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한문으로도 시를 쓴 정치가이자 경세가
고산 윤선도, 한문으로도 시를 쓴 정치가이자 경세가
  • 김호부 객원기자
  • 승인 2013.05.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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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고산유고>1,2권 펴내

한국고전번역원은 <고산유고> 1~2권을 펴냈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한글로 시를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졌던 고산 윤선도 선생이 한문으로 지은 시도 꽤 있으며, “남의 억울함을 푸는 데 앞장 선 정치가”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일깨운다.

고산유고집-한국학중앙연구원

연잎에 밥을 싸 두고 반찬은 장만하지 마라
닻 올려라 닻 올려라
삿갓은 이미 쓰고 있노라, 도롱이는 가져왔느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무심한 갈매기는 내가 저를 쫓는 것인가, 제가 나를 쫓는 것인가

-‘어부사시가’에서

조선 허리춤을 대표하는 사대부 문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 선생은 한글이 지닌 맛깔스러움을 한껏 살린 ‘오우가’(五友歌)와 함께 시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고산은 한글로만 된 시만을 지었을까? 아니다. 선생은 한문으로 쓴 시도 꽤 많이 남긴 정치가이자 경세가였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엮은 윤선도 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는 모두 4권이다. ‘오우가’나 ‘어부사시사’ 등 한글로 된 시는 이 문집 가운데 3%다. 나머지는 모두 한시로 된 작품이거나 한문으로 쓴 작품들이다. 이 책은 평생 한문 번역에 정열을 쏟아온 이상현 선생이 맡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1권에는 윤선도가 쓴 한시가 실려 있으며, 2권에는 윤선도가 쓴 상소문(上疏文)과 편지글이 실려 있다. 우리말로 옮기고 있는 3∼4권에는 편지글과 제문(祭文), 기(記), 서(序), 잡저(雜著) 등 한문 산문, 한글로 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 등 국문시가가 들어 있다.

이번 <고산유고> 1권이 고산이 국문시가보다 한문시가, 한문 작품을 쓰는데 더 많은 힘을 쏟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면 2권은 정치가, 경세가로서 활동한 고산을 새롭게 비추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윤선도는 문인이면서도 정치가이자 탁월한 경세가였다.

윤선도는 억울하게 탄압을 받다 희생된 선배들에 대해서도 그냥 두지 않고 진실을 밝혀 그들이 지닌 억울함을 푸는 데 앞장섰다. 이른바 ‘기축옥사’라는 정여립 사건에 무고하게 엮여 억울한 죽음을 당한 호남 출신 선배 학자 곤재 정개청(困齋 鄭介淸)을 위한 신원회복에도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고산이 이때 억울하게 죽어간 상황을 제대로 밝혀내지 않으면 반대파들이 국시(國是)에 어긋난다 하여 수천 자에 이르는 ‘국시소’(國是疏)를 올려 혹독한 공격을 퍼부었다. 윤선도는 이 상소에서 정개청을 비롯해 최영경이 정철(鄭澈)과 사사로운 감정에 얽혀 화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정철은 고전 국문 시가에 있어서 윤선도, 박인로와 함께 3대 ‘국민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관동별곡’을 쓴 이다. 윤선도는 이 상소를 열 차례나 올렸으나 그때마다 기각당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고산유고> 번역서에는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당시 어지러운 정치 현실에 대해 고산이 소신을 밝힌 상소문, 예송 등 당대 주요 논쟁에 대해 소견을 피력한 것이 많아 정치적,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연구 자료로 활용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