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오방색으로 '긍정의 기'를 퍼뜨린 낙천적인 화가
[기자의 눈]오방색으로 '긍정의 기'를 퍼뜨린 낙천적인 화가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3.03.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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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두식, 그의 삶을 기억하며
교수직에서 명예롭게 물러난다고 했다. 66세 정년을 채우고 은퇴했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누구나 믿었다. 이제 아무런 제약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누구나 새로운 작품을 기대했을 순간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퇴임 전시회 개막식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던 그가 다음날 불귀의 객이 되리라는 것을. 한국 추상화의 역사가 너무나 갑자기 멈춰버린 순간, 미술계는 물론 그를 알았던 모든 예술인들의 눈물과 탄식이 이어졌다. 한국 추상화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미술계 발전에 온 힘을 쏟았던 이두식 교수는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

동양의 채색붓으로 서양화를 그린 화가

그를 이야기할때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오방색'이다. 대한민국의 전통 색깔인 적색, 청색, 황색, 흑색, 백색을 마치 붓으로 뿌려 튄 것처럼 그린 <잔칫날>은 그의 추상화 세계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기억되고 있다.

화려한 오방색을 바탕으로 밝고 역동적인 추상화를 완성했던 그는 서양화를 배우면서도 수묵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서양화를 그리면서도 동양의 채색붓인 모필을 이용했다고 한다. 전통의 색깔로 빚어낸 추상의 세계는 화려하면서도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이두식의 그림을 보는 멋이었다.

지난해 전시회를 통해 그는 화려한 오방색에서 조금씩 담채의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오방색을 빼놓고도 기운이 살아있어야한다"며 그 기운을 살리는 것이 자신의 숙제라고 말했다. 65세 화가의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수묵추상화란 것도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와 화면을 꾸려나가는 방식이 비슷해요. 여백이 많고, 담백하게 그려내며, 묘사보단 관념적으로 표현하고…(중략) 오방색을 버린다는 건 아니죠. 오방색을 빼놓고도 기운이 살아있어야 하죠. 컬러의 화려함에서 오는 흥 말고도 다른 기운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제 숙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추사의 글씨나 겸재의 풍경화에서 오는 강렬함은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펄펄 살아있죠.”(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에게 작업은 종교 의식이었다


그는 굉장히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작업도 반드시 자신의 컨디션이 좋을 때 진행했고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명상을 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하면 4시간 이상을 오직 그 작업에 매진했다. "삼매경에 들어가지 않으면 작업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그의 이런 성격은 가난했던 과거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먹고 살기 위해 7년동안 '이발소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 3시간 이상 자지 못하고 계속 작업에 열을 올렸다. 그가 한 해동안 약 200여점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작품에 대한 집중력이었다. 그에게 작업은 일종의 종교 의식이었던 셈이다.

이두식의 그림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기를 뻗치게 하는 그림'. 그렇다. 화려한 색깔이 화폭에 뿌려진듯한 그의 그림은 분명 힘이 있었다. 열정을 담아 캔버스에 뿌린 그의 색깔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었고 그 또한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 열정은 작업뿐만 아니라 미술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발휘됐다. 그가 '미술계의 마당발'로 불린 이유도 바로 그 열정이 가져온 결과였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역동성의 미학이 숨어있다"


그는 미술뿐만 아니라 배구계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홍익대 시절 배구선수로 뛰었던 이두식은 대학배구연맹 회장, 실업배구연맹 회장 등을 역임하며 틈만 나면 배구장을 찾은 열혈 배구인이었다. "배구에서 공격수가 스파이크를 때리는 그 찰나의 순간은 구도를 중시하는 화가로서 푹 빠질수 밖에 없는 응축된 역동성의 미학이 숨어있다."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배구의 묘미'다.

그림으로 자신이 가진 '긍정의 기'를 표출했던 이두식. 그림처럼 활발한 성격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발벗고 나섰던 이두식. 사람들과 어울리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던 이두식.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고 한국 미술의 역사는 잠깐의 멈춤을 겪었다. 그러나 그가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있기에 한국 미술사는 계속 진행되고 이두식의 그림은 계속 살아 움직일 것이다. 그의 명복을 다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