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제7사단,독서경연대회 수상작 ⑤
육군제7사단,독서경연대회 수상작 ⑤
  • 고무정 기자
  • 승인 2013.10.11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수작, 최주영 일병 <아버지를 읽고> 외 2

"장병들이 책과 친해지게 합니다." 책과 친해지면 꿈과 목표를 갖게 되고, 꿈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는 육군 제7사단(사단장 구홍모) 칠성부대가 펼치고 있는 <Army Book Start>운동의 취지다.(본지 5월8일자 인터뷰-이형주 육군 제7사단 감찰참모, 참조)

   

장병들이 군 복무 기간이 단순히 국가의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시간으로 자신의 인생을 허비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육군 제7사단의 <Army Book Start>운동은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군 복무기간동안  독서의 즐거움을 깨우치게하고 더 나아가 ‘청춘’의 장병들이 책을 통해 사유의 폭을 넓히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Army Book Start>운동은 책을 읽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후감을 통해 글쓰기 훈련은 물론 독서를 위한 동기유발과 군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도 선물한다.이형주 감찰참모의 제안으로 시작된 <Army Book Start>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독후감 경연대회는 지난 2010년을 시작으로 올 상반기까지 8회 째를 맞고 있다.지난 4.1일부터 6월30일까지 마감된 제8회 독후감 경연대회에는 일선장병을 비롯 군 간부들이 함께 참여해 총 500 여편의 독후감이 출품됐다.이 중 엄정한 심사를 거친 10편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본지<서울문화투데이>는 육군7사단의 <Army Book Start>운동을 지지하며 그간 책보내기를 통해 후원을 해오고 있으며 이번 제 8회(4. 1∼6. 30) 독후감 대회 수상작들을 차례로 게재키로 한다. -편집자 

수상자들이 부상으로 받은 소대원들과의 외출

독후감 우수 표창

본부근무대 일병 최주영
<우수작 2> 아버지를 읽고 - 본부근무대 일병 최 주 영                                     

나의 군 입대 하루 전날 우리가족은 오랜만의 저녁 외식을 마치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쥐고서 집으로 걸어갔다. 버스로 두, 세정거장 정도의 거리였지만 소화도 시킬 겸 평소 하지 못하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걷는 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버지께서는 그때까지도 실감이 안나 얼떨떨해 하던 나의 어깨를 묵직하게 감싸주시며 잘 할 거라 믿는다는 말뿐이셨지만 아버지와 나는 밤하늘 올려다보며 그렇게 한참을 더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입대한 후 한결같은 시간은 꾸준히 흘러 어느덧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중략....)

자기개발 시간에 두리번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무작정 뽑아들고 정신없이 읽어 내렸던 책이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라는 장편소설이다.

처음 책의 소개를 읽어보고 ‘췌장암 말기인 가장의 가족을 향한 희생과 사랑이라...’ 너무 뻔한 이야기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여 아버지의 알지 못할 깊은 사랑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읽는 도중마다 공감되기도 하고 나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것 같기도 해서 중간 중간 멍하니 생각에 잠겨야 했던 적이 많았다.

-주인공인 ‘정수’가 췌장암 말기임을 친구인 남박사에게로부터 알게 되었다.

시한부선고, 즉 곧 죽을 것임을 통보받은 것이다. 내가 4개월 뒤에 죽는다면..? 감히 상상도 못할 느낌이겠지만, 남은 날을 뭘 먹을까, 어디를 갈까, 은혜갚을 사람 혹은 원수갚을 사람은 누구인가 등의 생각들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정수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남겨질 가족들의 걱정이었다. 이것이 ’가장‘인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하나 자신만을 위할수 없는 사람.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아닌 남겨질 가족들이 걱정되는 사람. 아버지라는 단어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정수는 자신의 병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하루하루 외롭게 죽음의 공포와 씨름한다.

