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무용가 박시종(청주대학교 겸임교수)]무대 위 한 폭 그림 펼치듯 한국춤 정체성 풀어내는 ‘춤작가’
[인터뷰-무용가 박시종(청주대학교 겸임교수)]무대 위 한 폭 그림 펼치듯 한국춤 정체성 풀어내는 ‘춤작가’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5.0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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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의 소통 위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책임감 느껴

     한국 무용의 서정적인 정서를 담아낸 몸짓과 아름다운 무대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청아하게 해 드물게 무용계에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무용가 박시종(청주대학교 겸임교수, 전 청주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로 인해 그가 이끄는 박시종 무용단은 매 공연마다 매진사례를 이룬다.

     이런 티켓파워에 걸맞게 그는 굵직굵직한 상들을 휩쓸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1월, 제33회 서울무용제에서 무용인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대상 타이틀의 영광을 안았다. 대상 수상작 ‘나와 나타샤와 시인’은 백석 시인의 원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춤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한국무용의 정체성을 풍성히 드러내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지역 기반 무용가가 참가하기 조차 어려운 중앙 무대에 첫 도전해 얻어낸 쾌거라 지역 무용단들에게 큰 격려가 됐다.

     그는 전통춤인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 이수자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작품은 문학성이 짙은 서정적인 창작춤이 주를 이룬다. 무대에서는 늘 자연을 들이고, 그 자연을 배경으로 무용수들의 화려하고 품위있는 춤사위와 의상은 신비스러우면서도 격정적인 힘을 전달한다. 한마디로 그의 무대는 기품이 있다.

     그는 무용 작품 외에도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이 많다. 이에 따라 무용생리학과 심리학 전공을 살려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직장인들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 에코프로그램 등 평생교육원 수업을 개설 및 운영하며 일반인들에게 무용이 어떻게 다가가고 소통될 것인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또한 무용이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한 프로그램을 발굴해 여러 기관에 보급할 계획이며, 일상생활 속의 춤을 프로그램으로 브랜드화 시켜 교육과도 연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예술가인 동시에 후학에 힘쓰고 있는 교육자이기도 한 그의 꿈이라고.

     오는 7월, 그는 본지 주최 공연 ‘토크앤댄스-이야기가 있는 춤’에 출연해 솔로 무대뿐만 아니라 작품 소개부터 진솔한 얘기까지 들려줄 예정이라니 벌써부터 고대하는 관객들이 많다.

△현재 박시종무용단대표 / 청주대 예술대학 공연영상학부 공연예술전공 겸임교수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 이수자 △제33회 서울무용제 대상 / 대한민국무용대상 솔로&듀엣부분 BEST 5 / 현대충북예술상 / 대한민국 문화예술 안무감독상 / PAF 올해의 안무상 외 다수 수상 △주요 안무작 : <넋푸리 가얏고> <달의 노래> <바람의 緣> <하루에> <염화미소> 등

-지난해 서울무용제 대상을 수상했다. 늦었지만 수상 소감 부탁한다.
“15년 전, 박재희 교수님 작품에 조안무와 무용수로  참여했으며 스승님의 작품이 우수작품상, 안무상 연기상을 수상 했지만 대상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이후 지역 시립단체에 있으며 중앙으로 나와 서울무용제에 참여한다는 게 실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지역 기반 무용가일지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선례가 된 것 같아 뜻 깊다. 오랜 기간 동안 틈틈이 준비하며 청주시립무용단 퇴사 이후 함께 해온 제자들과 준비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서울무용제 대상 수상작 ‘나와 나타샤와 시인’에 대해 소개해 달라.
“나와 함께 오랜 시간 작업 해온 홍원기 선생께서 대본을 주셨는데, 첫눈에 반했다. 백석 시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해 새하얀 눈이 날리는 겨울의 풍경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고, 이 작품이라면 무용제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무대를 올리고 싶어 동작 하나 하나에도 무척 공을 들이며 설레는 마음으로 임했다. 무용제라 무대 구성이나 연출에도 부담이 커서 대형으로 해야 하나, 화려하게 해야 하나 욕심이 있었는데 오히려 씬을 채워나갈수록 마음도, 무대도 비우게 되더라. 무작정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고 요란하기보다는 심플하게 구성해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중점을 둔 거다. 또한 이 작품은 수상 이외에도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전까지는 모던과 전통 사이에서 경계가 모호했다면 ‘나와 나타샤와 시인’을 계기로 한국무용가로서의 내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박시종무용단 <나와 나타샤와 시인> 2012

-청주시립무용단에서 훈련장부터 예술감독까지 오랜 시간을 보냈다.
“2002년부터 근무했고 2009년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 10년 가까이 있으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청주시립무용단에서 보냈다. 훈련장으로서 무용수들의 생명력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전국 시도립무용단원들 평균연령이 마흔이 넘어가고 있고, 공연은 매일 이어진다. 어찌 보면 재활할 틈도 없이 공연에 투입되는 무용수들의 몸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생각돼 그들에게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움직임을 제시하고, 동시에 연구했다. 예술감독으로서는 환경 시사작품 ‘달의 노래’를 통해 관객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렸다. 무대에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아 시각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상도 많이 수상했다. 또한 이 공연은 최다관객을 동원한 작품이기도 하다.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 1500석이 모두 매진됐으니까…. 예술감독이자 예술가로서 사회적인 고민에서 내놓은 작품들이 다수 된다.”

