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디자인의 개념에서 본 예술과 과학
[특별기고] 디자인의 개념에서 본 예술과 과학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3.03.2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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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호부터 몇회에 걸쳐서 연재될 일랑 선생님의 특별기고는 2008년 7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청강의록
   전문을 기반으로 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전 서울대 초대 미술관장/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맞이하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서있다.

흔히들 다가오는 2000년, 새로운 세대는 “문화전쟁”의 시대, “지식산업”의 시대, “지식경쟁”의 시대라고들 한다. 이에 대비하여 문화 전반에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치사관에 의한 문화패턴을 유지해 옴으로 해서 정치력에 의한 영토 확장과 군사력 위주의 양적 팽창을 갈망하며 자긍심을 가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문화의 세기, 정보화시대를 맞아 사이버문화영토 확장이라는 제2의 지식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인류가 지상에 서식한 후 구지본능(求知本能)에 의한 지능활동(知能活動)이 시작되고 구미본능(求美本能)에 의한 심미적 욕구가 제기 되면서 과학(科學)과  예술(藝術)이 발전 되어 왔다.  
 
여기에 다시 최소력행사칙(最小力行使則)에 의한 효율성이 요구 되고 과학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산업혁명(産業革命) 이후 실질(實質)과 미(美)를 동시에 충족(充足)시키려는 디자인의 개념이 급속히 확산(擴散)되었다.

본래 디자인(Design)이란 말의 어원이 라틴어의 Designare에서 온 말이라고 하는데 계획(計劃)하고 표현(表現)하고 성취(成就)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적절한 시간과 공간에 적합한 목적성에 따라 기능(技能)과 효용(效用)의  바탕 위에 미적 욕구를 충족(充足)하고자하는 창조적 조형(造形) 행위를 말한다.

초기 산업혁명 과정에서 섬유제품(纖維製品)의 문양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디자인이란 말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당시 디자인의 개념은 순수미술을 제품생산에 응용(應用)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고 시장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응용미술(應用美術) 정도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산업이 다변화(多變化)하고 문화적 욕구가 생산과 결부 되면서 종전의 응용미술이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미학의 정립과 더불어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디자인의 개념이 정당성을 찾게 된 것이다.

순수예술(純粹藝術)과 디자인, 그리고 과학이 모두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

예술작업은 가시화 할 수 있는 모든 물성을 매개체(媒介體)로 하여 과학적 기초 위에 목적하는 바에 따라 조형하는 창조작업(創造作業)이며 실생활의 쓰임새나 시장경제에 초연(超然)하다.  그러나 디자인은 미(美)의 개념(槪念)과 더불어 용(用), 즉 쓰임새가 배제(排除)될 수 없으며 시장성(市場性)과 직결되는 특성을 갖는다.  광의(廣義)의 디자인 개념은 순수미술에서도 적용 된다. 모든 조형작업은 물성(物性)을 다루어 표현하는 작업이므로 창작의 과정에서 표현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학적 기초와 디자인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

디자인은 과거 응용미술(應用美術) 시대의 계화(界畵)나 설계(設計),  의장(儀裝)이나 도안(圖案)이 아니며 독자적인 미학체계(美學體系)를 갖춘 창조적인 조형분야로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디자인에서 창의성은 순수미술에서의 그것과 같이 존재한다. 과학 또한 존재에 대한 실질(實質)의 규명(糾明)이므로 그 시발(始發)은 상상(想像)으로부터 창의성(創意性)으로 이어지는 특성을 공유(共有)한다.

 ‘아름다움’의 본뜻은 ‘나 다움’이라고 한다. ‘아름’이라는 말이 고어에 ‘나’를 지칭하는 일인칭 대명사였다고 하니 분명 ‘아름’ + ‘다움’은 ‘나 닮음’일 수  밖에 없다. 복제인간처럼 나의 외모가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근사(近似)하다는 의미로써 곧 만족(滿足)과 행복(幸福)을 의미할 터이다. 서로 다른 두 개체 간에 공통점이 있을 때, 우리는 동질성과 연민(憐憫)의 정을 느끼게 마련이다. 부부(夫婦)의 정리(情理)가 그렇고 혈육(血肉) 간의 사랑이 그러하며 동족 간의 사랑이 그런 것이다. 일에 빠진 사람, 산에 홀린 사람, 그림에 미친 사람, 운동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 아름다움을 느끼며 거기서 힘을 얻기 때문에 탐닉(耽溺)하는 것이다. 아주 하찮아 보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이 ‘아름다움’의 일치가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세존(世尊)께서 아무 말 없이 해탈(解脫)의 법열(法悅)을 연꽃 한 송이에 담아 듦으로써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가섭의 도제간(徒弟間)에 ‘나 다움’을 발견하고 법통(法統)을 이었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 세 번째로 티베리아 호수가에 나타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며 세 번 씩이나 반문(反問) 하면서 사제(師弟) 간의 ‘나 다움’을 확인하고 아름다움의 일치를 이루면서 2000년의 기독교역사는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아름다워지고 싶은 충동은 신과 일치함으로서 영원해지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기록상으로 보면 아마도 인류가 최초로 실용을 위해 의상을 이용하여 장식을 목적으로 디자인을 시도했던 때는 구약시대(舊約時代)가 아닌가싶다.

구약 성서에 보면 뱀이 이브를 꾀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게 함으로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급기야(及其也)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이 알몸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나머지 "......무화과(無花果)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 (창세기 3.7). 여기서 그냥 앞가림만을 위해 무화과나무 잎사귀 한 장을 따서 붙인 것이 아니다.

어떤 얽음(織組)의 기술과 아름다운 모양새로 인위적인 디자인을 하여 실용적이고 보기 좋게 "역어 앞을 가렸다"는 데서 이미 직조(織造)와 패션디자인의 개념(槪念)은 시작이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