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박물관 - 맡겨진 과업이다.
[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박물관 - 맡겨진 과업이다.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
  • 승인 2013.05.1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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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문화학 박사(박물관학·박물관 정책)
박물관법이 제정 수준의 개정을 앞두고 있다.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진흥이 떨어진 「박물관법」으로 명칭부터 바뀌게 된다. 

법명에 ‘진흥’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은 그 대상이 진흥되지 않았음이 전제된다. 반면 진흥이 빠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진흥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2004년도부터 사립에까지 국고가 지원되어 10년이 된 지금에는 지원의 형태와 지원 처도 다양해졌다. 이와 함께 사람들의 소득은 늘어 삶의 질도 향상되었다. 주5일제 근무 및 학교수업 제도 정착됨에 따라 문화여가 욕구와 필요성 또한 크게 증가하는 등. 여러 요인에 힘입어 2004년 기준 438개였던 박물관 수는 1,010관(2011년 말 기준)으로 늘어났다. 박물관이 내외적으로 어느 정도의 진흥 또는 그 분위기를 타고 있는 셈이다.

개정 「박물관법」에서는 평가인증제 도입, 행정평가 및 사전·사후 감리제 도입 등 박물관의 시스템과 활동의 질을 높이는데 방향이 맞춰진 느낌이다. 또한, 박물관과 관련한 용어와 활동, 설립 및 운영주체에 대한 구획정리도 보다 엄격해질 조짐이다. 규정을 어기게 되면 과태료까지 부과할 방침이고 보면, 박물관 운영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립은 사유재산이다. 그럼에도 정책강화를 통한 정부의 보다 깊숙한 개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박물관은 돈이 될 수 없는 비영리기관이다. 따라서 일부 관장들의 말을 빌자면 “박물관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자료를 수집하고 박물관을 만들어 값지게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문화유산은 다양해 질 수도 보존될 수도 없게 된다. 숭고한 활동이 아닐 수 없다. 

가치는 있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하는 행위나 실체를 경제학에서는 가치재(價値財, Merit goods)라고 한다. 박물관은 대표적인 가치재다. 재화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에서 박물관은 포함되기 힘든 구조를 갖고 있다. 막대한 돈과 노력을 들여 자료를 수집하고 공간을 확보하여 시설을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고용하여 운영을 한다는 것은 이윤 창출의 공식을 들이 댈 때, 한심한 구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생각할 때 안할 수도 없는 것 또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막대한 돈과 전문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그 노력은 항구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아무나 할 수 없다.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 지역성을 담고 있는 자료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할 수 있지만, 전통적·사료적·미학적·보존적 가치를 채 획득하지 못한 것은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어 사적(私的)인 힘을 빌지 않으면 구축될 수없는 구조이다. 문화콘텐츠 확보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활동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또한 박물관은 대표적인 외부편익(外部便益)을 제공한다. 이 개념은 영국의 경제학자 마셜(A. Marshall)이 정립한 것으로 ‘경제활동에서 부가 활동 없이 얻어지는 또 다른 이익’을 뜻한다. 조림(造林)을 위해 아카시아나무를 심었더니 우리에게 아카시아 꿀을 먹게 해주었으며, 양봉업자에게는 꿀 생산을 증가하게 한 현상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박물관을 통해 기대되는 외부편익은 무엇일까? 직접적으로는 관련 산업의 발전, 소장 자료를 차용한 다양한 디자인 상품 개발 등이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박물관의 유명세에 따른 지역인지도 상승과 주변 경제 활성화 등이 해당된다. 루브르로 인한 파리의 인지도 강화,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이전에 따른 주변 아파트시세 상승이 이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사립박물관에서도 공적자금을 요구할 수 있는 분명한 명분이다. 반면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이 사사로운 것이 아님도 인지케 한다. 정부의 국고, 박물관에 대한 민간기업의 사회공헌기금지원, 일반인들의 기증과 기부 등은 그 명분이 여기에 있다. 

반면, 가치재나 외부편익에 반해 박물관에서나 박물관을 중심으로 해서 불리한 영향을 키치는 외부불경제(外部不經濟, external dis-economies)적 요인도 있다. 열악한 수장고, 보존관리 시설 및 전문성 부재 등으로 소장 자료가 오히려 사장되거나, 부실한 운영으로 국고가 낭비되는 등의 직접적인 요인도 있지만, 간접적으로는 지역사회의 이미지를 도매금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몇몇 기초자치단체에서 부실 운영하여 공론화 된 공립박물관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고 있다. 정부나 박물관 운영자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이러한 점에서 「박물관법」의 대폭적인 개정방향은 고무적이다. 박물관 은 분명 많은 수고가 수반되는 가치 있는 활동이며 외부편익도 제공하는 숭고한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외부불경제적 요인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박물관이 공적인 기관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형식이 내용을 변화케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공립과 공공법인이기 이전에 생각과 철학의 변화가 선행되어야한다. 박물관 내 것이 아니며 내게 맡겨진 과업임을 상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