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DMZ 궁예의 한과 백골의 넋이 잠든 철원을 가다
[기행]DMZ 궁예의 한과 백골의 넋이 잠든 철원을 가다
  • 김종덕 창작춤집단 木대표
  • 승인 2013.01.3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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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허리, 청춘의 일부를 묻은 곳, 감회가 새롭다

1950년 7월, 미군의 B29편대의 폭격을 시작으로 1953년 7월까지 한국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철의 삼각지 전투가 벌어진 그곳 철원은 사라졌다.

▲필자 김종덕 창작춤집단 木 대표(전 한예종 겸임교수)

궁예의 사민도시와 해방공간의 수부도시, 냉전시대의 정책 이주도시로 흥망성쇠의 역사가 반복해서 재현되는 역사적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전혀 뜻밖의 유산 DMZ

1945년 8월 우리는 일제치하에서 자주독립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 등 연합군을 통한 무장해제로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났다. 미국과 소련이 정한 행정구역 38선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는 이념적 경계, 또는 비극과 아픔을 잉태하고 있었다.

▲한탄강 겨울 풍경

1950년 첫 포성으로 시작된 6.25는 1953년 휴전협정을 통해 겨우 진정국면에 접어들었고, 연합군이 정한 38선은 휴전선이 되어 양쪽 2km를 비무장지대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두고 6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속에 평행선을 긋고 왔다. 그러니 올해로 DMZ 생성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휴전선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한 인민군, 중국 인민지원군 사이에 휴전을 위한 전투배치선으로 한국 휴전협정 제1조 1항에는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km씩 후퇴함으로써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무장지대가 양측의 합의에 의해 설정된 지역인 반면 민간인 통제선은 남한의 의지에 의한 구역으로 남방한계선 이남 5~20km 지역을 군사시설 보호와 보안유지를 위해 민간인의 통제를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민간인 통제구역을 포함한 DMZ에는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2900종 이상의 식물 가운데 30% 이상, 70여종의 포유류 가운데 약50%, 320종의 조류 가운데 약20%가 이곳에서 서식하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동에서 서로 248km에 달하며 폭은 4km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60년 가깝게 인간의 출입이 통제된 자연 상태로 보전되고 있다.

▲옛 노동당사

산악과 평야지대로 계곡과 분지 그리고 여러 개의 강을 이루고 있어 산악지대 생태계, 내륙습지, 그리고 담수 및 해안 생태계가 함께 존재하는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및 보호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물새나 두루미의 서식처 및 이동경로가 됨으로써 생물종 다양성 유지를 위해 국제적 관심을 가진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민간인 통제구역을 지나 남방한계선까지 걸어가는 동안 분단의 아픔과 함께 인적이 닿지 않은 곳에 고라니와 다람쥐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 민간인 통제구역을 걷고 있다는 알 수 없는 희열에 만감이 교차하였다. 남과 북의 경계선이 휴전선이라면 인간과 자연생태의 경계선은 가시철조망 위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지뢰’라는 역삼각형의 빨간 표식이었다. 그곳은 온갖 동식물들이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살고 있는 지상낙원인 셈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영화 ‘고지전’의 배경이 된 지역으로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군인과 인민군의 깃발이 하룻밤에도 몇 번씩 바뀐 곳이다. 폭격에 의해 산의 정상은 지면과 가까워지고 흘린 피와 주검은 온산을 덮었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남방한계선을 2km쯤 걸어가면 휴전선이고 다시 걸어서 2km를 더 지나면 북한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그리고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 4km와 민간인 통제구역은 60년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생태의 보고로서 전혀 뜻밖의 유산이 된 셈이다.

불패신화 백골부대

나의 빛바랜 거울엔 언제나 연보라빛 슬픔이 묻어있다.

무언지 모를 아픔이 멍들어 밤마다 얼룩진 꿈을 꾸게 한다.

나의 참회록엔 과오보다 더한 변명을 적어 두었다.

먼 미래에 관대한 미소로 용서하기보다 다시 반성해야할 아픔을 빼곡히 적어 두었다.

-김종덕 詩 ‘참회록’ 중에서

▲불패신화의 백골부대 백골상징

내 삶의 허리이며, 청춘의 일부를 묻은 곳이 백골부대가 위치한 철원이다.

나의 주된 임무는 주로 교통정리나 경호, 순찰, 초병, 호송, 사건수사나 길안내로 자등현을 지나 신수리, 와수리, 문혜리까지가 우리의 관할지인 위수지역이다.

자대배치를 받고 비포장 길을 따라가다 처음 대면했던 산등성이의 집채만한 백골상은 내겐 충격이었고 공포 그 자체였다. 인근 부대와는 달리 3사단은 볼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메마르고 황폐한 느낌이었다. 땅굴이나 선사유적지, 화강암과 현무암이 양분되어 존재하는 직탕폭포, 임꺽정이가 숨어 살던 절경의 고석정,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 걸고 지켰던 승일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백골부대는 수백 번의 전투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은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부대이기도 하다. 백골부대의 전신은 18연대로 북한에서 남하한 ‘서북청년단’이라는 반공조직이 합류하면서 인민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었다. 서북청년단은 공산당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골수 반공주의자들로써 인민군을 무차별하고 잔인하게 응징하고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어 유래된 부대이다.

내 청춘의 한 허리를 묻어두고 꿈속에서 애타게 그리워하던 곳, 마음 한 구석에 애처로우나 의젓하고, 냉철하지만 관대함으로 각인된 그 곳 철원, 백골부대이다.

백마고지에 나부끼는 노란 리본

병영체험관에서 1박을 하고 마지막 일정은 백마고지가 바라보이는 5사단 전자기계화부대의 열쇠전망대관람과 남방한계선 철책체험, 통일의 염원을 담은 리본달기이다.

가는 길에 들른 노동당사는 해방 이후 공산치하에서 강제로 동원된 주민들의 노동력과 모금에 의해 지어진 지하를 포함하여 지상 3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1946년 초에 착공하여 580평 위에 세워진 건물은 상층으로 점차 작아지는 아치의 비례감과 세밀함이 훌륭하다. 전쟁 중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외부형태와 골격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전쟁 막바지에는 쫓기던 인민군이 만행을 숨기기 위해 건물을 파괴하려고 탱크로 쏜 포흔과 그곳을 지나던 시민들이 환청을 잊기 위해 쏘아댄 포탄의 흔적이 역력하다. 이곳의 지하는 인민군이 애국지사와 주민들을 고문하고 총살하던 곳으로 노동당사를 지을 당시 공산당원들만 지하를 짓는데 참여시켰다고 한다.

백마고지가 바라보이는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 북한의 선전마을이 육안으로 보일정도로 근거리이다. 두루미와 독수리는 거리낌 없이 오가고, 고라니와 노루가 뛰어다니는 그곳에 우리는 총구를 겨누고 있다.

무엇이 우리 민족을 60년간 서로 총구를 겨누게 했을까. 철책 노란에 매단 리본에는 ‘하나 된 아름다운 강산’이라고 통일의 염원을 적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