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연말 영화 이야기;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과 브레이킹 던 파트2
도쿄의 연말 영화 이야기;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과 브레이킹 던 파트2
  • 이수경 일본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2.12.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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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뮤지컬을 좋아하는 필자건만 최근엔 정신 없이 생활에 쫓기느라 외출 시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세상은 크리스마스 이브니 연말이라고 곳곳에서 지인들이나 학생들이 소식을 전해 주지만, 필자는 일본 시사 잡지사에서 의뢰 받은 논문 마감일을 훨씬 넘겼던 터라 세상과 담쌓고 집필에 몰두하며 고투를 했다. 그리고 3주일을 끙끙거리던 원고를 이브 아침에 송고한 뒤, 해방의 기쁨도 느낄 겸 근처의 워너 마이칼 시네마즈(일본의 전국 체인 영화관)로 발길을 향했다.

일본 체인 영화관 워너 마이칼 시네마즈에 영화 '레미제라블'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일본에서 12월 21일에 개봉이 된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의 무게 있는 홍보 전략과 영화의 화제성이 인상적이었기에 내내 신경 쓰였었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로 1862년에 간행된 이 작품은 한국에서는 [장발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필자도 학창시절 [장발장]을 읽고 사회의 모순을 느꼈던 기억이 선명하기에 비록 뮤지컬을 영화화 한 것이지만 중후하고 리얼하게 다뤄놓은 프랑스 혁명기의 대서사시에 몰입하면서 애절한 음악과 스토리 전개, 등장 인물들의 연기력에 압도 당하며 영화를 즐겼다. 

어릴 때 허약체질이었던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거의 책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냈다. 때론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 동안 읽던 내용을 마저 끝내려고 책에 빠졌다가 빈혈로 쓰러져서 링거를 맞았던 기억조차 있다. 그 만큼 책 속에 그려진 내가 경험하지 못 한 다른 미지의 세계나 사회 혹은 시대 환경, 타인들의 삶 등이 펼쳐진 내용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매혹되기도 했던 것이다. 당시 읽었던 이광수 문학전집이나 한국 문학전집, 세계 위인전, 모험 추리 소설 등은 몇 번이나 되새겨 읽었고, 드골 대통령이나 리빙스턴, 탈무드, 수호지, 삼국지, 쇼펜 하워의 인생론, 로맹 롤랑의 작품 등은 필자의 성장에 다양한 형태로 기억되는 책이 되었다. 그 속에서도 특히 빵 하나 훔친 죄로 결과적으로 19년의 옥살이를 하게 되고, 그런 과거로 인해 인생을 항상 쫓기며 살아야 했던, 장발장이란 인물을 통해 볼 수 있는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비인간적 환경, 희망 조차 가질 수 없었던 많은 약자들의 분노와 바램이 혁명이란 형태로 발아되었으나 절대 권력 앞에서 무너지는 나약한 이상에 갈등하는 인간의 존재가 인상적이었던 [레미제라블(가난해서 불쌍한 사람)]을 오랜만에 영화로 본 것이다.

내용은 인권이란 개념이 보편화 되는 계기가 된 1789년의 프랑스 혁명 후의 혼란스런 사회 체제 속에서 약자가 비참한 삶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계속 되고, 다시 구체제로 시대가 역행을 하자 학생들을 비롯한 의식이 깬 사람들은 사회 개혁을 위해 시민 혁명을 일으킨다. 이 시민 혁명을 전후로 한 사회적 상황과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 속에 버려진 약자의 아픔과 고뇌,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종교적 절대성 조차도 부정할 수 밖에 없던 밑바닥 인생을 위해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을 현실 타개의 사랑이란 매듭으로 승화시켜 놓은 것이 [레미제라블]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프랑스 혁명 후, 제3 공화국이 성립되는 약 100여 년을 혼돈스런 상황과 사회 개혁을 위한 시민 투쟁에 대한 무력 억압이 가해져 서민 생활은 피폐하고 참담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 프랑스 민주주의 사회 형성에는 그만큼 숱한 희생자의 피와 눈물이 곁들여져 있음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문학 사상사를 다룬 박사 논문을 적었던 터라 친근감과 더불어 영화관에 들어갔더니 화제성에 비해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라서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다. 필자가 간 영화관 근처엔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 본토 최대의 미군(공군)기지인 요코타(橫田, 재일 미군사령부도 위치)기지가 있기에 영화관 내에는 서양인 커플들도 보였다. 되려 일본인 관객이 적은 것은 아마도 일본에선 크리스마스나 정월 전후를 연인과 호텔 스테이를 하거나 가족들은 해외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레미제라블' 포스터 앞에 선 필자 이수경 교수.

