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한국춤의 현대화, 그 키워드는 ‘균형과 절제’
[공연리뷰] 한국춤의 현대화, 그 키워드는 ‘균형과 절제’
  • 김인아 기자
  • 승인 2013.04.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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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수 안무·정구호 연출, 국립무용단의 ‘단(壇)’

최근 무용계는 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춤을 구현하기 위해 장르 간 융합에 주목하고 있다. 넓게는 예술 장르를 자유롭게 횡단하여 다원예술로서의 확장을 꾀하기도 하고 좁게는 무용 장르 간의 접합을 통해 새로운 춤언어를 모색하기도 한다. 지난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오른 작품 ‘단(壇)’은 무용장르 간 통섭(通涉)의 결과물로 국립무용단 이 야심차게 기획한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의 신호탄이었다. 현대무용과 발레에 기반을 둔 안성수 안무가와 한국무용을 대표하는 단체인 국립무용단이 만나 새로운 춤 레퍼토리를 만든다는 것은 시작부터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작년 여름 국립발레단의 ‘포이즈’를 비롯, 여러 차례 함께 작업하며 안성수 안무가와 훌륭한 협력관계를 보여줬던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이번 작품에서는 연출을 맡았으니 기대가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안성수 안무·정구호 연출, 국립무용단의 ‘단(壇)’ (사진=국립무용단)

타이틀인 단(壇)은 작품에서 인간의 신분·종교·권력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등장한다. 고귀한 신분, 신봉의 종교, 절대 권력의 상징물인 ‘단’으로 인해 인간의 내면과 외면에는 심리적 갈등이 일지만 그 속에서 평정과 중립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주제로, 심리상태의 변화과정을 3막 9장의 구성으로 전개하고 있다.

▲안성수 안무·정구호 연출, 국립무용단의 ‘단(壇)’ (사진=국립무용단)

이 작품에서는 기존의 한국춤 작품에서 흔히 봐왔던 이야기 전개 방식을 엿볼 수 없다. 극적 개연성을 갖추고 주제를 서사적으로 풀어가는 것 대신 스토리 라인을 배제한 채 움직임과 시각적 효과에 집중한 것. 평소 작품의 서사성보다 춤의 기법이나 스타일을 중시해온 안무자의 미적 관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움직임은 각 장르의 동작적 특성이 견고하게 절충되어 있었다. 한국무용의 깊고 낮은 무게감, 발레의 우아한 신체 선형과 현대무용의 다채로운 동작구성이 이탈감없이 접합되어 있는 동작들이다. 각 장르의 춤 움직임을 해체하여 본질의 움직임을 잡아내고 이를 매끄럽게 조합한 동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미니멀적 감성을 더한다. 대형을 크게 바꾸지 않는 한 하체는 거의 정적으로 뿌리깊게 박히며 상대적으로 상체는 곡선의 유려함이나 때로 에너지 넘치는 동적인 움직임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국립무용단의 안정된 기량에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안무력이 더해져 장면 곳곳에 인상적인 몸짓을 새겨넣었다.

더불어 평소 수학적 안무로 정평이 나있는 안무가가 이번 국립무용단에게는 규칙성의 안무 이외에 즉흥성을 부여, 작품의 세련미를 증폭시켰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3막의 한 장면에서는 36명에 달하는 무용수들이 네줄로 길게 늘어서서 부드럽고 깔끔한 동작을 시간차를 두고 엇갈리게 반복했다. 한국무용의 본질적 요소 중의 하나인 즉흥성이 호적 시나위 반주에 맞추어 굽이치듯 자유롭게 춤사위로 순환되는 이 장면은 정교하게 재단되어있는 작품에 방점을 찍으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즉흥성의 안무는 작품의 반주가 된 시나위의 영향이 크다. 굿거리·살풀이 등의 무속음악을 뜻하는 시나위는 즉흥적인 요소가 강한데다 비교적 단위가 짧은 서양음악에 비해 긴 장단을 가지고 있어 계산과 분석이 쉽지 않은 것. 그동안 음악을 섬세하게 동작화해 온 안무가는 시나위 가락의 즉흥성을 존중해 한국 춤사위의 자연스러운 즉흥성을 살려놓은 듯하다.

▲안성수 안무·정구호 연출, 국립무용단의 ‘단(壇)’ (사진=국립무용단)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정구호 아트디렉터는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요소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는 것에 안성수 안무가와 뜻을 같이 한다. 태평소·북·꽹과리·장구·징 등의 다섯 가지 전통악기를 최대한 압축 구성해 재조립한 호적 시나위는 미니멀한 본질을 꿰뚫는 선택이었다. 이를 각 장의 1막과 3막에 넣고, 각 장의 2막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대조적으로 삽입해 동서양의 이질적인 음악들을 교차시켜 조화를 꾀했다.

무대장치에서도 색채 상징을 미니멀한 보색 대비로 표현했다. 무대 위에 설치된 단의 붉은색과 녹색, 기하학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수십개의 형광등과 온통 검은 무대배경의 흰색과 검은색, 무용수들이 바꿔 입는 치마의 적/록/백/흑과 같은 강렬한 색상 대비는 음양의 조화, 동서양의 조화,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그리며 작품의 시각화를 강조했다.

▲안성수 안무·정구호 연출, 국립무용단의 ‘단(壇)’ (사진=국립무용단)

한국춤의 현대화를 기치로 내건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일관된 지향점을 내재하고 있다. 하나는 대비되는 성질의 요소들 속에서 조화로움과 균형을 찾고자 하는 것, 둘은 그 요소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모든 장식적인 요소를 덜어내는 것. 균형과 절제의 키워드로 점철된 이 작품은 한국춤의 새로운 변형 또는 확장에 긍정적인 답안을 제시하며 안성수·정구호·국립무용단의 예술성과 교감능력을 재확인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