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라지다', 그녀들의 짜릿한 수다 뒤 숨겨진 비밀
연극 '사라지다', 그녀들의 짜릿한 수다 뒤 숨겨진 비밀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12.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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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1.20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남산예술센터 2012 시즌 마지막 작품으로 극단고래와 공동제작한 연극 '사라지다'를 이달 29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올린다.

이해성 작·연출의 이번 작품은 사회가 정해놓은 경계와 이를 넘어서는 시도를 보여주고자 한다. 등장 인물들은 사회가 만들어낸 경계에 서 있거나 이를 넘어선 인물들로,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은 트렌스젠더 말복, 여성이면서 여성을 사랑하는 신정, 결혼과 이혼의 경계에 서 있는 상강, 유부남과 불륜에 빠진 동지, 행복과 우울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청명,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윤주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 모두 어딘가 ‘비정상적’이다.

작가는 오히려 이들이 정말 ‘비정상적’인지 질문을 던지며, 삶과 죽음, 남자와 여자, 결혼과 이혼, 불륜과 사랑, 정상과 비정상 이 모든 경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 성찰한다.

작가는 작품 속 경계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경계란 무엇이고,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금기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편 형식적으로도 작품은 경계를 넘나들거나 경계 사이에 서 있는 여러 요소들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 작품은 대화와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리’가 대화 중간에 공백과 틈을 뚫고 들어온다. 이 소리는 시도 산문도 아닌, 중간에 걸쳐져 있는 언어로서 무대 공간에 스며든다. 수다와 사유를 넘나드는 대화, 감상과 성찰을 오가는 정서, 연극적인 언어와 문학적인 소리, 여기에 빛과 어둠으로 강조되는 조명까지 작품은 무대 언어적으로도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불어 작품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라지는 것들’ 혹은 ‘사라지다’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사유이다. 설명으로 들으면 매우 어렵고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작품 속에 오가는 대화나 이야기는 매우 쉽고 구체적이다. 여자 동창들의 따발총 같은 수다와 솔직한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고, 그 속에서 가슴 저미는 사연과 비밀들이 하나 둘 폭로된다. 그들의 사연 역시 이혼과 불륜, 동성애와 유산, 몰래한 사랑 등 거의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소재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폭풍 같이 쏟아지는 그들의 대화와 가슴 아픈 고백을 하나 둘 듣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시큰해지며 그들의 아픔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의 아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치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아파트 공간을 감싸고 있는 확장된 공간,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더 크고 깊은 그 공간이야말로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경계 너머’의 공간이며, 관객의 성찰을 이끄는 사유의 공간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남산예술센터의 입체적인 공간이 물리적 규모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 힘을 발휘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고 관객의 사유를 이끌어낼 예정이다.

티켓은 1만5천원부터. (문의 : 02-758-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