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칼럼] 관찰, 상상력, 사고과정으로의 건축
[건축칼럼] 관찰, 상상력, 사고과정으로의 건축
  • 최혜정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가
  • 승인 2013.03.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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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정신착란증의 뉴욕’(Delirious New York)으로 시작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글과 저서들 - 렘 쿨하스는 필자에게는 건축가로서 보다는 사고자(thinker)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물론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스타건축가 중 한 명이지만(리움, 서울대 미술관, 프라다 트랜스포머 등 작품면에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정작 이러한 작품들은 그가 쌓아논 글의 집적으로 인한 인지도와 위치가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의 작품들은 그의 생각들이 형태화 시킨 결과물들이며, 그가 자신의 사유과정에 대한 글과 작업이 없었다면 현재의 렘 쿨하스는 아마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쿨하스가 뉴욕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된 시기 즈음, 뉴욕과 현대도시, 그리고 건축계에서는 몇 가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9.11 테러로 인해 무너진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의 완공이었다. 1972년 총 110층으로 완공되어 오픈된 이 고층건물은 수 없이 세워지는 맨하탄의 마천루였지만 그 규모와 여파가 몰고 오는 현상은 분명 달랐다. 99개의 엘리베이터, 43,000여개의 창, 총 125만 제곱미터에 가까운 사무실면적, 매일 13만여명의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는 곳, 이 건물에만 할당된 고유의 우편번호가 존재했던 무역센터는 건물이 아닌 ‘도시’와 더 가까웠다. 도저히 전형의 건축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측량되는 것이 무의미한 건축의 유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같은 해, ‘라스베가스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이 발간되었다. 건축가 부부 로버트 벤츄리(R. Venturi)와 데니스 스캇 브라운(D. S. Brown)에 의해 주도된 이 책은, 라스베가스라는 도시를 소통을 위해 구축된 환경으로 보고 이러한 현상에서 건축의 유형들이 상징적으로 쓰여지는 방식을 논의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의된 공간을 먼저 생각하고 에워싸인 공간의 건축에 익숙한 건축가들에게, 이미 벌어진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의 건축의 유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는 이 책은, 여러 의미로 건축에 대한 사고와 실행과정에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 중요한 글이었다. 우리가 의도한 이상이나 개념이 조건에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주변의 도시와 환경은 이미 조건들이 드러나 있으며, 우리는 그 현상들을 응시하고 개념화시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선이론-후건축이 아닌, 선건축-후이론이 된 셈이다. 이 방식은 쿨하스의 ‘정신착란증의 뉴욕’의 부제·맨하탄을 위한 회귀적 선언문(Retroactive Manifesto for Manhattan)을 설명한다. 도시를 만들기 이전의 선언이 먼저가 아닌 도시현상으로 인해 구축하는 ‘이후로’의 ‘거꾸로’의 선언인 것이다. 7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쿨하스의 연구와 ‘정신착란증의 뉴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맨하탄이라는 도시가 지니고 있는 상황과 밀집이 만들어내는 돌연변이적 문화와 혼란스러운 듯 하지만 성립되는 독특한 질서체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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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Delirious-NY Cover

이 책을 통해 쿨하스는 현대의 맨하탄을 있게 한 몇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관철을 겹쳐 놓는다. 하늘로 우뚝 솟은 마천루의 탄생은 오직 높이가 중요한 전망대를 지칭하는 ‘바늘’(needle)과, 도형 중 최대부피를 추구하는 구형의 ‘글로브’(globe)의 만남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전형적 평면’(typical plan)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면서, 일정한 크기(critical mass)를 넘어서는 건물에서는 건물의 외피와 내부의 관계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짐으로 인해 그 관계의 필연성이 상실되므로, 건축의 내외부적 관계를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해진다는 주장을 한다. 이는 맨하탄의 경제논리가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양(quantity)적인 문제들이 드러내는 순수한 현상이고, 여기에 건축적인 질(quality)의 문제를 고집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 질적인 문제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양적인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찰을 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이즈가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전형적인 건축의 문제로 다룰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건축의 새로운 과제와 질문을 제시한 것이다. 이 문제는 그의 다음 저서 ‘S, M, L, XL’(1995)에 좀 더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탐구되고 있다. 사이즈 크기를 분류하는 방식으로 편집된 이 책은 작은 크기의 프로젝트부터 엄청 거대한 엑스라지(extra large)의 프로젝트를 나열하여 현대사회가 직면한 도시화를 정면으로 다루는 이론과 관찰로 구성되어 있다. 어쩌면 그가 아시아의 도시들에 주시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직접적인 도시화를 이념의 문제나 전통의 문제로 거부하거나 갈등하지 않고, 최대한 열어 받아들이는 아시아 특유의 현재진행성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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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c under construction by nyt neal boenzi

쿨하스와 그의 책들은 그가 지금 활동하는 작품들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지금은 너무 바빠진 스타건축가가 되었지만, 오늘의 쿨하스를 있게 한 것은 바로 그가 관찰하고 제시한 뉴욕에 대한 후이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가 아닌, 건축의 문제를 접근하고 이를 현실의 다양한 단면과 작업하고자 하는 ‘건축가’이자 ‘사고자’로 다듬어 준 이 저서들로 인해, 그는 현대건축사 중 가장 흥미롭고 영역을 넘나드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다. 그가 1975년에 설립한 설계회사인 OMA(Office of Metropolitan Architecture)를 통해 건축작업을 해오다가 1998년 OMA의 거울회사인 AMO라는 think-tank회사를 설립하여 도시와 건축, 문화에 걸친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점을 보아도, 그가 건축의 문제를 좀 더 크게 다루고 싶어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패션 브랜드 프라다(Prada)와 협업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과 방향을 제시한 출판물을 비롯, 세계 곳곳의 매장과 전시 등을 기획하며 프라다의 기업 아이덴티티를 다듬어나가는 think-tank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의 로고, 와어어드(Wired) 매거진의 편집, 하바드 대학과의 공동연구 등 다방면의 분야가 건축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제시점과 만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건축이 틀과 전형, 형식에 갇혀있는 ‘건물’의 문제가 아닌 ‘사고과정’으로의 문제이자 보다 커다란 가능성에 대한 질문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 건축가 최혜정, 미국 렌슬리어 공과 대학과 콜럼비아 건축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과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현대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1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큐레이터 등의 프로젝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