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섬뜩하고도 해학적인 국립현대무용단 <아Q>
[공연리뷰] 섬뜩하고도 해학적인 국립현대무용단 <아Q>
  • 인순환 객원기자
  • 승인 2013.01.1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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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은 창단 2년 이라는 짧은 역사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쾌거를 이루었다.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2012년 10월 부터 5개주를 돌며 13회나 연속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이번에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선보인 홍승엽감독의<아Q>는 노신의<아큐장전> 소설로 신해혁명이 일어났던 무렵의 중국사회를 풍자한 작품이다. 어리석음 때문에 고통이 전이되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을 현대무용감각을 십분 표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분명 무용이라는 부드러운 몸놀림을 기대했지만 시작하자마자 단두대 못지않은 끔찍한 칼질로 머리 다리를 다 해체한 후 끝내 몸통에 칼을 꼽은 채 흩어진 사지를 전부 모아서 둘러메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뼈있는 몸짓 이었다. 물론 인형이었지만 힙합음악에 실려온 관객은 이미 공범이 되어서 맥박은 고동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대에 다시 우르르 나와 상하 까만 작업복(?)의 긴팔에 옷의 다리 길이는 칠 부 정도였고 머리카락이 전혀 안보이게 쫙 붙은 까만 모자를 착용한 똑 같은 복장에 ‘맨발의 청춘’(?) 들이었다. 10년전 중국에서 하루 종일 고속버스를 타고 가도 똑 같은 형태의 집과 지붕 색깔마저 같은 집만 봤던 기억처럼 획일적인 정체성의 표현은 남녀의 구분도 없었다.

물론 젠더의 문제는 거의 모든 예술장르에서 초월해 버린지 오래다. 이 무대에서는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는 남녀노소(男女老少)가 따로 없는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그뿐인가 고깔을 쓰고 마치 한무리의 까마귀처럼 보이던 그들이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방향으로 해바라기 하는 모습은 대중의 우매함을 지적하며 조롱하는 듯하다. 다수의 횡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연상시켜 섬뜩하기도 했지만 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현대무용이지만 그렇게 마임연극 같은 모호한 장면에 전자음악으로 표현되는 현대음악이나 클래식, 우리 대중가요, 팝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이 동원된다. 심지어 공연 끝부분에 적절한 효과음향의 타이밍은 모두 착각에 빠져들 만큼 절묘하다.

무대에 누워있던 한 친구를 부축하니 등에 칼이 꽂혀 있던 장면, 칼로 단번에 인형의 배를 갈라 장미를 꺼내는 장면은 인간관계에서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뒷담화를 섬뜩하면서도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특정인을 칼로 상처내고 본인은 보물이 될 수도 있는 장미를 얻는 대조적인 장면은 여러 가지를 의미 있게 전달한다. 심지어 담배 연기만 무대에 던져놓고 사라지는 사건(?) 말고도 세 명의 무용수가 보여주는 '시체와 춤을'은 거의 ‘19금’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새 ‘19금’이 돌부처 처럼 굳어버리는 반전이 곳곳에 있어 재미와 철학을 더하고 소위 ‘뽕짝’ 음악으로 유머까지 더한다.  

그러다 여러 명이 한사람을 당기고 밀고 굴리고 빨래하듯 실컷 갖고 놀다가 갑자기 모두가 한사람을 포로로 잡고 있는 가운데 한 사람의 몸이 한참동안 시계추처럼 움직여서 모든 사람이 시간의 포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노골적인 표현이었다. 그렇게 현대인은 시간의 노예로 사는구나 하고 공감하는 순간, 음악도 멈추고 동작도 멈추고 조금 전 까지 날갯짓 하던 그들은 도다리나 광어처럼 누워만 있는데다 조명마저 깜깜해지자 불안하면서도 기대감에 점점 긴장됐다. 
 
순간 그 공명을 뚫고 한 남자가 벽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자세로 벽에 박제가 된다. 벽의 반대편 무대에서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한 무용수가 귀 뒤로 두 손을 올려 등에서 뭔가를 꺼낸다. 순간 시퍼런 칼 한 자루가 번쩍 하고 벽에 박제가 된 남자를 향해 사정없이 날린다.

오 마이 갓~ 칼을 던져 인간 다트 게임을 하다니 칼은 품에서도 계속 나왔다. 무대의 끝과 끝이 꽤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생명을 건 아슬아슬한 위치에 팍 팍 꽂혔다. 무진장 커진 동공으로 단지 칼이 아니라 그 자리에는 장미가 꽂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술의 비밀을 알고 나면 웃어버리듯 잠시 잔혹사의 위기가 유머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그 안도의 마음도 그리 오래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관객을 경악하게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돼 손에 땀이 날 만큼 자극적이었다. 관객들은 입장하면서 받은 빨간 장미를 무대로 던져 화답했다. 칼이 장미로 둔갑해 상징적 위장을 하기도 했었지만 현대인의 삶에 지식이던 자본이던 권력이나 혹은 죽음조차도 하나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무거운 주제를 홍승엽 감독이 유머와 해학으로 잘 풀어주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겼다.

도리스 험프리의 말처럼 "발레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20C의 ‘새로운 예술’로 태어난 현대무용"을 즐기는 좋은 기회였다. 세계발레 역사가 400년이 넘어도 발레만을 위한 곡이 탄생한 것은 1841년 아당의 ‘지젤’이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36년에 작곡가 이하윤이 <향수의 무희>라는 곡을 만들었다. 그 현대무용 곡으로 천재무용가 최승희가 직접 공연해 대성황을 이뤘었다. 

그 열기가 미국으로 이어져 도리스 험프리와 쌍벽을 이뤘던 마사그레이엄의 권유로 1939년 6개월 계약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에도 선다. 최승희 공연을 본 로버트 테일러가 같이 영화에 출연하자고 프로포즈했던 일화도 있다. 그러나 유럽으로 진출하여 현대미술의 대가로 알려진 피카소나 시인 장 콕또의 열렬한 극찬을 받았던 기록을 보면 마치 올 여름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 속에서 명작의 작가나 화가 등 세계적인 유명 인사를 만나는 영화 ‘파리의 밤’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았다.  

필자는 <아Q>공연을 계기로 세계무대에서 한국현대무용의 뿌리를 찾아 위상을 재고 해보는 계기가 됐다.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은 미국 아이다호의 보이시(Boise)에서 2012년 10월 30일을 “한국현대무용의 날”로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한국현대무용>의 "기념일"이라니 무대공연 못지않게 한 번 더 감동 할 만한하고 국립현대무용단의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