영화 상영 시간 맞추느라 서둘러 갔더니 좌석에 앉자마자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피골이 상접한 수인들이 고통스럽게 물 속에서 침몰한 배를 끌어 올리는 장면은 실로 스펙터클하다. 이 장면에 압도 당하며 장발장 역의 휴 잭맨과 자베르 경감 역의 러셀 크로우의 대립 장면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지금부터 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은 첫 장면의 장엄함과, 장발장이 가석방 후 몰골로 배회하는 알프스 산록의 풍경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웅대하고 환상적인 대자연으로 다가오는데, 알프스의 웅장함과 매혹적인 영상 처리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성당의 밀리에르 신부(콤 윌킨슨)의 환대를 받고도 은그릇을 훔쳐 달아나다가 잡혀서 되돌아와도 그를 너그러이 용서하는 신부의 대응에 자신에 대한 수치와 혐오감으로 고통받는 휴 잭맨의 독백과 성당의 로케이션은 영화관이기에 느낄 수 있는 매력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장면들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이 영화에서 특히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것은 공장에서 해고되고 사창굴에서 몇 푼의 돈을 위해 자신의 머리와 이빨을 뽑아 팔고 몸조차 버려지는 기막힌 지옥의 상황에서 자신이 꿈꾸던 삶이 철저히 무너진 현실을 I dreamed a dream 으로 표출시킨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의 애절함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유명 뮤지컬 가수들이 불러서 이미 알려져 있지만, 2009년 4월에 열린 영국의Britains Got Talent 에 참가해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던 수잔 보일(Susan Boyle) 의 대기만성에 선택된 곡으로 더 유명하다. 당시 47세로 영국의 시골에서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며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그녀의 어설픈 모습과 행동은 방청객들의 비아냥을 사는데, 노래를 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맑고 감미로운 고음 처리가 관중을 사로 잡았고, 이 곡을 완벽하게 불렀던 그녀의 탁월한 노래 실력에 모두 standing ovation으로 갈채를 보냈으며, 수잔은 그 뒤 세계적인 가수가 되어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례]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한편, 결국 판틴이 쫓겨났던 공장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그녀가 남긴 딸 코제트를 평생 돌보겠다는 의지와 생의 의미를 구가하며 살아가던 장발장이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려던 시민 혁명 속에서 성장한 코제트와 사랑을 하게 되는 마리우스에 갈등하다 자식 같은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며 코제트를 향한 참사랑으로 부상을 입은 마리우스 구출에 목숨을 건다. 그를 집요하게 쫓던 자베르도 결국 자기 갈등의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세느강에 몸을 던지고,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을 이어주는 부모의 역할까지 다한 휴 잭맨의 죽음까지 지켜보면서 여태껏 보아왔던 휴 잭맨과는 다른 그의 매력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마이클 볼이나 죤 바로만이 불렀던 Sunset Boulevard를 즐기던 음색과는 현저히 다른, 당시의 시대적 아픔을 반영한 고통어린 심경으로 부른 중저음의 음악이 전체 장면의 저변에 깔려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청초함이나 싱그러운 학생으로 나온 마리우스 역의 에디 레드메인(필자가 안식년을 보냈던 켐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컬리지 출신이라고 한다)과 혁명 운동을 리더하던 앙졸라 역의 핸섬 가이 아론 트베이트, 비극적 사랑으로 끝난 사기꾼 여관집 딸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박스가 심금을 울리던 [I love him] 등, 그들이 자아내는 연기와 음악 속에 파묻히는 감동은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났어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또한,  해맑은 목소리와 귀여운 역할로 바리게이트를 뛰어 다니던 아역의 소년과 어린 코제트, 그들과는 달리 탐욕에 뭉쳐진 여관집 부부 역의 헬레나 본햄 카터와 사챠 바론의 리드미컬하고 박동적인 연기를 보면서 대단한 역량의 주연 조연 아역들의 노력이 응축되어 있는 영화를 만끽했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일본에서 상영 중인 영화 '광해'와 '트와일라잇 브레이킹던 파트 2'

약 2시간 30분의 러닝 타임을 채운 뒤, 영화관에 불이 켜질 때 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피날레의 감동을 끌어 안고 있던 필자의 모습도 새삼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한국에선 이미 개봉이 된 [광해]나 [트와일라잇 브레이킹 던 파트2]의 상영 안내가 보였다. [광해]가 잘 된 영화라는 소리는 듣고 있는 터라서 기대를 하고 있다. 작년 이후 한일 외교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류 문화에 초 비상이 내려진 일본에 수준 높은 한국 영화가 공감을 얻게 되고, 제2차 아베 내각이 발족되어 예전과는 다른 성숙한 문화 교류의 자세가 되어 준다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레미제라블]이나 일본 영화인 [도쿄 가족] 등의 광고 홍보는 대대적이건만 [광해]나 [트와일라잇 브레이킹 던 파트2]의 언론 선전은 TV에서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트와일라잇 시리즈(Twilite, New moon, Eclipse, Breaking dawn part1)를 즐겨왔던 필자로서는 일본이 해외에서 화제성이 많은 이 시리즈 개봉에 이렇게 무관심한게 의외이다. 물론 내용이 뱀파이어와 늑대 사이에서 사랑과 갈등을 하며 소녀에서 결혼하는 여인으로 성장하는 벨라의 성장기를 그린 이 틴에이저가 즐길법한 영화에 보편성이나 흥행성을 느끼지 못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8년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려 온 영화임은 주지하는 바다. 원작은 전업 주부였던 스테프니 메이어(Stephenie Meyer)가 꾼 꿈을 옮겨 적은 판타지 로맨스 소설로, 약 1억2000만부가 팔리며 전 세계적으로 번역 판매된 인기 소설이다. 그런데도 개봉을 앞두고 조용한 것은 연말 연시 분위기 탓일까?

