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우 손병호] 8년 만의 귀향 “미뤄뒀던 연극 열정 다시 불 태우겠다”
[인터뷰-배우 손병호] 8년 만의 귀향 “미뤄뒀던 연극 열정 다시 불 태우겠다”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7.25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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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복귀작 <8월의 축제> 인자한 아버지로 가족의 소중함 담아내

     배우 손병호의 연극무대 복귀작 <8월의 축제>가 내달 1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공연된다. 주로 강한 인상의 연기를 보여주던 이전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죽은 딸을 잊지 못하고, 사위를 걱정하는 인자한 모습의 아버지로 분해 열연한다.

     죽은 딸이 눈에 보이는 장인과 그 곁을 지키며 사는 사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번 작품에서 아버지와 딸, 아들 같은 사위가 그려내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 감성이 사라진 이 시대에 따뜻한 울림으로 관객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손병호는 영화 <파이란> <흡혈형사 나도열> <야수>, 드라마 <MBC 하얀거탑> <SBS 자이언트> 등에서 빠지면 섭섭한 명품 조연으로 강렬한 연기와 캐릭터를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본래 그는 극단 목화 출신 연극배우로서, 대학로 평정 후 우연한 기회로 영화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당시 늦깎이 결혼과 맞물려 경제적인 이유로 그는 한동안 연극보다는 드라마와 영화에 치중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늘 감출 수 없는 연극을 향한 열망과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동아연극상 대상(1990), 서울연극제 연기상(1998), 깐느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 특별대상(1999) 등을 통해 그의 연기력은 이미 입증된 바. 이외에도 그는 비언어실험극을 추구하는 극단 ZIZ(짓)을 창단해 <깔리귤라닷컴>을 연출하고, <창무6인전-눈물나무> <한일 페스티발-사랑굿> <한국무용제전-다갈라> 등 다수의 무용공연을 연출해 몸을 도구로 삼은 무대 표현법에 심취하기도 했다.

     8년 만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연극무대인만큼 또다시 한 번 연극에 빠져보겠다는 그를 만났다.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주요 출연작 : 영화 <파이란> <흡혈형사 나도열> <야수> <바르게 살자>, TV드라마 <MBC 하얀거탑> <SBS 자이언트> <KBS 각시탈> <jTBC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 연극 <한·일 셰익스피어전 한여름밤의 꿈> <리어왕> <당통의 죽음> <운상각> <비닐하우스> <일본 파르코극장 초청공연 불의 나라> <클로져> 등 외 다수 △연출작품 : <창무춤판 10주년-춤과 연극의 만남오늘 너를 안는다> <한국무용제전-다갈라> <평론가가 뽑은 안무가전-몽연> <ZIZ 레퍼터리컴퍼니 창단공연-깔리귤라 닷컴> △1990 동아연극상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대상 / 1998 서울연극제 <블루 사이공> 연기상 / 1999 깐느영화제 단편영화 <소풍> 심사위원 특별대상 / 2002 서울공연예술제 연기상 등 수상

-연극 <8월의 축제>로 8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을 복귀작으로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연극 하고 싶다고 했더니 회사에서 준비해준 작품이다. 실은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차분히 대본을 읽어보니 잔잔한 감동을 주더라. 또 내가 두 딸의 아버지다보니 내용이 와 닿기도 했다. 스토리로 승부하는 이런 드라마 연극을 한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어서 택했다. 회사에서 준비해준 작품이기도 해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TV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고향인 연극무대로 돌아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연극무대는 살아있다. 가수가 라이브콘서트를 하듯 나도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었다. 내가 관객에게 에너지를 전달하고, 나도 관객들에게 에너지를 받기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촉수가 살아있는 긴장감을 통해 살아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또 연기의 제약이 없어 표현하는데 자유롭다. 늘 연극을 갈망하고 있었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며 연극을 조금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연극에 대한 열정에 다시 불이 붙었다.(웃음) 또 회사에서 날 후원해주고, 작품도 지원해줘서 든든하다.”

-주로 악역을 맡아 강한 인상의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영화 <파이란>(2001)에서의 깡패보스 ‘용식’ 역이 인상적이었다.
“<파이란>부터 내 악랄한 연기가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 같다. 무대를 누비던 연극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가게 되면 연극배우 특유의 강렬한 눈빛으로 주목받곤 한다. <파이란>은 좋은 작품이었고, 좋은 배우들과 함께 좋은 배역을 맡은 경우였다. 그러니 더욱 갈구할 수밖에 없었고 눈빛이 살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스타일의 작품은 무엇인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단순 현실을 다루기보다는 연극에는 그걸 뛰어넘는 상상력이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극무대는 마치 다른 세상같이, 환상처럼 보여야 한다.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그 재미와 충격에 중점을 두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이 솔직히 좀 꺼려지기도 했지만 문학성에 의미를 두고 참여했다. 연극에서만 가능한 체험과 연극성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

연극 <8월의 축제>에서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로 열연하는 손병호.

