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존재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존재
  •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 승인 2013.07.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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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재는 척도 가운데 하나로 기록을 들 수 있다. 그래서 기록문화라는 말이 성립한다. 일어난 일을 기록해 후대에 전승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문화는 계승, 발전되고 더욱 융성해진다. 다행히도 우리는 조선시대의 왕조실록과 같은 탄탄한 기록 문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문명국의 일원으로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면 불과 50여 년 전에 제작된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 필름이 아직도 발굴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사라져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는 초등학교 코흘리개 시절에 이 영화를 막내 누나와 함께 극장에서 봤다. 그런데 이 추억의 명화가 프린트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렸을 적 흔히 봤던 밀짚모자 테두리가 주범인 것 같다. 그 무렵, 밀짚모자를 장식하기 위해 테두리를 영화 필름으로 둘렀는데, 그렇게 해서 애꿎은 영화 필름만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만일 그 때 영화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이 있었더라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술계에 아카이브(archive)가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용어는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했다. 그 아카이브에 일찍 눈을 뜬 사람이 바로 김달진 씨(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이다. 그는 고등학교 학생 시절부터 미술기사에 관심을 갖고 스크랩하는 등 ‘아키비스트’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그는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 이경성 홍익대 박물관장을 찾아가 이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이 교수는 열심히 하라며 격려를 해주었다. 그때 맺은 인연은 이 교수가 작고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교수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할 때, 이 교수의 부름을 받은 김달진 관장은 임시 일용직으로 근무하면서 미술자료와 인연을 맺게 된다.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이란 별명은 김달진 관장에게 늘 따라다니는 호칭으로 한국미술 자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그를 빗댄 것이다. 그는 전시 도록이 가득 담긴 검정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인사동을 비롯한 화랑가를 정기적으로 순례했다. 현재 홍대 앞에 위치해 있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순전히 김달진 관장 개인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40년에 걸쳐 이룩된 미술 기록문화의 금자탑이다. 말하자면 국가가 할 일을 개인이 해낸 것이다. 그런 김 관장에게 요즈음 들어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이미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듯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박물관 건물에 대한 임대료 지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내년 말에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김달진 관장을 비롯, 후원회 차원에서 여러 차례 논의했지만 아이디어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이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카이브 전시 때문이다. 단순히 자료를 쌓아두고 보존하는 차원이 아니라, 산더미 같은 자료를 정리, 분류, 분석하여 미술계의 쟁점을 낳는 창의적인 전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현대미술 해외 진출 60년]전을 비롯하여 [외국미술 국내전시 60년]전, 현재 열리고 있는 [한국미술단체 100년]전 등 3부작은 미술 아카이브 전시의 백미이다.  

우리말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아무리 귀한 자료라도 쌓아 놓기만 하면 무용지물이란 뜻이다.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그런 박물관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박물관을 살리기 위한 여러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속 시원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이곳에 소장된 자료들이 김달진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지적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 주옥같은 자료들이 흩어지고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지를 모으고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