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과 계집 사이 사랑··· 그 뿌리는?
계집과 계집 사이 사랑··· 그 뿌리는?
  • 이소리 기자
  • 승인 2013.04.30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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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별아 장편소설 <채홍> 영화로 만들어져··· 작가 “매우 기쁘다”

 

작가 김별아

잠자리에 들면 김태감은 아내의 옷을 모두 벗기고 자기도 저고리를 벗어젖혔다. 자그마한 몸뚱이를 꼭 껴안고 부드러운 살갗에 몸을 비비면 하루의 피로와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덜 자란 젖무덤일망정 팥알만 한 젖꼭지는 손끝으로 튕기며 놀기에 재미있었고 불두덩은 아직 민둥민둥했지만 도도록한 아랫배는 말랑말랑하고 따뜻했다.

귓불을 살살 핥다가 귓구멍 속에 더운 김을 훅 불어넣으면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던 아내는 간지럼을 못 이겨 낮게 킬킬거렸다. 그 웃음기로 발씬 벌어진 입술에 입 맞추는 것이 좋았다.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부딪치고 가만히 혀를 밀어 넣었다. 도망치듯 입 속으로 말려들어가다가 문득 축축하고 매끄럽게 감겨오는 보드레한 혀를 있는 힘껏 빨아들였다.

그때쯤 아내의 숨소리는 새근덕새근덕 빨라지기 시작하고, 흥분한 김태감은 어디랄 것 없이 주무르고 쓰다듬고 물고 빨고 핥기에 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다 새벽빛이 부옇게 밝아올 즈음에 아내도 저도 지쳐 나가떨어져 코를 골며 잠들었다. -‘불의 멀미’ 몇 토막

소설가란 힘든 길을 걸은 지 20년을 맞는 작가 김별아. 그는 그동안 장편소설 11편을 썼다. 그 가운데 8편이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을 집요하게 쓰는 여성작가는 드물지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더욱 대중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서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 김별아.

“데뷔 20년 동안 절반은 무명작가로 지냈고, 절반은 나만이 쓸 수 있는 문학을 위해 발버둥친 세월이었다”고 되짚는 작가 김별아가 쓴 장편소설 <채홍>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화 제작사 ㈜소나무픽쳐스는 22일(월) 보도자료를 내고 “김별아 작가의 '채홍'을 영화화하기 위해 판권 계약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김별아 장편소설 <채홍>

<미실>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김별아 장편소설 <채홍>. 이 작품은 조선시대 세종 둘째 며느리이자 문종 두 번째 부인인 순빈 봉씨가 궁중 나인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유일한 왕실 동성애 스캔들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 제목이 된 ‘채홍‘은 무지개를 뜻한다.

소나무픽쳐가 이날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작가 김별아는 이 소식에 대해 “문자로 이뤄진 <채홍>이 영화적 감수성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관객과 만나게 된다니 매우 기쁘다”며 “각 장르마다 문법이 다른 만큼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소나무픽쳐스는 곧 영화제작에 들어간다.

김별아 장편소설 <채홍>은 사랑이 죄가 된 시대, 허락받을 수 없는 욕망을 품었던 여인 순빈 봉씨가 주인공이다. <세종실록>에 적힌 기록 한 줄이 작가에게 낚여 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독특한 사랑이야기 <채홍>. 작가는 왕이라는 태양에 억눌려 그 반대편에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 같은 순빈 봉씨가 지닌 사랑을 애타게 그리고 있다.

문종은 사랑도 의무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난(순빈 봉씨)은 문종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해 시름시름 앓아가지만 궁궐 사람들은 그가 지닌 욕망을 무시했다. 욕망을 거세당한 왕실 사람들, 그 속에서 그는 스스로 욕망을 찾아나섰다.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남성에의 역사 그 반대편에는 이처럼 여성들이 지닌 욕망과 사랑, 질투와 갈등이 있었다.

“빗소리가 폭풍에 쓸린 파도 소리처럼 거세졌다. 꿈속의 바다가 밤비 속에 고스란했다. 사랑은 그처럼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한 때 느닷없는 곳에서 당황스럽게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채 느닷없고 당황스럽기에,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믿을 수 없는 열정, 스스로마저 설득할 수 없는 지독한 갈망이 해일처럼 몸과 맘을 덮쳤다. 그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속된 입으로 떠들며 가르치지 않아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 길 끝에는 까마아득한 절벽이 있을 것이다. 절벽 아래는 무참한 파멸이 검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테다. 하지만 금기에 대한 두려움도 폭주하는 야생마 같은 충동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사랑하고프며 사랑받고픈 소망은 죽음의 공포보다 더 컸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본능이기 때문이었다.” -‘비에 취한 밤’ 몇 토막

이 장편소설은 세자 첫 번째 부인이었던 휘빈 김씨가 폐해지고 난(暖)이 3개월 만에 세자빈으로 책봉되면서 물꼬를 튼다. 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난은 타고난 아름다움이 더해져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소녀다. 그는 겹겹이 가례의복을 입고 머리에 무거운 가채를 올린 순빈 봉씨로 봉해지자 그가 지닌 소망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된다.

세자 향(珦)은 아버지 세종이 지닌 덕성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가장 가까운 아내 봉빈 마음을 다독이고 사랑하는 데에는 미숙했다. 봉빈은 산해진미에도 입맛을 느끼지 못하며 시름시름 마음앓이를 하며 점점 웃음을 잃어간다. 어느 날 중전이 둘 사이에 대한 소문을 묻고 봉빈은 사실대로 말하지만, 중전은 의례적인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세자는 이때부터 의무를 이행하듯 빈궁에 들지만 봉빈은 마음이 없는 태도에 분노와 증오만 느낀다. 세자와 소원한 관계가 공론화되고 후궁 3명을 들이게 되면서 봉빈은 더욱 불안해진다. 어느 날 봉빈에게도 마침내 태기가 보여 마음이 한껏 부풀었으나 기쁨도 잠시, 상상임신임이 밝혀진다. 놀란 봉빈은 유산이라고 고하지만, 거짓임이 드러나 더욱 곤경에 처한다.

세자와 봉빈은 점점 더 사이가 나빠지고, 봉빈은 점점 술에 기댄다. 봉빈을 사랑해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힘들어하던 봉빈은 동궁나인인 소쌍을 발견한다. 살내, 사람 냄새, 삶이 지닌 향취를 느끼게 해준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며 봉빈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계집과 계집의 사랑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오로지 육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음행이요 음사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과연 세상이 말하는 금기가 영원히 변함없는 진실일까? 세자빈과 소쌍과 단지 사이에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를 곰파면서 김태감은 새삼 낯설고도 생생한 실상을 발견했다.

그들의 것 또한 사랑이었다. 세상의 아무리 야릇하고 잔인한 시선을 보낸다 해도 내시인 김태감 역시 분명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듯이, 봉빈과 소쌍과 단지의 애증 또한 성별과 신분을 넘어서 세상의 모든 사랑과 같은 빛깔일 수밖에 없었다. 누가 사랑을 남자와 여자, 발기한 다리밋자루와 젖은 음부의 일일뿐이라고 정해 놓았던가? 사랑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본능, 사람이 정해놓은 경계는 결국 사람에 의해 배반당하리라.” -‘옥을 깨다’ 몇 토막

소설가 김별아는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 <축구전쟁>, <영영이별 영이별>, <논개>, <백범>,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채홍>을 펴냈으며, 4월 들어 <불의 꽃>을 펴냈다.

산문집으로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가족판타지>,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를 펴냈 다.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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