필자는 이 영화 시리즈를 통해 나오는 아름다운 배경의 영상들과 짧은 대사로도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문학적 표현, 뱅쿠버를 비롯한 웅장한 파노라마 숲의 로케지를 달리며 마음껏 듣고 싶은 감미로운 Ost, 그리고 모든 연기자들의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역할과 사랑스런 로맨스의 전개에 매료된 팬의 한 사람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맺어졌다 불미한 스캔들 소식도 들렸던 크리스틴 스튜어트 (Kristen Stewart) 와 로버트 패틴슨 (Robert Pattinson)의 화제 속에서도 속칭 롭스틴의 행복 조차 빌어주는 트와일러 처럼 관심을 가졌다. 일본 사이버대학교의 한류 문화론 객원 교수이기도 하기에 인기가 많았던 한류 영화나 드라마와의 비교도 할 겸, 대중 영합의 소재 분석을 위해서도 필자는 시리즈 영화를 각각 열 번도 넘게 봤다. 혹은 일에 지쳐서 피곤할 때, 한국서 가족들이 보내 준 소프트를 통해 즐겨 보았는데, 정신적 힐링 효과를 가져다 주는 가슴을 시원하게 트이도록 해 주는 웅대한 북미의 대자연과 아름다운 선율과 더불어 중독성을 일으키는 배경 음악들, 매력적인 캐스팅과 그들의 건강미 넘치는ㅡ그래서 부럽기조차 했던 파워풀한 연기력, 워싱턴 포크스에서 잭슨빌, 뱅쿠버를 비롯,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역의 중세도시 볼테라,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 등에서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청춘 전개가 앙증맞고 사랑스럽기조차 한 그런 영화이다. 리얼리즘으로 접근한다면 온통 모순 투성이인 판타지 영화지만, 되려 트와일라잇 시리즈기에 그 모순 조차도 승화시키고, 인간과 뱀파이어와 늑대 사이에서 믿음과 정직한 사랑으로 주고 받는 주옥 같은 언어들도 가슴 깊이 남는다. 또한 은유적인 표현은 물론,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거나 다중적인 어법으로 복선 형식을 취하기 보다, 15세 이상의 중고등학생 등 비교적 첫사랑에 눈을 뜨고, 사랑과 결혼에 동경을 가지거나 의식을 할 연령 층의 관객 도입도 의식하고 있기에 복잡한 인간 관계의 모순보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직설적인 표현으로 상대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자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토로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순수하고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는 안심 요소가 되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인 벨라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구미 기독교 세계에서 선호하는 얼굴형이고, 무엇보다 필자가 유럽의 많은 미술관을 다니면서도 우피치의 그림보다 더 아름답게 느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암굴 속의 마리아](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의 마리아나 천사와 흡사한 그녀를 보고선 세계 시장과 경쟁하기 위해선 한류 드라마도 캐스팅은 물론, 세련된 어휘 구사와 배경 음악과 세밀한 영상 처리, 대중이 공감할 내용과 수준 높은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것이 절대적임을 새삼 느꼈다. 물론 에드워드가 벨라 몰래 잠자는 침실에 들어가서 얼굴을 훔쳐보는 등, 현실적으로는 스토커 행위에 해당되는 불법성이나 강압적이고 위험한 폭력성도 다분히 섞여 있지만, 사랑하는 절대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 무마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영화 및 드라마 등 공개적 매체엔 인권 문제의 유무를 확인하는 작업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12월 28일에 개봉되는 [브레이킹 던 파트 2]는 인간으로서의 벨라가 아닌 뱀파이어로서의 강력한 힘을 가진 능력자로 활약하고, 그녀와 에드워드의 딸 르네즈미, 그리고 벨라를 사랑했던 제이콥과의 관계, 뱀파이어 종족 간의 싸움과 반전이 기대되기에 연말의 바쁜 시간을 틈 타서 다녀 오려고 한다.  일본의 불황과 우경화로 유난히 추위를 느끼는 올 겨울, 제자들의 논문 지도에 몰입해야 하는 정월이지만 지금까지 필자가 즐겨 보았던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피날레로 마음이나마 따뜻하게 올 한 해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다가오는 2013년엔 보다 더 밝은 뉴스와 행복함으로 성실히 사는 보람을 찾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 사회의 선린 우호를 확고히 다지며 미래 지향적인 파트너 십을 돈독히 할 수 있는 성숙한 외교 관계가 튼튼하게 구축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