내가 정수였다면..? 우선 초조하고 불안할 것이다. 정수와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아까운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의미있게 보내려 애쓸 것이다. 군입대하기 전에도 매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고자 노력했었는데 죽음을 앞뒀다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수는 왜 말할 수 없었을까? 아니, 무엇이 정수의 입과 마음을 틀어막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정수의 가족들이 자신의 남편에게, 아버지에게 조금만 관심과 사랑을 보였다면 정수에게 안식처이자 도피처는 술과 남박사가 아닌 가족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중략...)

-정수는 딸 지원이의 원망과 분노 가득한, 감히 폐륜이라 할 수도 있을 편지조차 딸에게 받은 첫 편지라며 버리지 못하고 항상 가슴 안주머니에 고이 간직하고 다녔다. 그런 정수를 남박사는 이해하지 못하고 나무라기만 했지만 정수는 이 절절한 편지조차 딸의 사랑이라며 지원을 감싼다.

내게는 아직까지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이 하나 있다. 아버지가 너무 미웠던 적이었다. 그땐 나의 생각이, 마음이 어떤지는 아시려고 하지도 않으시면서 아버지만의 생각으로 나를 못미더워 하신다고 느꼈었다. 그날 저녁에 나도 이 책의 지원이처럼 아버지께 편지를 썼었다. 노골적으로 ‘나 정말 화났습니다, 아버지가 밉습니다.’ 다 드러내며 아버지 가슴에 못 박은 것이었다. 그 편지를 쓰면서는 아버지께서 편지를 읽으시며 내 마음을 알게 되실 거라는 생각에 기대감조차 들었지만 막상 아버지께 편지를 전하고 나니 정말로 후회스러웠다. 기대가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후회로 돌아왔고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면 정말 죄송하다고 싹싹 빌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퇴근하신 아버지는 나를 보시자마자 꽉 안아주시더니 어떤 말도 않으시고 “사랑한다.” 하시는 것이었다. 난 아무 말도 못하고 하루 동안 꼭꼭 눌러왔던 감정이 터지면서 울음만 나왔었다. 그렇게 펑펑 울고 아버지를 향한 마음은 다시 훈훈해 졌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지금까지도 그때의 아버지께서 하신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편지를 못 보신 건 아닌가 하며 일주일동안은 더 불안해했었던 나였다.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원의 행동이 너무도 공감이 되어서 나도 같이 마음조리며 마저 읽어 내려간 끝에 그때 아버지의 이유 알 수 없는 행동도 왜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감히 짐작도 못했던 그 마음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 이었던 것이다.

-갈수록 지쳐가는 정수를 보다 못한 남박사는 정수의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게 된다. 정수와 가족들은 뒤늦게야 깊은 오해의 골을 풀고 가족끼리의 마지막 온정을 느끼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통증에 정수는 결국 입원하게 된다.

수능시험을 치루고 난 12월 초에 아버지께서 친구분들과 약주를 드시고 겨우 집에 오시더니 화장실에 가셨다가 꿍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신 적이 있다. 어머니는 외가댁에 가셨었고 동생은 독서실에서 공부하느라 늦게까지도 나 혼자였었다. 화장실로 뛰어가 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술이 너무 과하셔서 졸음을 못 이기시고 쓰러지셨던 거였지만 그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물부터 앞을 가렸었다. 어렸을 땐 아버지가 슈퍼맨이었었다. 아빠랑 같이 있으면 무엇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께선 항상 든든한 우리가족의 버팀목이셨고 태산이셨다. 그런데 그 순간 아버지의 어깨가 왜 그리도 작아보이시던지, 모진 풍파 홀로 다 받아내시던 아버지는 이제 많이 약해지셨구나 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있을 때 잘하라’ 라는 유명한 말처럼 이제는 조금씩 내가 받아온 사랑을 갚아나가야겠다.

-입원해있던 정수는 남박사에게 안락사를 부탁한다. 정수는 자신을 위해 가족들이 병수발 드는 것이, 고생하는 것이 싫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가족들에게 못난 모습 보일 수 없다는 마음, 가족에게만큼은 끝까지 든든한 가장으로 기억되는 것이 그에겐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정수는 마지막을 위해 준비한 가족들 선물과 편지를 꼭 쥐고 고통 속에서도 애써 미소 지으며 영원히 눈을 감았다.

