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미술관도 박물관이다
[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미술관도 박물관이다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
  • 승인 2013.08.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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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문화학 박사(박물관학·박물관 정책)
정부 일각에서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미술관을 분리하여 별도의 법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는 모양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생물에서 23개 문(門)의 집합체인 ‘동물계(界)’에서 꿩과(科)인 ‘공작(孔雀)’만을 빼 내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한낱 가치 없는 소모적발상이다.
 
우리나라 박물관의 국제적 위상
 
우리나라는 2004년 ICOM(국제박물관위원회_UNESCO 자문협력기관) 58년 역사상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박물관대회(제20차)’를 개최했다. 또한 2010년에는 아세무스[ASEMUS,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소속의 국가 간 박물관 네트워크] 의장국으로 선임되어 2012년에는 서울 총회(제5차)를 성공리에 개최한바 있다. 

뿐 만 아니라 2011년에는 문화유산 보존과 국제공조강화를 목적으로 문화유산 분야 주요 국제기구에 의해 설립(1996년)된 국제청방패위원회(ICBS,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Blue Shield) 대회도 세계에서 최초로 개최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국제 박물관활동을 주도하고 있어 ICOM과 AAM(미국박물관협회), MA(영국박물관협회) 등으로부터 국제 박물관의 리더 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박물관과 미술관의 분리는 박물관 내부에서만 보더라도 국제적인 위상에 역행하는 것이며, 이는 마치 루브르가 박물관이냐 미술관이냐 하는 것과 같은 상식 이하의 발상으로 글로벌한 개념에서도 심각한 퇴보를 초래할 수 있어 우려된다. 한편 ICOM에서는 ‘박물관(Museum)을 인간 환경의 물질적인 증거를 수집·보존·연구하여 전시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의 발전에 봉사할 수 있도록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연구와 교육, 과학에 이바지하는 비영리적이고 항구적인 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이때 ‘박물관’은 기능과 시스템을 의미하는 낱말의 조합이며, 그중에서 ‘미술관(Art Museum)’은 ‘미학적 가치가 내재된 인간에 의해 생산된 예술품(그림, 서예, 조각, 공예, 디자인 등)을 수집·보존·연구·전시’한다는 것으로 소장 자료의 성격만 다소 다를 뿐 그 기능은 박물관에 포함된 낱말의 조합임을 의미한다. 역사박물관(History Museum),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등과 같은 조합인 것이다. 따라서 종로에 있는 ‘한국미술박물관’, 영월의 ‘아프리카미술박물관’과 ‘묵산미술박물관’과 같은 표현이 보다 적확하다.

글로벌 스탠더드 관점에서 재 인식필요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중앙(Center)’은 위치에 대한 개념이며, 국립현대미술관(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에서 ‘현대(Contemporary)’는 소장 자료의 시대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립중앙미술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포함되거나 같은 개념이며,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박물관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분리된다면 우리나라에서 현대이전의 근대를 테마로 한 미술관은 들어설 수 없다는 논리가 됨을 인지해야한다. 이에 더해 분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접근법을 대입한다면 이미 여러 박물관에서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는 미술사(美術史) 전공자들은 미술관에서만 일해야 하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식당'은 먹는 음식을 취급하는 기능의 낱말조합이며, '파스타집'은 그 중에서 면류인 파스타만을 취급한다는 품목의 구분법인 것이다. 즉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마치 「식당 및 파스타집 진흥법」과 같은 것으로 조합의 면에서 매우 저급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법률 제10367호, 이하 ‘박미법’)에서 ‘미술관’이란 ~중략~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중략~ 하는 시설로 정의하고 있어 이미 박물관에 포함되어있음 인정하고 있어 박물관에서 미술관을 분리하고자 함은 타당성 있는 명분이 될 수 없다. 만약 미술관이 박물관과 분리되어 새 법령에 박물관과 차별화된 미술관의 정의와 기능을 새로이 한다면 그것은 분명 지극히 궁색할 수밖에 없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분리 될 경우, 박물관에 해당되는 유사시설(자료관, 사료관, 유물관, 전시장, 전시관, 향토관, 교육관, 문서관, 기념관, 보존소, 민속관, 민속촌, 문화관, 예술관, 문화의 집, 야외 전시 공원 및 이와 유사한 명칭과 기능을 갖는 문화시설. ‘박미법’ 제5조)도 각각의 법으로 분리하자고 할 때 이를 막을 명분 또한 없을 것이며, 적지 않은 혼란 또한 야기될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각기 다른 기구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인식으로 글로벌한 문화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재정립이 시급히 요구된다. 

「박물관법」(1984년 제정)이 폐지되고 현행「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제정(1991년)되면서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행정 편의적 관점과 이해당사자들의 근시안적 고집에 의해 박물관과 미술관이 각각 분리된 것은 큰 과오가 아닐 수 없다. 미술관은 최고의 문화 지성이 이끌어가는 문화 콘텐츠의 발전소이다. 이러한 그릇된 논의가 자칫 집단이기주이로 폄훼될까우려된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분리에 대한 논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고되어야 하며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통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