-청주에서 서울로 이사 오며 활동무대를 넓혔다. 서울 생활은 어떤가?
“청주에서 쭉 살다가 서울생활을 병행한지 이제 2달이 되가는데, 쉽지만은 않다.(웃음) 며칠 전에는 둘째 딸이 배가 아파서 밤에 응급실을 가야했는데, 어느 병원을 가야할 지도 모르겠고, 가까운 병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난감하더라. 처음에 서울로 간다고 했을 때 다들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다. 10년 가까이 청주시립무용단에 있으면서 1년 행사 스케줄대로 움직였는데, 이제는 내가 모든 걸 선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막중하다.”

-매년 사랑나눔공연을 통한 기부금을 모금하고 있다.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봉사에 뜻이 있어서 한 단체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 아이를 씻겨주려고 안았는데 순간 너무 놀라 아이를 놓칠 뻔했다. 아이는 목뼈가 없었다. 당시 너무 놀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마치 봉사를 하나의 사치로 여겼던 내 자신을 깨닫고 부끄러워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도움 드릴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더니 작품을 통해 그 분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면 좋겠더라. 봉사단체에 도우미분들을 초대해 공연나들이를 선사하고, 최근에는 어려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은은한 힘이 돼줄 수 있도록 ‘겨울날의 풍경’이란 제목으로 연말에 개최하고 있다. 공연은 무료이되 모금함을 두고, 전액은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된다. 적십자와 연계해 소년소녀가장 2명을 선정해 직접적으로 돕기도 했다. 시작과 비교해 이젠 공연제작비가 배에 달하지만 무용가로서 활동하는 한 이 공연은 평생 할 생각이다. 지난해를 제외하고 청주에서 가졌는데, 이젠 주거지를 서울로 옮겼으니 서울에서도 병행 하려고 한다.”

박시종무용단 <하루에> 2010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모티브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다. 대체적으로 어린 시절 정서를 많이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정원에서 놀았던 어릴 적 기억을 토대로 작품을 했다. 그래서 내 작품 중에 자연을 모티브로 한 게 많다. 요즘은 일상에서 자연을 접하기 힘들지 않나. 내 정서 자체도 자연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관객이 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자연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기도 한다. 관객에게 주는 선물이라고나 할까.”

-작품으로 꼭 다뤄보고 싶은 소재는 어떤 게 있나?
“작가로서 욕심 안 나는 게 있겠나.(웃음) 모두 탐나지만 그 중,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과 역사적인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 무거운 문제더라도 미화시켜 아름답게 꺼내서 보여주고 싶다. 특정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와 문화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통해 그 시대를 다시 만나는 거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감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중은 여전히 무용을 멀게만 느끼는데, 이와 관련해 어떤 해결 방안이 있나?
“무용이 퇴보되지 않으려면 일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연장뿐만 아니라 생활에서 쉽게 춤을 접할 수 있다면 대중과 더 가까워질 거다. 미술, 음악은 생활 속에 포함돼 있는데, 무용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처럼 인식돼 있지 않나. 춤 역시 다른 예술장르처럼 일반인들이 언제든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반 속에 무용이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회 곳곳에 공급하고 싶다. 이는 무용인들의 일자리 창출과도 연계될 거라 기대된다. 매주 제자들과 모여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현시키고 있는 중이다.”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할 수 있는 춤”  잠시나마 생활속에 지쳐있던 몸을 짧은 시간에 풀 수 있는 춤을 만들어 보급한다거나, 피곤한 직장인들의 기분을 풀어줄 춤이라거나…. 요즘 학교폭력 등 아이들의 사회적인 문제가 심각한데, 등교 전에 엄마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며 30초만 명상하더라도 정서적으로 차분해지면서 문제가 훨씬 줄어들 거란 생각이 든다. 요즘은 어딜 가나 내 눈이 반짝반짝 거린다.(웃음) 춤작가로서, 예술가로서 어떻게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눈에 보이는 것마다 연관시켜 생각한다.”

-티켓파워가 상당하다. 관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박재희 교수님 작품에 주역으로 나오면서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분들은 공연 때마다 찾아주시더라. 문학적이고 자연과 관련이 있어서 그런 면을 선호하기도 하고, 또 공연 무대 자체가 아름답고 몽환적이라 그런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고 내 작품은 늘 열정을 다해주시는 최고의 스텝들과 함께 해서 그런 것에 기대를 갖고 지켜봐주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티켓을 팔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작가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관객들이 먼저 다가와 후원해주시고, 제작비도 일부도 도와주시곤 한다. 특히 ‘겨울날의 풍경’은 외부에서 도움을 받는 공연이다.”

-원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과 함께 작업을 자주 한다. 인연이 깊다고 들었는데.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무용가로, 원일 감독은 작곡가로 서로 처음 만났다. 오랜 친구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게 중요한 멘토이기도 하다. 늘 마음속에 우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고나 할까. 내 작품이 차별화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실제로도 수작이라고 평가 받은 작품들 대부분은 원일 감독이 참여한 작품이었다.

-본인을 ‘작가’라고 칭하더라. 대부분은 안무가라고 하기 마련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춤을 통해 춤만 추는 게 아닌 융복합적으로 많은 분들을 만나고 많은 작업을 하게 되는데, 안무가라고만 한다면 왠지 내 자신을 제한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작가라고 하면 보다 더 포괄적으로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내 자신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격조 있게 느껴지지 않나.(웃음)”

-오는 7월, 본지 주최 공연 ‘토크앤댄스’에 출연한다.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사부곡으로 했던 작품을 올린다. ‘바람의 연’ 중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담은 부분이 있어 솔로로 할 예정이다. 부모님께 드리는 춤으로 쓴 편지라고 할 수 있다. 무용가가 직접 자기 작품을 설명하고 관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해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요즘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이 공연을 통해 내 예술가적 기질을 시험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꿈은 무엇인가?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 오랜 시간 고민할수록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더라. 또한 무용가로서 사회적인 역할과 아무래도 의미 있는 공연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