‘도둑도 자기 자식에게는 도둑질 하지마라고 가르친다.’ 라는 말도 있다. 자신의 자녀에게만큼은 떳떳하고 당당하고 강직하고픈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온갖 힘든 일 속에서, 많은 유혹들 속에서 가족을 위해 버티고 희생하시며 나의 뒤를 지켜주시는 아버지, 한번도 감사하다 말해본 적 없는 나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으실 수 있는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께 나라를 지키는 씩씩한 장병으로서 외롭게 혼자서 다 짊어지셨던 무거운 짐들 믿고 맡기실 수 있 록 군생활하는 2년이라는 시간을 먹고, 마시고, 졸고, 두드리는데 허비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멋진 아들이 될 것이다.
(후략...)


8연대 3대대 9중대 상병 박 종 혁
<장려1> 화에 대하여를 읽고 - 8연대 3대대 9중대 상병 박 종 혁

 “발끝 모읍니다! 시선 전방! 절대로 고개를 떨구지 않습니다! 교육생들 전체가 자세를 똑바로 유지할 때까지 PT체조 구분동작 연습은 계속됩니다. 자, 저 끝에 있는 교육생이 고개를 떨구었으니,

다시 구분동작 하나로 돌아가겠습니다. 구분동작 하나!”

연병장 여기저기서 식식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상스러운 욕설들이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나오는 마지막 반복 구호, 사람의 정신을 돌아버리게 만들 것만 같은 작열하는 태양, 온몸을 타고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불쾌한 땀, 코와 목구멍을 매캐하게 하는 흙먼지들, 교관과 조교들의 짜증스런 고함,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대는 온 몸의 근육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된 분노…. 유격체조를 받는 교육생들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유격체조는 대체 누가 고안해낸 걸까? 그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고 싶다. 우리는 왜 유격체조를 받아야 하는 걸까? 부질없는 짓이다. 왜 우리는 뜨겁디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까칠한 모래밭 위를 기어야 하는 걸까? 교관과 조교는 왜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나를 낳았을까? 왜, 왜, 왜…?

짜증이 나서 참다못한 교육생 하나가 미칠 듯이 피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조교가, 그를 보고 소리를 확 질렀다.

“40번 교육생, 똑바로 안 합니까! 기상! 저기 보이는 바위를 찍고 돌아오는데 10초! 실시!”

짜증이 날 대로 나있던 40번 교육생은,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조교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중략...)

이런 화에 대해 최초로 진지한 고찰을 했던 2천 년 전의 철학자가 있다. 바로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이다.

그는 ‘화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인간 역사상 최초로 ‘화’를 주제로 심오한 고찰과 성찰을 수행했다. 휴가를 나갔을 때 서점을 지나다 우연히 집어 들게 된 이 책은 얼마 전 분대장의 직책을 맡게 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이 ‘화’라는 생소한 주제를 다룬 것인 만큼, 나는 이 책을 통하여 평소에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나는 분대장의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미숙하게나마 체득할 수 있었다. 화는 어떻게 사용하고 통제하여야 하는지, 화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과연 화는 유용한지 등을 말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많은 일에 분노를 느끼고, 화를 낸다.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당하다고 느낄 때,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건이-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큰 피해를 끼쳤을 때, 육체적으로 힘들 때,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과오를 효과적으로 꾸짖고 교화하고자 할 때, 남들에게 인위적으로 강한 충격이나 자극을 주고자 할 때, 더디거나 미숙하게 진행되는 일에 순간적으로 강한 추진력을 심어주고자 할 때…. 이렇듯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다종다양하지만, 화의 종류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바로 어떤 목적 없이 순수하게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진실된 감정의 분노(화)와,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가짜 화(거짓 화)’가 그것이다. 전자의 화는 앞서 나왔던 유격훈련 교육생의 경우처럼 진실된 격정과 분노가 담긴 순수한 감정과 심리상태 그 자체이다. 이는 우리가 내는 화의 대부분의 경우로, 후자의 화에 비해 비교적 심각한 악영향들을 가져다준다. (후자의 화는 유격조교가 보여주었듯 감정적으로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일의 진행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효과적으로 끌어가기 위해서나 타인의 잘못을 꾸짖고 교화할 때, 혹은 더디거나 미숙한 일의 진행 상태에 추진력과 자극을 주고자 할 때 등 어떤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짐짓 화난 체 하는 ‘가짜 화’이다.(중략...)

