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평우의 우리문화 바로 보기] 무뇌충들이 너무 많다.
[황평우의 우리문화 바로 보기] 무뇌충들이 너무 많다.
  •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 승인 2013.05.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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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육의전박물관 관장/문화연대 약탈문화재환수위원회 위원장
현재 서울의 한양도성내 조선시대 관아 건물은 거의 파손되었고, 한성대 입구 삼선공원으로 옮겨진 삼군부 총무당과 육군사관학교 내의 삼군부 청헌당 건물, 그리고 경복궁 옆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지어지고 있는 종친부터의 경근당과 옥첩당만 남아 있다.
 
종친부 유래와 변천, 기능은 "고려 때 제군부(諸君府)를 세종 15년에 고친 이름으로 조선말 1905년에는 종부사(宗簿司)로 고쳤으나 2년 후에 폐지되어 그 업무는 규장각(奎章閣)으로 옮겨졌으며, 조선시대 국왕들의 족보와 얼굴 모습을 그린 영정을 받들고 국왕 친척들에게 품계와 벼슬을 주는 인사 문제와 왕족간의 크고 작은일 등에 관한 문제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아였다. 19세기 말까지 왕족 관련 업무를 맡던 종친부의 핵심 관아는 세 동이었다.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제일 먼저 종친부를 다시 지었는데, 당시 대군 등 최고 왕족들의 사무를 처리하던 경근당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 날개처럼 대칭을 이뤄 오른쪽에 옥첩당(고위 관리들의 집무처)이, 왼쪽에는 이승당(하급 낭인들의 집무처)이 당당하게 자리 잡는 구조를 만들었다. 현재 남은 건물은 경근당과 옥첩당뿐이다.

종친부 건물의 구조를 알 수 있는 현황도로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가 있는데, 조선 말기 문신 한필교(1807-1878)는 42년 동안 부임했던 관아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 화첩으로 엮었다. 한 번 입관하면 평생 관의 녹을 먹던 사대부로서 훗날 야인이 되어도 그림으로 붙잡아 둔 임지의 기억을 되살려 추억하고 싶어 펴낸 책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숙천제아도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옌칭도서관 희귀본 소장실에 보관되어있다. 숙천제아도를 한글로 풀면 '평생 거쳐 온 여러 관아의 그림이란 뜻이다. 책에는 문신 한필교가 거쳐 간 관청건물, 부임지 마을의 우물 위치나 다른 마을로 이어진 길, 산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렇게 꼼꼼히 적은 덕에 이를 근거로 옛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고증자료이기도 하다. 책에 기록된 관청 중 옛 모습 전체를 온전히 보존한 건물이 현재 없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와 기억을 지우기 위해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을 헐었던 일제도 종친부만은 손대지 못했다. 건물 상당 부분이 일제의 경성의학전문학교 병원 건립으로 이승당이 뜯겨나갔고, 1970년대는 기무사령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 건물에 국군수도통합병원이 들어서면서 시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접근하기 두려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사망진단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병원 건물은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최악의 상황은 1981년 신군부의 핵심인 보안사(전두환)는 테니스장을 짓기 위해 종친부의 경근당과 옥첩당을 인근 정독도서관(옛 경기고)으로 강제 이전시켜버렸다.
 
경복궁을 헐어버리고 박람회장등 궁궐을 오락공간으로 만들어버린 일제와 다를바가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지난 정부는 기무사령부와 국군병원 부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이곳을 경복궁 주차장과 복합문화관광시설로 활용하겠다는 기본 구상(안)을 내놓자 종친부 건물을 제자리로 돌리고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지 시작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공론화, 토론회, 여론수렴 없이 조선의 핵심 역사와 정치의 공간을 파헤쳐버리고 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는다고 발표해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으로 이미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데 익숙한 지라, 종친부정도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미술관을 짓기 전 발굴조사를 했는데 종친부 터에는 옛 종친부 건물(경근당, 옥첩당, 이승당)의 기초가 정연하게 남아있었다. 당연히 문화재계는 조선의 역사와 정치를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커져 갔지만, 간악한 일제보다 더 못한 지난 정부와 문화부, 미술계는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데 더욱 광기를 부렸다.
 
그런데 더 경악하는 일은 마지막 남아있던 종친부 담장을 가치가 없다고 문화부와 미술관측이 헐어서 버렸다는 것이다. 이를 허가한 문화재위원회나 철거를 요구하는 주변 장사치들 모두에게 묻는 다. 경복궁 담장도 답답하니 철거하자고 요구하지 뭐하러 남겨두나!
 
이로써 북촌의 정체성은 또 하나 사라져버렸다. 풍문여고(안동 별궁) 담장은 무사하려나 모르겠다. 무뇌충들이 너무 많다.
 

* 황 평 우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사적분과]
육의전박물관 관장 [www.yujm.org]
문화연대 약탈문화재 환수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