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끼며' 느끼는 음식과 술의 참맛
'부대끼며' 느끼는 음식과 술의 참맛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3.02.07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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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생각하고, 그냥 써라] 광장시장 먹자골목의 '진짜 맛'

서울의 명소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종로 광장시장입니다. 이 곳은 다양한 물건을 싸게 판다는 점도 있지만 푸짐한 먹거리 때문에 더 유명해진 곳입니다. 오죽하면 ‘광장뷔페’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광장시장하면 떠오르는 ‘마약김밥’과 녹두빈대떡을 필두로 순대와 떡볶이, 잔치국수와 칼국수, 모듬전과 보리밥, 족발, 여기에 모듬회까지. 정말 모든 음식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곳이 바로 광장시장입니다. 아참, 이들과 잘 어울리는 막걸리, 소주 한 잔을 빼먹을 뻔했군요.

겨울비가 장마비처럼 쏟아지던 어느 날 오후, 광장시장을 찾았습니다. 반찬가게, 옷가게 등을 둘러보며 시장의 정취를 느껴봅니다. 전통시장은 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맛좋은 반찬들이 널려있는 시장 골목을 지날 때마다 어찌나 구미가 당기는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나 저거 하나만 사줘’라고 어린아이처럼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입니다.  

▲ 광장시장의 대표적인 먹거리 중 하나인 '마약김밥'을 파는 곳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광장시장 먹자골목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이 많은 어머니를 대신해 모듬회를 파는 ‘이모님’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죠. 장사를 하시느라 종로 3가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여기 계속 오면 만나게 돼. 그 때 만나면 되지"

모듬회를 먹어보기로 합니다. 오후 4시를 막 넘긴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소주나 막걸리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제가 들어간 집에도 몇몇 분들이 소주 한 잔에 싱싱한 모듬회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저도 당연히 소주를 청했죠. 모듬회를 받고 사진을 찍고 있자 친구분들과 함께 계시던 한 어르신이 관심있게 지켜보십니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하나보네.”
“아, 예, 오늘 배터리를 새로 끼워가지고 기념으로 한 번 찍어본 거예요.”
“어, 거 축하해. 기념할 만 하구만”

처음 뵙는데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 광장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는 ‘아줌마’나 ‘사장님’은 어색합니다. ‘이모’, ‘아가씨’ 이게 제격이지요. 저도 어느새 ‘이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 광장시장 모듬회입니다. 사진을 찍으니까 어르신이 친절하게 말을 건네시네요.

“이모님, 초장이 맛있어요. 이거 직접 담그신 거예요?”
“그럼, 여기 사람들은 다 초장을 직접 만들어요.”

회맛을 돋우는 초장의 달달한 맛에 빠져 정신없이 먹다보니 순식간에 회와 소주가 비었습니다. 때마침 배터리 교체를 축하해주시던 어르신과 친구분들께서 일어나실 채비를 합니다. 소주병이 참 많네요.

“이봐, 우리 사진 한 장 찍어줘봐.”
“찍긴 뭘 찍어, 이제 가야하는데.”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이봐, 친구, 다음에 만나면 한 장 찍어줘야해.”
“아이쿠, 여기서 선생님을 또 뵐 수 있을까요?”
“어차피 여기 계속 오면 만나게 돼. 그 때 만나면 되지.”

광장시장의 매력은 여기서 나옵니다. 음식맛 좋고, 가격 싸다는 것도 매력이겠지만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부대낌’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친구가 되는, 그것이 바로 광장시장의 매력입니다.

제 맞은편에 한 남자분이 앉으셨습니다. 이분도 저처럼 혼자시네요.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다고 하자 웃으시면서 고맙다며 잔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제 잔도 채워주셨지요. 짧지만 서로가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마약김밥'의 새로운 맛

▲ 마약김밥을 직접 싼 모습입니다. 곧 다 없어지겠죠?

그 마음을 안고 이번엔 마약김밥 집으로 갑니다. 마약김밥을 파는 곳이 많았지만 제가 간 곳은 40년 동안 김밥을 판, 마약김밥의 원조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 곳은 먼저 음식값을 내면 주인이 이미 포장을 한 마약김밥을 주고 그것을 가지고 가게 안에서 먹도록 만들었습니다.

재료는 간단합니다. 김과 밥, 단무지와 야채 정도입니다. 그리고 겨자 소스가 있습니다. 김밥을 이 겨자 소스에 찍어먹습니다. 겨자 소스를 놓은 이유를 묻자 재미있는 답이 나왔습니다.

본래 겨자소스는 김밥과 함께 파는 유뷰초밥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김밥을 먹는 사람들이 이 소스를 김밥에 찍어먹으니까 맛있더라는 소문을 냈고 그 때문에 소스를 찍어먹는 김밥이 더 유명해졌다는 겁니다. 하나의 재료가 된 셈입니다.

나만 외롭고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곳  

▲ 사진을 찍지 못해 옆사람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흔쾌히 수락해주십니다.

그곳에 가면 모두가 스스럼없습니다. 김밥 사진을 찍지 못해 옆사람에게 사진 좀 찍을 수 있느냐했더니 흔쾌히 수락하시더군요. 옆사람에게 술을 권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자리. 처음 온 집인데도 '이모님'이라고 부르고 싶게 만드는 그 분위기에 사람들이 매료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 힘들고 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 나도 사람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곳이 바로 시장 먹자골목의 매력입니다. 서로 부대끼고 어울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러면서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곳, 그래서 여전히 광장시장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