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제성 작가] 관객 소통 위해 해체 변형한 ‘그의 몬드리안’
[인터뷰-박제성 작가] 관객 소통 위해 해체 변형한 ‘그의 몬드리안’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2.12.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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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결문제요구의 오류’展, 정체성 투영시키고 존재 의미 드러내

지난 10월 25일부터 11월 22일까지 갤러리정미소에서 열렸던 ‘선결문제요구의 오류’展에서 몬드리안의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몬드리안의 틀을 해체 변형시켜 평면 작품을 선보인 박제성 작가. 그는 몬드리안의 작품의 재구성을 통해 몬드리안의 절대적 시각에 대한 반발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시키고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런던올림픽 기간 중 런던 사치갤러리(Saatch Gallery)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전 '코리안 아이(Korean Eye)한국작가 34인에 선정돼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바 있다. 오바마와 달라이 라마의 연설에서 메시지를 소거하고 숨소리와 표정만을 전달하는 작업을 하는가 하면 축구경기에서 공이 사라진 필드를 뛰는 선수들, 전시장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살려두고 전시작품을 제거한 ‘Gong’ 시리즈를 통해 인간이 쫓고 있는 욕망의 실체의 본질을 되짚었다.

그의 작업은 치밀하고 치열하고 인내를 요구한다. ‘Gong’ 시리즈 작업과정은 자신의 수련 과정이라 할 만큼 몇 시간짜리 영상에서 특정부분을 제거 및 소거시키는 작업에서 잘 드러난다. 심지어 그는 이번 전시에서 두 시간 동안 시계의 초침을 쉬지 않고 돌리는 영상화면 작업을 내놨다. 끝난 후 손이 한동안 손이 펴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자신을 학대할 정도의 고통을 인내하며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무엇일까?

‘선결문제요구의 오류’展은 작가 자신이 끊임없이 개입돼 생산되는 창조체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전시 메인작품인 ‘선결문제요구의 오류’ 시리즈는 그의 다른 작품인 ‘A Towel’, ‘Gong’, ‘His Silence’ 시리즈의 선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근간의 작업의 주요 개념이 됐던 부분들이 통합적으로 다뤄졌으며,  그 또한 내면을 향해 좀 더 거대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그야말로 ‘박제성의 몬드리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작가는 어떤 이유에서 유명미술관에 소장돼 전시되고 있는 몬드리안의 작품으로 자신의 개념을 펼쳐나가고자 했던 것일까? 지난 11월, 전시 막바지에 그를 만나 독특하면서도 기발한 그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디어 아트를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이용한 평면작품이 주를 이뤘다.

“이번 작업에서 몬드리안 작품을 빗겨 촬영함으로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몬드리안 작품의 다양한 패턴과 색조를 전혀 다른 시각적 패러다임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모더니즘적 가치의 전복, 미의 재평가, 몬드리안의 절대적 시각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 나만의 몬드리안을 통해 내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시키고, 작업 이야기를 좀 더 단계적,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몬드리안 작품과 관계 맺기를 통해 그간 진행해 왔던 작업시리즈 보다 좀 더 예술을 향해 적극적인 물음을 해봤다. 그만큼 내가 직접 개입하는 규모가 확대됐다. 또한 나는 내 존재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내고자 몬드리안의 작업을 십분 활용했다.”

-전시 관람 포인트는 무엇이었나?

“우연성을 배제하고 절제미가 있는 몬드리안 구성작은 캔버스 중간에서 시각적으로 완성되며, 이를 접하는 관객 모두 작업의 중심적 시각을 통해 작업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특정 관람위치 때문에 나는 내 자신의 성찰을 위해 몬드리안을 빗겨 촬영해 다분히 구체적 시각화의 단초를 이끌어냈다. 더불어 다양한 각도에서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싶은 욕망의 시각화도 성공시켰다. 내가 스스로 고안한 예술과 나를 둘러싼 체계의 검증과정을 통해 관념을 시각화하길 바라며, 종국엔 그러한 관점이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소통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거다. 관람객은 몬드리안 특유의 색조와 면 분할, 패턴 등을 만날 수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알아왔던 지식이나 방법을 통한 것처럼 몬드리안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을 거다. 관람객이 마주하는 건 더 이상 투명한 몬드리안이 아니라 내 끊임없는 개입에 의해 완성된 나의 몬드리안이었기 때문이다.”

빗나간 시각의 개별과 합을 이루는 정황에서 그와 몬드리안의 관계가 드러나며, 또 그 관계는 지속적으로 변화가능하고, 하나의 개별 프레임 유닛들은 지금과는 또 다른 작품의 형태로 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띈다. 그는 몬드리안을 통해 예술작품에 대한 개입과 관계성, 즉 자신과 예술과의 관계성이 고착화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무한할 수 있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기반으로 컴퓨터 그래픽작업을 거친 후, 자신을 제거한 뒤 편집해 완성시킨 영상작업 ‘A Towel’에서 그는 자신의 평범한 어린 시절 사진에 그만의 내면적 개념과 컴퓨터의 기술적 개입을 적극 수용시킨다. 그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다음 작품 ‘Gong’과 ‘His Silence’ 시리즈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는 ‘Gong’ 시리즈가 인상적이다. 쫓을 축구공이 없는데도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모습 등 익살스러우면서도 기발하다.

