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창극 서편제를 브로드웨이로...
[공연리뷰]창극 서편제를 브로드웨이로...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3.04.10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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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라인업으로 우리 소리 참 맛 보여줄 수 있어

지난 달 28~3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올려 진 창극 서편제.

소리꾼의 이야기를 소리꾼이 소리로 풀어낸, 그야말로 소리꾼들의 삶이 투영된 이야기라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창극 서편제는 김성녀 예술감독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두고 있던 작품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뮤지컬 감독인 윤호진 감독과 의기투합해 내놓은 야심작이다. 재일 작곡가 양방언까지 합세해 제작라인도 화려하다.

사실 처음 공연이 올라간다 했을 때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워낙 영화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고 이미 뮤지컬 등으로도 대중들에게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창극 서편제는 ‘공연은 현장을 가봐야 안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줬다. ‘판소리는 소리판에서 생생하게 들어야 제 맛’이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창극 서편제는 판소리 심청가를 중심으로 다섯마당의 눈대목(하이라이트)을 요소요소에 적절하게 삽입하는 꼼꼼한 뮤직넘버를 짰다. 한 자리에서 판소리 다섯 마당마다의 다양한 재미들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선사한 셈이었다.

한(恨)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로 극은 관객들을 슬픔에 젖게도 했지만 요소요소에   해학 가득한 대목이 적절히 버무려져 관객들을 폭소하게도 만들었다.

출연진들도 탄탄한 기량을 갖춘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들과 새롭게 젊은피로 수혈된 신입단원들이 라인업을 이뤄 주거니 받거니 소리의 본질로 천착해 들어갔다.

특히 노년 소화로 특별 출연한 명창 안숙선은 노년 소화의 회한을 우리나라의 최고의 소리꾼답게 담담하게 뽑아 올려, 관객들을 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 장면의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 중 “눈떴다!”라고 외치는 소리는 잠시 관객들을 감전시킬 정도로 자진모리로 힘차게 몰아갔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주목되는 배우는 어린 송화 역을 맡은 민은경이다. 최근 입단한 신입단원으로 극중 1막을 거의 이끌다시피 했다,

“아버지 눈이 따갑소 불좀 켜요, 세상이 밤처럼 캄캄하고 눈이 따갑소 아버지 무슨짓을 했어라, 내 눈에다 뭣을 바른거요...왜?...왜?...”

눈을 잃는 대목에서 보여준 그녀의 절규는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듯 절절한 한으로 다가와 살짝 소름마저 돋았다. 아마 중극장 규모의 공연장에서 올려 졌다면 관객의 눈물샘을 주체하지 못하게 했을 듯하다.

자그마한 체격에 당찬 소리, 맛깔난 연기력까지 갖춰 앞으로 주목해 볼만한 소리꾼이다. 미래의 ‘안숙선’으로 불릴만한 자질이 충분히 엿보였다.

유봉 역의 왕기석 명창의 구성진 창법의 탄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느끼지만 참 안정적이어서 든든하다.

여기에 극중의 극으로 들어간 판소리 명창대회는 양념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종 가슴 아픈 무거움에서 잠깐 동안 가볍게 박장대소할 수 있는 분위기 전환용으로 아주 적절한 요소였다.

무대 또한 3D 영상으로 지리산 사계를 산수화로 옮겨와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거기에 커다란 격자창이 자리 잡은 한옥 풍경도 무대를 품위 있게 격상시켰다.

그러나 몇 몇 부분에서 눈에 거슬림이 있어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소화와 동호의 모친인 죽은 금산댁의 등장이 너무 잦아 극의 흐름을 지루하게 끊어버렸다.

동호의 행적에서 등장하는 무당의 굿거리 또한 너무 외형적인 겉멋에 치중했다 할까? 이벤트적인 풍성함을 넣기 위해 연출한 것 같지만 실제 늘어진 느낌과 산자가 죽은자를 불러들이려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벤트였다. 극과 그다지 밀착되지 못하고 조금 겉돈 느낌이었다. 차라리 전통적인 무당복식과 의식으로 한바탕 굿판을 벌였더라면 훨씬 더 강하게 장면이 살았을 것 같았다.

그 외 무대가 낮과 밤의 상황이 바뀌면서 재빨리 전환되지 못한 것도 살짝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장면 노년 소화 안명창의 “눈떴다!” 대목은그러나 그 잠깐의 쉼박을 주고 웅장하게 판소리 코러스가 뒤를 받쳐줬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감동의 여운이 훨씬 더 오래가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담아본다.

이번 창극 서편제는 창극의 대중화에 큰 물꼬를 튼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티켓파워도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좀 더 보완해서 레퍼토리로 굳혀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문화부 관계자들과 가진 몇 몇 자리에서 이런 바람을 여러번 피력한 적이 있다. 중극장 규모의 판소리 전용극장을 만들어 일정기간 정기적으로 상설 공연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 민족 정서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한의 정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판소리를 통해 충분히 우리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승산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화려한 경극이나 가부키와는 차별화되는 우리만의 색깔로된 힐링극으로 자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중문화의 한류바람을 타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무대에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 지금, 바로 이때를 잘 활용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