이러한 종류의 화는 복합적인 원인들이 얽히고설킨 채로 복잡하게 발현되는데, 이는 군부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군인도 사람인만큼 화를 낼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의 화를 유발할 때도 있다. 바깥 사회에서처럼 군부대 내에서도 화를 유발하는 원인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로 인한 악영향은 바깥 사회에 비할 수 없이 심각하게 나타난다. 군대는 바깥 사회에 비해 조직적, 협동적인 성향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략...)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화는 국가적 손실은 물론, 병사 개개인의 인생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순간적인 화, 혹은 오랜 시간 감정이 쌓이고 쌓이다 축적된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생긴 화는, 군 내부에서 탈영이나 휴가 미귀, 폭행이나 심한 내무 부조리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실탄을 휴대하고 근무를 서는 최전방 GOP, GP 부대의 경우 순간적인 화가 총기난사나 오발사고, 자살, 고의적인 탄 분실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군부대 내에서의 화가 어느 누군가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을 남길 수도, 또 누군가의 인생의 흐름이나 방향을 크게 틀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중략...)

그렇다면 화를 최대한 자제하고 억제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더 나아가, 화를 완전히 내 마음 속에서 없앨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주변 전우들의 화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소멸시켜, 군부대 내에서 불필요한 손실들을 제로화 시킬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이 책을 다 읽어갈 때쯤 구체화되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떠올린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진실을 명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었다. 소대나 중대에 어떤 문제나 사건이 일어나 내 기분이 상했을 경우, 혹은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주변 전우들 간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할 경우가 왔을 때 (중략...)섣부른 판단은 유보한 채 신중한 자세로 진실(fact)만을 추구하고자 한 것이었다. 급하게 마음먹지 않고 차근차근히, 신중하고 진중하게 행동한다면 화는 절대로 발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중한 자세로 천천히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동안 화는 점차 사그러들어 곧 냉철한 이성이 올바른 판단을 내려줄 것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깨달은 두 번째 방법은, 후임들을 ‘건강하게 대하고 이끄는 것’이었다. 평소 온화하고 침착한 자세로 후임들을 대하고 가르치며, 겸손과 중용을 알게 하고, 더불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법을 후임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한다면, 분대 내에서 갈등이나 화가 유발되는 일은 차차 사라질 것이다. (중략...)

화를 억제하고 자제하기 위해 내가 생각한 마지막 방법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방법이다. 바로 ‘나 자신이 깊은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런 내 생각을 듣고, 어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화를 너무 억제하려고만 하는 것 같은데, 화도 도움이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적과 마주했을 때는 화가 필요합니다. 화로 인해 우리는 한계치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화에도 유용성은 있습니다.”

내가 감히 말하건대, 나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화에는 유용성이 없다. 적과 만났을 때만큼 화가 불필요할 때는 없다. 적과 맞설 때는 공격적인 행동이 잘 통제되어야 하고, 명령에 충실히 따라야 하며, 자유행동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침착한 상태에서 절제된 동작으로 냉철한 이성을 따를 때에서야 우리는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하고 승리를 성취할 수 있다. 이성을 잃은 채 화에 물들어 협동하지 못한 채 무절제한 행동을 하다 보면 우리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중략...)

화로 인해 목숨을 잃고, 가족과 친구를 잃고, 부와 명예를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눈앞의 작은 효용을 위해 언제 올지 모를 커다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더없이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화에는 아무런 유용성이 없는 것이다. (중략...)

