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issue] “걱정 많이 하는데 꿀릴 게 없다”
[문학계issue] “걱정 많이 하는데 꿀릴 게 없다”
  • 정동용 객원기자
  • 승인 2013.03.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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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도현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는 것”··· 소설가 손홍규도 검찰 출두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연탄 한 장’ 모두

안도현 시인
문단에 때 아닌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사회 현실을 그 누구보다 가장 자유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문인들을, 트위터에 그 어떤 의혹에 따른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정권교체를 바라는 광고를 실었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줄줄이 소환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예전 군부독재정권 때처럼 문인들 입에 아예 재갈을 물리겠다는 뜻일까.

시인 안도현(52,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이 22일(금) 낮 전주지검에 출두해 약 1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일간문예뉴스 [문학in]이 지난 3월 19일(화) ‘시인,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라고 보도한 바 있는 이번 사건은 지난 12월 10일께 시인 안도현이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진 안중근 의사 유묵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소지했다는 의혹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검찰은 시인 안도현을 상대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게 된 경위와 목적 등에 대한 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진정이 접수된 사건의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안 씨를 소환했다”며 소환배경을 설명했다. 검찰은 이날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시인 안도현에게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지 그 여부를 매듭지을 방침이다.

지난 12월 대선과정에서 문인 137명과 함께 <경향신문>에 정권교체 바람을 담은 신문광고를 실었다는 이유로 지난 1월 18일 서울 중구 남대문 경찰서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던 소설가 손홍규(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도 같은 혐의로 다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 915호실로 출두했다.

시인 안도현은 이날 검찰조사에 앞서 기자들에게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는 것이다. 또 내가 올린 내용은 보도가 이미 된 것이고, 학술지에 발표된 내용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라며 당당하게 조사에 임하겠다. 주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데 꿀릴 게 없다. 트위터에 이 같은 글을 올린 것이 허위 사실 유포에 해당되는지 따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주일 전에 출석요구를 받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간섭하는 모양새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트위터에 글을 올린 배경에 대해서는 “서적이나 언론보도를 볼 때 당시 박 후보 쪽에서 ‘본 적도 없고, 소장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는데, 국가 보물인 중요 문화재에 대해 말 한마디로 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검찰조사를 받고 나온 시인 안도현은 “트위터에 올린 글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 조사 받았다”며 “추가 소환 통보는 받지 않았다”고 알렸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감쪽같이 사라진 보물 제569-4호 안중근의사의 유묵은 1976년 3월 17일 당시 홍익대 이사장 이도영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기증했다”며 “도난된 보물 제569-4호 소장자 ‘박근혜’다. 2001년 9월 2일 안중근의사숭모회 발간 도록이 증거자료다”고 글을 쓴 바 있다.

누리꾼들도 문인들에 대한 검찰소환이 잇따르는 데 대해 우려스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누리꾼 ‘다잘될···’는 “외로울 때는 사랑을 꿈꿀 수 있지만 사랑에 깊이 빠진 뒤에는 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사랑하고 싶거든 외로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나에게 정말 외로움이 찾아온다면 나는 피해가지 않으리라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리라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으라 -안도현”라고 안도현 시인이 쓴 시를 올렸다.

누리꾼 ‘김···’는 “안도현 시인 검찰 소환은 국민 기본권을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MB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소통공간인 SNS를 탄압하며, 정부가 시민들 생각을 검열하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임을 강력히 규탄합니다”라고 썼고, (사)한국작가회의 이시영 이사장도 트위터에 “안도현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손홍규 작가는 내일 같은 혐의로 서울지검 915호실로 출두한다”고 우려스런 목소리를 냈다.

‘민주통합당’은 트위터에 “검찰이 작년 12월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보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 사실관계를 묻는 트윗글을 올린 안도현 시인에 대해 검찰출두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SNS를 탄압하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요지가 있습니다”라고 꼬집었다.

누리꾼 ‘안··· 불매···’는 “안도현 시인의 검찰 출두는 민주국가 시민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이고 ‘시민억압’으로 밖에 안 보여진다”라며 “SNS 공간에서 개인의 자유발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인권위는 뭐하는가?”라고 거칠게 항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