-오랜만에 돌아온 무대라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배우들과의 호흡은 잘 맞는지 궁금하다.
“드라마와 비교해 크게 다른 게 요구되지 않아 어려움은 없었다. 아버지 입장에서 어떤 시선을 지녀야 하는지 연구했다. 딸과의 갈등구조와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하는지 생각하다 찾은 방법이 일상생활에서 오는 친근함과 친밀함이었다. 딸과 소꿉놀이 장난하듯 놀기도 하고, 함께 사위를 놀리기도 하고…. 재밌으면서도 충분히 가능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을 가미해봤다. 출연 배우들 사이에서는 내가 최고 선배이자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감정 표출과 반응 표현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다 있는데, 모든 감정을 다 충분히 표현하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새삼스럽게 난 연출이 더 잘 맞는 것 같단 생각도 들더라. 연기는 어딘가 모르게 한정적인 느낌인데, 연출을 하면서 연구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그런 과정이 너무나 좋다. 훨씬 더 포괄적이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지난 2000년 극단 ZIZ(짓)을 만들어 신체 움직임을 도구 삼아 무대 언어를 표현한 비언어극을 연출하지 않았었나. 이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무용가인 아내와 함께 극단 ZIZ(짓)을 만들었다. 무용이란 언어에 공감하게 되면서 연극과 접목시키기 위해 만들게 된 거다. 언어를 최대한 절제하면서 그 이외의 표현법을 통해 무대를 이끌어나가고 싶었다. 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내가 아내의 무대를 보고 몸이란 게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깨달은 때가 있었다. 백 마디의 말보다 몸짓 하나가 더 대단했다. 무용에는 문외한인 나와 평생 무용만 한 아내가 함께 일하려니 처음에는 충돌도 많았다.(웃음) 나는 연출을 맡고 아내는 안무를 담당했다. 그 중 창단기념공연 <깔리귤라닷컴>이란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무용적인 요소를 많이 접목해 신선하다고 호평을 받았었다. 재해석해 다시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조만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시에는 연출만 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주인공으로 나서 칼리굴라를 연기하고 싶다.”

-‘손병호게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기도 했다. 어떻게 탄생된 건가?
“요즘은 술집을 가나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다들 전화기만 보고 있지 않나. 같이 있지만 오히려 더 단절돼 있는 상황이랄까. 모두들 따로 놀고 있다. 옛날에 기타 하나들고 다 같이 모여서 웃고 놀던 때를 떠올리며 뭉쳐서 즐길 수 있을 게 뭐가 있나 해서 지인들끼리 서로서로 술자리에 게임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걸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나가서 우연히 하게 됐는데, 이게 여기까지 온 거다. 이게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줄은 몰랐다. 그날 방송 녹화 갈 때 이 게임은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는데, 녹화 중 우연히 게임 얘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게임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게임이 너무 좋다며 ‘손병호게임’으로 명명까지 된 거다. 예전엔 길거리 돌아다녀도 날 못 알아봤는데, 게임 이후부터 다들 알아보며 게임 한 번만 직접 해달라고들 하더라.(웃음) 이 게임이 순식간에 확산된 만큼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소통이 단절돼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대의 필요성에 맞아 떨어져 게임이 그만큼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

-마흔에 늦깎이 결혼해 예쁜 딸 둘이 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에는 영화도 안 할 때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다. 그런 이유로 결혼을 미루다보니 어느새 그렇게 된 거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왜 이렇게 늦게 했나 싶었다. 사람은 그냥 다 살게 돼 있더라. 크든 작든 갖고 있는 걸 키우고 넓히며 사는 건데 말이다. 나와 같은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 후배들에게 말해주곤 한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나 또한 두려움으로 늦게 결혼했지만 작은 걸 쌓아가며 행복을 부르는 거더라고 말이다. 근데 내 말 듣고 결혼한 후배들이 다 내 욕하고 있다.(웃음) 장모님께서 날 처음 보시곤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웬 못되게 생긴 머슴 같은 놈이 왔다고. 지금은 오히려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씀하시지만 정말 난 장모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딸 낳아보니까 더더욱 그렇다.”

-현재 우리 연극계 전반을 어떻게 바라보나?
“연극계가 대중예술로 너무 치우쳐 점차 저급화돼 가는 느낌이다. 극단 체제가 무너지면서 기획사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극단 마다 다른 뚜렷한 색깔과 영역이 사라져간다. 작품성보다는 그저 원초적인 재미에 이끌리는 연극이 주를 이루니 답답할 따름이다. 배우들조차도 기획사에 코 껴서 끌려가는 듯하다. 나는 예전에 오태석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너무도 신기해 받아 목화에 들어갔었다. 어떻게 저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저런 생각이 들었을까 등 궁금증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젠 배우들이 그런 궁금증도 안 가진다. 그저 돈을 따라갈 뿐이다. 세상이 변하고, 관점과 시각이 달라진 거라고 하지만 안타깝다.”

-예정된 작품이 있다면 알려 달라.
“JTBC 꽃들의전쟁 계속 촬영 중이고, 8월 말에는 KBS 드라마 하나 새로 들어갈 것 같다. 그 전에 연극 하나 더 하고 싶기도 하다. 내년 중에 직접 연출한 작품 하나 올리고 싶어서 좋은 작품 써달라고 주변에 부탁드리고 있다.”

-연기자로서 최종 꿈은 무엇인가?
“그저 좋은 연출가이자 좋은 배우로서 기억되고 싶다. 앞으로도 좋은 무대에 계속 오르고 싶고, 끝까지 예술가로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