2천 년 전의 철학자 세네카는 귀중한 깨달음과 경험을 전해주었다. 항상 마주하고 사는 문제인데도 막상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너무 뒤늦은 깨달음일까. 이렇게 커다란 깨달음을 얻고 나서 화를 최대한 억제시키고, 자제하며 생활하는 요즘. 나에게 느리지만 뚜렷한 변화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전우들,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밝아진 생활관 분위기, 한결 편해진 마음가짐 등이 내 피부에 생생히 와 닿는다. (중략...)책 한 권이 이렇게 나의 생활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신기할 뿐이다. 또한 나의 변화에 발맞추어 차근차근히 더불어 발전하고 있는 주변 전우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점차 주변 전우들에게로 지속적으로 확산된다면 8연대 3대대가, 더 나아가 7사단 전체가 전국 최우수 부대가 될 날도 머지않음을 확신한다.
(후략...)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일병 이경훈
<장려2> 동물농장을 읽고 -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일병 이경훈

작가에게 배워야할 다섯 가지.

아무 연고 없는 이 곳 화천(華川)에서 내가 軍 복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敵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들과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나는 21개월간 일시적으로 나의 자유를 절제하고 있다. 내가 살던 서울의 집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北韓)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전직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을 읽었다.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꿨던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했었는데, 이곳에서 공산주의, 전체주의의 실체를 보고 사상(思想)을 전향한다. 그 뒤로 反공산주의, 反전체주의 소설을 써냈다. <동물농장>은 동물을 등장시켜 공산·전체주의를 풍자한 작품이다. 그는 6.25남침(南侵)전쟁이 일어나기 5년 전에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미 이때 그가 추종했던 이념의 모순(矛盾)을 경험하고 공산주의의 종말을 예측했던 것이었다. 그의 예상은 40년이 지난, 1990년代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입증됐다.

- 동물농장과 북한 

작품의 시작은 인간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한 늙은 돼지가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이 주인 되는 세상’을 상상한 것으로 시작한다. 늙은 돼지가 죽자, 농장의 동물들 중 지적(知的) 능력이 있는 소수(少數) 돼지들이 ‘동물 유토피아’를 생각해냈는데, 이들은 이것을 ‘동물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농장 동물들의 반란으로 몇몇 돼지들의 생각에 불과했던 ‘동물주의 혁명’은 마침내 실현됐고, ‘동물이 주인 되는 농장’이 됐다. ‘동물주의’는 ‘네 발(동물)은 좋고 두 발(인간)은 나쁘다’는 이분법적 구호로 시작된다.

혁명 직후 소수의 돼지들은 수뇌부가 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인간은 적이다’고 말한다. 그리곤 계율을 만들어 그것을 돼지들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들에게 지키라고 한다. 돼지들은 ‘풍차’를 지으면 이 풍차가 동물들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했던 풍차는 동물들의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소수 돼지들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돼지들 사이에선 기득권을 얻기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거짓과 폭력을 일삼았다. 나중에는 그들이 적으로 규정했던 인간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돼지가 사람과 같이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며 평소 북한의 모습을 문학작품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돼지들의 권력을 향한 암투는 북한 공산 집단의 초기 갑산파, 연안파, 소련파 등의 세력 다툼을, 다른 동물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는 돼지들의 모습은 북한 권력층의 부패를, 돼지들이 제정한 ‘동물들이 따라야 할 계율’은 ‘김일성의 유훈통치와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돼지들이 적으로 규정한 인간과의 협상은 북한의 상투적인 방법인 화전양면(和戰兩面)과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돼지들은 완벽하다’는 주장은 ‘수령 무오류성의 원칙’을, 말을 듣지 않는 동물들을 탄압하는 모습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 돼지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풍차’는 북한 공산집단이 주장하는 이른바 ‘강성대국’과 같았다.
 

- 상상도 못 한 북한의 3代 세습

작품과 현실 사이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찾는 것도 재밌었다. 공산주의체제는 ‘유산자(有産者)와 무산자(無産者)’, ‘소수(少數)와 다수(多數)’라는 이분법 논리에 매몰돼 편을 가르고, 계급적 증오심을 유발시켜 다수의 대중을 선동해 권력을 찬탈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곤 공산당(黨)이라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 집단이 등장해 대중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공산당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고 주장하지만, ‘공산 기득권을 제외한 나머지들의 기계적인 하향 평등화’가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공산주의는 사회적 약자들을 선동해 정권을 차지하는 일종의 정치 사기극이다.
 
