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기행 - 87] 오늘은 미래의 과거다. 미래에서 오늘을 볼 수 있는 곳
[박물관기행 - 87] 오늘은 미래의 과거다. 미래에서 오늘을 볼 수 있는 곳
  • 한국박물관연구소
  • 승인 2012.12.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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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박물관

어느 미치광이 수집가를 통해 본 박물관적 사고
 
  이맘때면 식상한줄 알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단어가 ‘다사다난’이다. 올해도 역시 피해갈 수 없는 표현일 듯하다. 그런 2012년이 끝자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뱀의 해를 또 작년 이맘때처럼 희망으로 맞이할 것이다. 내년에는 좀 특별한 일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득 안고 말이다.

  우리 연구소(한국박물관연구소) 연구원들은 박물관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 중 유별나게 유물수집에 집착하는 이가 한명 있다. 정리는 잘 못하지만 뭔가를 수집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수집이라는 것이 정리까지 수반한 일이라면 그는 반쪽짜리 재능만을 갖고 있는 셈이다. 

▲ 2012. 12 제18대 대통령 선거

  이 친구는 며칠 전(12월 19일)에 있었던 대통령선거 시 투표 마감 오후 6시를 기다려, 재 빨리 동네를 돌며 대통령후보자들의 전체 홍보포스터 3세트를 수집했다. 뿐 만 아니라 관련 현수막 등도 어렵게 습득했다고 한다. 이 친구 얘기를 듣다보면 편집광과도 같은 그 수집의 집념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자의 면면을 알 수 있는 홍보물이 부착되고 또 투표용지가 인쇄된 다음에 후보 한 명이 사퇴했다.

  그런 이유로 투표소 입구에는 ‘기호○번 ○○○후보가 사퇴했으며 따라서 그 후보에게 투표하면 무효처리 된다.’ 는 별도의 유임물이 부착됐다. 그러나 그 인쇄물은 투표소 안에 게시되어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수집하기는 쉽지 않았단다. 투표가 끝난 후 대부분의 투표소는 문을 잠그고 관계자들이 퇴근했거나 투표마감 직후 바로 이를 떼어내 폐기했기 때문이다.

  이것까지 구비해야 완벽한 세트가 완성된다는 생각에 이 친구는 밤새 주변을 돌며 동사무소 쓰레기통까지 뒤졌다고 한다. 궁극에는 테이프가 붙여진 상태로 갈기갈기 찢겨진 채 버려진 인쇄물을 찾아내고야 말았다고 한다. 물론 완전한 상태였다면 좋았겠지만 버려진 상태보다는 내용이 그대로 남아있느냐가 더 중요했기에 그 자체로도 최선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우리현대사의 한 장면을 물증으로 고스란히 남기게 되었다. 이 자료들은 쓰레기통에 들어가면 한갓 폐기물로 취급되어 짧은 생을 마감했겠지만, 미래에서 볼 때 분명히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유물임에 틀림없다. 

▲ 2007년 황금돼지해 기념 초콜릿세트
  한편, 작년 봄쯤 이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실에는 그동안 수집한 것들이 쓰레기처럼 쌓여있어 넓은 공간을 참 비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는데 병풍처럼 둘러싸인 책꽂이 사이에 양각(陽刻)으로 된 황금색 돼지모양 와이셔츠상자 크기의 박스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뭐냐고 물으니 2007년에 사놓은 초콜릿세트라고 했다. 얘기인즉, 이 친구는 돼지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 우리나라에 꼭 있었으면 해서 돼지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황금돼지해로 불렸던 2007년 모 제과업체에서 한정 품으로 꾀 비싸게 출시한 황금돼지모양 포장 초콜릿을 시판되기가 무섭게 구입했단다. 당시 초콜릿을 좋아하던 초등학생 딸 눈에 띄어 지켜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젠 그 딸이 많이 자랐을 뿐더러 유효기간마저 지나 관심이 없어졌단다. 그리하여 금년으로 이 초콜릿은 6년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당시, ‘돼지바’라고 하는 아이스 바를 생산하던 유명 빙과업체에서도 황금돼지해라고 포장지 뒷면에 재미있게 디자인된 제품이 한시적으로 출시되어 몇 개 구입해 냉장고 깊숙이 보관했었는데 출근한 사이 딸들이 찾아내 다 먹어버렸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그 정성과 극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돼지박물관이 생긴다면 얼마나 요긴한 자료가 될까를 생각해 보게 했다.

 

오늘박물관 - 지금, 미래에서 과거를 만날 수 있는 곳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와 관련 한 자료를 발 빠르게 수집하고 있는 소장품담당자 있을까? 궁금하게 된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다.’ 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것이 미래에 우리 문화콘텐츠의 풍부함과 깊이를 말해준다는 점에서 평범하게 만 생각할 수 없는 용언이다.

  오늘박물관은 필자가 생각해본 현존하지 않는 가상의 박물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즉, 오늘을 보여준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새로울 것도 관심을 집중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뿐 만 아니라 박물관에 대한 개념이 ‘과거의 것’이라고 고착된 상태에서 이를 박물관에 집어넣기에도 쉽지 않아 획기적인 인식의 전이도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이 아니면 스쳐지나가고 마는 것들이 우리주변에는 참 많다는 생각이다.

  디지털을 기반 한 인터넷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도 생성할 수도 있으며, 사진이나 음성으로 주변자료를 시시각각 자유롭게 축적할 수도 있다. 소소한 것일지라도 이러한 것들을 잘 축적할 수 있는 종합데이터망(Web archive system) 같은 것들이 구축되고 이것이 미래에 남아, 과거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창출과 선현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1,000개의 박물관을 보면 소장 자료의 상당부분이 당대주류계층의 역사와 대표적(Standard)인 문화만을 제한적으로 대변하는 체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주류와 비주류의 개념과 현상이 희석되고 다원화된 현재에서는 사소한 것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문화콘텐츠는 당대에 특별했던 것도 박물관을 위해서만 제작한 것은 아니다. 현재의 일상 그 자체가 박물관으로 충분함을 재인식 했으면 한다.         
           
한국박물관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