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문화적 양상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문화적 양상
  •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 승인 2013.07.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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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는 어느덧 보통명사가 되고 말았다. SNS가 보편화된 시대에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사업도 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디지털 노마드족이라고 부른다. 선사시대 인들이 활과 화살을 들고 동물 사냥을 다녔듯이, 이들의 유일한 무기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거래하고,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보낸다. 참 편리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 뿐인가?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하면 실시간에 세계의 인류가 하나가 된다. 세계의 인류가 한 울타리 속에서 만나 공통 과제를 논의하고 이는 또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파된다. 이른바 사이버 상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모드는 아날로그의 그것과는 현격한 차별화를 이루면서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나는 1999년 12월 31일부터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 1일 새벽 2시까지 전국의 행위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난장 밀레니엄 페스티벌]을 홍대 앞에 있는 씨어터 제로에서 기획하였다. 설치작가를 포함하여 행위예술가 약 3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축제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디지털 노마드’란 말은 아직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가 21세기형 신인류로 묘사한 디지털 노마드는 첨단의 정보통신기기로 무장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좇아 세계를 유랑하는 새로운 개념의 유목민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유목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초원을 누빈데 반해,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은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 혹은 보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기 위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다. 이러한 시대의 문화의 패턴은 과연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SNS의 대표적인 매체인 페이스북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세계에 산재해 있는 다양한 문화들이 혼융을 이루는 것이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새로운 문화 패턴이랄 수 있다. 둘 혹은 셋 이상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의 이름들이 섞여 새로운 이름이 생성되고 페이스북에서 통용된다. 하나의 문화는 다른 문화와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전파된다. 페이스북의 ‘퍼가기’ 기능은 이러한 문화의 전파를 가능케 하는 매개물이다. 댓글을 다는 기능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적합한 관객참여 효과를 유발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만큼 민주적인 매체도 드물다. 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이 바로 세계적인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언이 예견한 전자 유목민의 특징인 것이다. 고대 그리이스의 광장 민주주의의 현대판인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전자 민주주의는 그러나 그만큼 폐단도 크다. 눈에 보이지 않는 특정 세력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여론을 형성하고 그 여론에 따라 우중(愚衆)을 움직이는 사이버 참여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특정 세력의 이익 창출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될 뿐이다. 사정이 그러할 때 이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암울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밀레니엄 쇼를 기획하면서 예술인들이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가서 다시 오리엔트 특급으로 갈아타고 이스탄불에 내리는 거대한 문화 이벤트를 구상한 바 있다. 마치 까마득한 옛날 몽골리안 족들이 다섯 개의 몽골리안 루트를 타고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듯이, 이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에 아날로그 시대의 루트를 타고 세계를 누빈다면 더 없이 멋진 여행이 될 것이다. 때 마침 충남 공주에 근거지를 둔 야투 자연미술가협회가 세계의 자연미술가 기획자들을 초청하여 [2015 글로벌 노마딕 프로젝트]를 위한 <제1회 자연미술기획자 회의>을 다가오는 10월에 공주 자연미술가의 집에서 개최한다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이 회의에는 영국의 클라이브 아담스를 비롯하여 캐나다의 존 K 그란데 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자연미술 전문가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보다 진취적인 의식을 갖고 세계의 진출을 꾀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 윤 진 섭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과 졸업.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철학박사.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서울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총감독,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국립현대미술관 초빙큐레이터(한국의 단색화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호남대 교수,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저서로 <몸의 연구>,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 <한국의 팝아트>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