작품(<동물농장>)에선 공산주의의 미래를 생산력 없는 쇠퇴한 사회로만 끝냈지만, 현실 공산주의는 완전히 몰락했다. 또 작품의 ‘동물주의’ 사회에선 돼지가 권력의 부자(父子) 승계를 하지 않았지만, 북한 공산집단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3代 세습을 자행했다. 조지 오웰도 ‘공산주의에서의 세습’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중략...)

- 작가에게 배워야 할 다섯 가지

나는 이 작가와 작품을 통해 ‘경험’, ‘통찰’, ‘용기’, ‘반성’, ‘직업의식’의 중요성을 느꼈다.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융합돼 ‘조지 오웰’을 만들었고, 자신의 작품을 오늘날 세기의 명작으로 남겼다.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부족했다면 오늘의 ‘조지 오웰’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 다섯 가지는 우리가 작가로부터 배워야 할 핵심이다.

첫째, 경험의 소중함. 역사와 사건은 반복되므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예측하기 위해선 사건(event)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경험을 해봐야 한다. 경험은 판단의 근거가 되므로, ‘좋은 경험’, ‘나쁜 경험’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경험’은 앞으로의 판단을 내릴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하니 경험 자체가 소중하다.(중략...)
 
둘째, 통찰의 위대함이다. 통찰은 곧 앎이고, 안다는 것은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통찰하기 위해선 많은 것을 접하고, 시행착오도 겪고, 많은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 물리적으로 제한돼, 경험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돼 있지만 독서나 先人(선인)의 경험과 사례를 통해 온갖 제약에서 벗어나 통찰의 기초를 쌓을 수 있다.

셋째, 용기의 힘이다. 용기라는 것은 두려움과 망설임을 극복하고 마땅히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과감히 사상을 전향한다. 이는 잘못된 과거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 용기는 그가 사상적 반성을 할 수 있는 힘을 줬다.

넷째, 반성의 소중함이다. 반성은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조지 오웰은 용기가 있었기에 자신의 사상적 오류를 반성하고, 전향하는 결단을 할 수 있었다. 문학을 통한 공산?전체주의의 실체 폭로는 작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담고 있다.

다섯째, 직업의식의 중요성이다. 그가 글로써 공산주의의 실체를 폭로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라는 직업 덕분이다. 조지 오웰이 문학으로 공산주의·전체주의의 실체를 알릴 수 있었던 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있고, 작가라는 직업으로 목적을 실현하겠다는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중략...)

위의 다섯 가지의 출발점은 경험이다. 好不好(호불호)에 관계없이 軍에서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 다양한 경험은 다양성을 배우고, 차이를 인정하게 된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다. 자신만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동물농장>에서 나온 돼지들, 휴전선 이북에서 주민을 폭압하는 집단이 갖는 생각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계속해서 변화?발전해야 한다.

- 진실된 변화를 위해서

우리 몸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몸속에 수많은 세포가 분열과 변화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성장과 변화는 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번 독서는 작가에게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향이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 과감히 포기하고 노선을 변경해 진실을 알리는 용기 있는 모습은 내게 큰 반향을 줬다. 선(善)한 변화·발전을 위해 조지 오웰에게서 발견한 다섯 가지 가치를 내면화 하는데 힘쓸 것이다.
 
얼마 전, 김정은이 당(黨) 간부들에게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기>를 선물했다고 한다. 전 세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실패 사례를 답습하지 말고, 진실된 변화를 위해 <동물농장>을 읽고, 작가와 작품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대남적화(對南赤化)에 혈안이 돼 폭정을 일삼는 북한 공산집단도 조지 오웰처럼 ‘세계 이성을 향한 진실된 변화’를 추구할지, ‘민족 공멸의 길을 걸을지’ 하루 빨리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