴얼은 시스템을 견고하게 하는 최후의 지침이다. 따라서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야 매뉴얼의 효용성도 높아지며 물 흐르듯 다음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대선이 한창인 요즘 여야 대선캠프나, 정치현상을 담론해내는 정치평론가들 입에서 유행처럼 오르내리고 있는 프레임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물관의 체계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

이것은 박물관ㆍ미술관(이하 박물관)에도 적용된다. 최근 박물관은 매우 활성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체계가 불분명하다. 한국박물관협회에는 한 달 평균 10건 이상씩의 박물관 건립 및 등록, 관계법령, 세법, 정책, 지원 등에 관한 문의가 접수된다. 좋은 박물관설립과 효율적인 운영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것이 업무 중의 일부인 필자의 입장에서 바짝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질의의 대상으로는 기존 박물관은 물론 중앙 및 지방정부의 관련공무원에서부터 예비박물관장, 연구자, 컬렉터, 대학원생 등 그 부류도 다양하다. ‘그린벨트를 소유하고 있는데 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느냐?’, ‘○○○류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으로 박물관이 가능하냐?’, ‘박물관을 하려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하냐?’, ‘박물관을 하면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 ‘유물을 기증하고 싶은데 일부는 돈을 받고 싶다. 가능하냐?’, ‘사진을 보내 줄 테니 이 유물의 진위를 봐 달라’ 등 그 내용 역시 다양하다.

뿐 만 아니라 모 관장에게 문의를 했더니 ○○○을 찾아가보라 했다며 사전 약속도 없이 불쑥 사무실로 찾아오시는 분도 있어 당혹스러울 때마저 있다. 박물관의 제반 시스템과 매뉴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 개인적인 무능함을 떠나 박물관협회의 위상마저 우습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시스템전문가 좋은 박물관을 만든다.

2000년 이후 박물관이 활성화되면서 박물관학이 차츰 정착되어가고 있으며, 때를 같이해 대학과 대학원에 관련학과도 신설되어 매년 적지 않은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다. 또한, 학예사자격증 취득자도 4,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들은 고고학, 전시기획, 소장품관리, 교육, 마케팅, 경영, 행정 등 지엽적인 전문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박물관 환경전체 즉 시스템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는 전무하다시피 한 형편이다. 박물관의 환경으로는 우선, 제도가 가장 중요하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과학관 육성법」, 「수목원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은 직접적인 것에서부터 「문화재보호법」, 「상법」, 「상속세법, 관련조례」등 간접적인 법령까지도 아우르고 있어야 한다. 이에 기반 한 정부정책의 방향과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관련조직 등도 잘 알아야 함은 물론이다. 지원에 있어서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관련 지원방향, 규모, 대상, 지원의 근거 등도 사전 지식이 필요한 사항이다.

이외에도 기증ㆍ기부(관, 유물, 현물 등)의 절차 및 혜택 등도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며, 심지어는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의 특화전략과 수장고에 대한 제 사항, 기본적인 유물 관리방안 및 유물에 대한 감식안도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뮤지엄 멀티플레이어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이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박물관에 대한 시스템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매뉴얼을 제시할 인재가 좋은 박물관을 들어서게 하는 선결과제임을 정부나 관계당국에서는 인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