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기행 - 101] 쉼 박물관
[박물관기행 - 101] 쉼 박물관
  • 이정진 Museum Traveler
  • 승인 2013.09.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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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彼岸)으로 떠나는 나그네의 축제

죽음이란 두려움이다. 모든 죽음은 다양한 모습의 슬픔과 함께 다가오며,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 받아들이기에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죽음은 삶으로부터 멀지도,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다른 세계로 모두가 언젠가는 거쳐 가야 할 길이자 현실이다.      

조병화(趙炳華, 1921.5.2~2003.3.8) 시인은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섰다.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비문에서처럼 죽음이란 사(死) 즉, 소멸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며, 남아있는 자들이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잠깐의 과정은 다름 아닌 축제인 것이다.

▲쉼 박물관 전경

종로 세검정 홍지문(弘智門) 앞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삼각산 끝자락에 아늑하게 안긴들 들어서 이국적인 대저택이 눈에 띤다.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이 않은 이 건물이 죽음을 테마로 한 특수박물관 ‘쉼’이다. 쉼 박물관은 전통 상여(喪輿)문화를 보여주는 곳으로, 2007년 10월 8일에 개관하여 그해 10월 17일에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해 등록되었다. 사택을 개조하여 만든 이곳은 설립자 박기옥 선생(현 고문)께서 지금도 거주 중인 사택으로 죽은 자와 산 자가가 공존하는 전통 장례문화박물관이라는 점이 매우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박물관을 방문한 이들에게 차를 대접하기도하는 부엌에는 도자기, 목기, 청동 등 다양한 유물이 죽음과 관련 한 옛 제기와 명기(明器)들이 전시되어 있어 흥미롭다. 

▲쉼 박물관 박기옥 고문

본 전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따뜻한 빛이 내리쬐는 창가에 장사를 지낸 뒤 신주와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가마인 요여(腰輿)가 전시되어있는데, 이곳은 다름아닌 거실로 죽음과 삶이 공존 하는듯해 전시를 보고 있노라면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서 긴장되었던 마음이 차분히 내려앉는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이 박물관서만 볼 수 있는 법 한 귀한 유물이 있는데, 바로 부고장 뭉치이다. 30여 년간 모아진 부고장에는 망자들의 발병 사유 및 사망 날짜들이 기록되어있다. 지금같이 통신이 발달한 현대와는 달리 80년대 이전에는 종이 부고장에 등사로 인쇄를 해 보냄으로서 친지와 지인들에게 이승에서의 고별을 알렸다. 이 자료는 근대의 부고방식을 보여주는 귀한자료로 고요히 전시되어있다. 

▲쉼 박물관 입구(좌), 거실(우)

안방으로 들어서는 문에는 살림집이었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걸려있다. 아스라이 잠이 들며 다양한 꿈을 꾸던 침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영원한 꿈을 약속하는 화려한 꽃상여가 대신해 주인으로 놓여있다. 화려한 색채의 문양과 장식품들로 치장된 꽃상여에는,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기보단 망자를 보내는 염원과 이를 축제로 승화하려했던 선조들의 면모가 잘 이입돼 있어 차라리 아름답다. 어쩌면 가장 편안해야 할 안방이라는 공간을 전시실로 개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문화·사회적 공간으로 선뜻 내놓은 설립자의 고귀한 뜻에 존경을 표 하고 싶다.

안방을 나와 욕실로 들어가면 설립자의 미학적 가치관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전시가 펼쳐진다. 알록달록 나무 조각상들이 모여 아기자기함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며 관람객들은 즐거움과 동시에 우리 전통 상여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인 ‘꼭두’에 대해 보다 세부적으로 알 수 있다. 꼭두란 근대 초기까지 우리나라 전통 장례식 때 상여장식으로 사용되었던 나무 조각상이다. 꼭두가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저승과 이승을 잇는 초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망자의 어두운 저승길을 안전하게 모셔가는 안내자이자 이승을 등지고 떠나는 망자의 마음을 달래주며 연주와 묘기를 부리는 재주꾼들인 것이다. 다양한 꼭두들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샤워부스 안에는 이수일과 심순애 꼭두가 애증어린 스토리를 들려주고, 욕조 안 연꽃에서 피어난 심청전 꼭두들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심청전의 한 장면을 실감 있게 보여주고 한편의 이야기를 선사한다.

▲ 상여(좌), 욕실(우)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르면 하늘에 당도한 듯 비행 하는 새, 봉황, 용 등이 반겨주는 날 것 전시관이 나온다. 이곳에서의 새는 현실에서 벗어난 존재로서 더 높은, 더 새로운 세상으로의 비상을 상징하며,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은 한다. 하늘을 유유히 날아가는 새처럼 우리도 죽음을 맞이함과 동시에 짊어졌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염없이 떠날 수 있다면......, 회환이 없는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것이 꼭 두려움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밖에 박기옥 고문의 작품들과 키치(Kitsch)아트의 대가 제프쿤스(Jeff Koons)의 작품, 50여년을 수집한 세계 인형 컬렉션 등이 전시되어있어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넘나드는 신비로움과 스케일 또한 느낄 수 있다. 죽음만을 모아놓은 것이 아닌 그리움과 추억을 수집한 이곳에서 삶을 돌아보고 먼 미래의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아마도 삶에 대한 애정과 반추를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층 전시

기나긴 겨울이 지나면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온다, 우주의 진리와도 같은 윤회인 것이다. 죽음이 있다면 새 생명의 탄생을 꿈꾼다. 인간에게 있어 첫 시작을 축복하는 자리가 돌이다. 쉼 박물관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전통 돌잔치를 직접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죽음의 역설을 제공하고 있다. 고품격의 대 저택에서 맞는 전통 돌잔치를 원한다면 죽음의 미학에 더해 돌을 맞은 아이의 부모와 축하객들에게 색다른 인생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해 보고 싶다.

쉼 박물관. 죽음을 통해 축제의 역설을 체감하게 하는 특수박물관으로 삶의 참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쉼 박물관 사이트(www.shuim.org) 발췌 및 참조  
위치_서울특별시 종로구 홍지동 36-20 / 문의_02-396-9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