“‘Gong’ 시리즈는 뉴스와 각종매스컴의 산물로 제작돼 대중에게 미리 배포된 영상물로 만들어졌다. ‘Gong1’에서 나는 경기영상 속 축구공을 제거해 축구장의 상황을 다른 환경으로 구축하거나, 관객에게 당혹스러움을 주고 싶었다. 공을 쫓아 축구경기에 열중하는 선수들은 어느새 목적 없이 격렬히 움직이기만 한다. 아무것도 쫓을 게 없는 상황에서도 힘껏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아니 그보다 더 죽을힘을 다해 남을 밀치고 넘어뜨리며 경기에 임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걸 보고 있는 관객은 허무할 뿐이다.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그 영상에 대비시켜 보며, 규칙과 불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걸 지키려고 애쓰지만, 그러한 것들이 맹목적일 수 있으며, 어리석은 행동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다. 이렇듯 ‘Gong1’은 축구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비어있다는 뜻의 공(空)과도 일맥상통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같은 맥락의 작업을 이어가는 ‘Gong2’의 배경은 한 미술관이더라.

“그렇다. 세상이 경이롭게 여기는 특정 예술작품이 전시돼 있고, 그 작품을 보며 토론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예술작품을 지움으로써, 미술관의 장소적 특성도 함께 지웠다. 뿐만 아니라 이는 그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허공을 가리키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어떤 특정 장소와 상황에서 사람들이 잊고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인 요소를 제거해 주변 상황을 평범하게 만들고, 모든 의미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이에 따라 장소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는 모두 재구성되며, 익숙한 상황은 낯설어지고, 의미, 역사, 시간, 목적 등이 재구성된다. 난 내 자신을 끊임없이 개입시켜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재구성하고 있는 거다.”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 ‘His Silence’에서 그는 철학적, 정치적, 종교적으로 절대적인 권력과 지식이라고 여겨지는 슬라예보 지젝, 오바마 대통령, 달라이 라마의 연설의 단어 마디마디를 잘라내어 재편집했다. 관객은 그들이 어떠한 연설을 하는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으며, 그들의 연설에서 기대했던 세계최고의 인문학적, 정보적, 인류학적 지식체계는 한 순간에 사라진다.

-이러한 기발한 작업에서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하고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인류의 철학, 정치, 종교가 예술의 역할과 의미를 포섭할 수 있다는 일종의 파라다이스적 해석을 제시했다. 기존의 무언가를 재구성, 편집, 중첩, 병렬해 나 스스로에게 예술로 이끌 수 있는 테제들을 질문하며, 더 나아가 관객이 그러한 요소들을 좀 더 진화되고, 진보된 지각과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을 가질 수 있길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 내가 개입해 드러나는 세계를 좀 더 수치화, 검증화의 시각화로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소통의 체계를 구축하고 싶었으며, 이를 접하는 관객 모두가 왜 예술을 통해 그토록 원하는 소통을 하길 바랐다.”

빗겨나간 작업 프레임 하나하나가 그와 몬드리안의 관계의 시작을 외치고 있으며, 그가 촬영했던 순간 자신이 존재했던 위치에 대한 시선을 관객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 개별적 시간은 그의 작품 전체를 완성하는 하나의 단위이며, 각 작품마다 적게는 30개, 많게는 60개 이상 되는 프레임들이 퍼즐을 맞추듯 연출돼 개별 유닛들이 하나의 시각적 패턴으로 다시 작품화 된다. 즉 개별의 합이 탄생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존재하는 개입의 여지를 고스란히 시각화해 몬드리안 작품으로 투영된 자신의 확고한 위치를 되돌아본다. 몬드리안의 절대미는 관람객이 작가의 작품 바로 앞, 즉 특정위치에 서서 관람 할 때, 자신의 위치와 동시에 자신의 개입을 통해 해체되는 시각적 국면을 찾을 수 있다. 침잠과 몰입의 주체가 몬드리안의 작업을 접할 때, 그 예술작품은 온전히 객체가 되며, 이러한 분산적 몰입을 통해 그가 빗겨 촬영한 몬드리안의 다양한 작업 이미지를 합치고 흐트러뜨리기도 하면서 또 다른 주체성을 완성시켰다.

-이번 전시의 의의는 무엇인가?

“나는 어쩌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구조를 겨냥해 예술과 힘겨운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번 전시는 내 기존 작업과는 또 다른 예술과 삶의 태도를 완성했다는 거다. 몬드리안 시리즈 이전에 다양한 매스미디어에서 방출되는 이미지를 변형, 편집하는 방식으로 내 자신을 개입시켰다면, 이번 몬드리안 시리즈에서는 완벽한 명제풀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상이 등장했고, 그 대상에 나의 논점과 상황을 개입시켰다. 이는 예술을 통해 이루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내 생각을 명료하게 보여준 것과 같다. 예술작품 창작을 위한 자유로운 날개를 단 것 같다고나 할까. 이제 그 날개는 예술 행보와 개념이 얼마나 분명한지, 그 예술이 관객에게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지, 그 분명함과 솔직함 속에서 내 이야기를 어떻게 구체화 할지에 방향을 돌리려고 한다. 이번 전시는 내 이야기를 좀 더 자신 있고 자유롭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었다. 더불어 이러한 내 자유 많은 이들에게 공감되고, 영감을 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