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칼럼] 터키 박물관과 이에 투영된 우리 박물관 정책
[윤태석의 박물관칼럼] 터키 박물관과 이에 투영된 우리 박물관 정책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
  • 승인 2013.10.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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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문화학 박사(박물관학·박물관 정책)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8.31~9.22)와 주요 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 터키에 다녀왔다.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의 용광로, 독특한 정체성을 띄고 있는 터키는 페르시아, 아랍, 비잔틴, 오스만, 유라시아 문명에 기인한 장구한 역사 속에서 다양성 문화를 잉태해왔다. 근현대에 와서는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초대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 1881~1938) 대통령은 오랫동안 '유럽의 병자'로 열강들의 분쟁 대상이었던 오스만 제국은 종식하고 오늘날의 터키를 형성하였다.

오늘날까지 터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고 있는 아타튀르크('투르크인의 아버지'라는 뜻, 1933년 성(姓)의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국회가 수여함)의 개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슬람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는 현대 터키에 맞는 민족주의를 확립하고 새로운 터키 문화를 창달하겠다는 의지의 표방으로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에 따라 1971년 문화부가 창설되고, 주마다 박물관이 건립되었으며, 앙카라에 아타튀르크 문화센터 등을 설립하여 아타튀르크의 유럽식 문화개혁을 뒷받침해왔다.

또한, 오스만제국 때의 궁전과 이슬람사원의 상당수는 그 기능을 바꿔 박물관으로 활용하게 되었고, 페르시아에서 아랍, 비잔틴, 오스만으로 이어지며 그 부침을 거듭한 역사유적과 유물은 발굴·복원하여 이 역시 박물관으로 편입, 유네스코나 터키정부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유구한 역사와 지리적 특성, 정부의 정책이 맞물려 국토전체가 자연과 역사문화유산으로 산재한 거대한 박물관화가 된 것이다. 국토개발과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옛것을 바르게 보존하지 못한 우리의 근대화와는 사뭇 다른 정책으로 비교되는 지점이다.  

터키의 박물관과 우리 박물관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우선 양국 간 박물관에 대한 철학과 문화재를 비롯한 소장 자료의 인식차가 적지 않으며, 보다 직접적으로는 제도와 정책역시 상이하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차이를 볼 때, 우리와는 달리 터키는 개별 자료와 함께 유적지나 역사적인 건축물자체를 박물관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전설이 서서히 발굴되고 있는 트로이(Troy)나 에페소스(Ephesos) 등 고대 그리스 유적과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소피아 성당(Hagia Sophia Museum), 술탄아흐메드 모스크(Sultan Ahmed Mosque, 블루모스크라고도 불림) 등의 사원, 돌마바흐체(Dolmabahche) 궁전과 톱카프(Topkapi) 궁전 등이 그대로 박물관이 되었다. 신라의 타입캡슐 경주 남산이나 고려 천불 천탑의 전설이 스민 전남 화순의 운주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 군(群)을 아직까지는 박물관으로 편입하지 않고 있는 우리 박물관 법과는 다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터키는 이스탄불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또 한반도의 3.5배가 넘는 너른 국토에서 기이하게 생성된 자연현상, 예컨대 특이한 버섯모양의 응회암(凝灰岩, Tuff)군과 지하도시인 카파도키아(Cappadocia)지역이 자연과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과 같이 광범위한 박물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8천년 역사로 도금되어있고 금수강산이라고 할 만큼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여, 별도의 구획을 하지 않더라도 역사유적박물관이며 에코뮤지엄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도 대동소이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터키의 그것에 비해 개별유물을 인위적인 공간(건축물)에 놓아야만 박물관으로 인정하는 우리의 박물관제도는 개선의 여지가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소재지를 이탈한 박물관 자료는 왠지 부자연스러우며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또한 자연사자료를 중심으로 볼 때, 인위적인 환경에서는 자료의 보존에도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터키 역시 우리나라와 같이 많은 유적과 유물을 약탈당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트로이의 전설을 입증한 독일인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은 트로이를 통해 발굴한 유물을 공공연하게 독일로 반출하였으며, 유적지를 일부 파손하기까지 했다. 얼마 전 러시아에서 있었던 G20정상회의에서 러시아대통령과 독일 수상 간에 있었던 약탈문화재 환수에 대한 날선 공방은 이러한 사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터키 정부와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다. 비근한 예로 국민소득이 우리의 1/2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터키 국립박물관 관람료는 우리 돈으로 1만원이 훌쩍 넘는다. 비싼 관람료에도 마다않고 이스탄불 소재 박물관 앞에는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관람료는 단순한 금액이아니라 문화재보호와 자국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 정부 문화정책의 작은 척도라 할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낮거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과 일부 지자체의 공립박물관 관람료를 무료화한 것과는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번 우리정부는 문화융성을 중요한 국정과제로 하여 다양한 정책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문화융성 - 1회성 지원이나 무분별한 관람료 무료화 등 차원 낮은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우리문화재에 대한 자긍심을 우리스스로 갖게 하기위해 우리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과 문화유산의 중요성,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고, 문화유산 활용이 국격과 국가경제, 개인의 삶에 어떠한 가치인가부터 인식하게 하는 장기적인 정책이 수반되어야 함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