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파 박재희 춤50년 “강산연파” 첫 무대
벽파 박재희 춤50년 “강산연파” 첫 무대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3.10.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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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들 헌정 무대,11월 21일 아르코대극장

▲벽파 박재희 선생/청주대 교수
한영숙춤보존회 회장(現)이자 청주대 무용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무용가 벽파 박재희 선생이 춤 인생 50년을 맞아 뜻깊은 공연을 마련했다.

오는 11월 21일 아르코대극장에서 박재희 선생이 이끌고 있는 새암무용단과 (사)벽파춤연구회가 신작 “강산연파”를 박재희 ‘춤인생 50주년’ 기념공연으로 올린다.

‘강산연파’는 초연작으로, 일생을 춤과함께하며,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반세기를 달려온 박재희 선생의 춤인생 50년을 총망라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박재희 선생의 전작에서의 주요 장면과 캐릭터들을 제자인 박시종(박시종무용단 대표), 노현식(구미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안무자),김진미 (김진미 풍유무용단 예술감독),홍지영(홍지영 무용단 예술감독), 손혜영(손혜영 아정무용단 예술감독), 다섯명 안무가들에 의해 재창작 됐다.

‘강산연파(江山延波,The Eternal Waves of The land’)는 김종길 시인의 시(詩) ‘바다로 간 나비’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 모금의 생명수가 산속 옹달샘[새암]에서 태어나 계곡의 시내, 고을의 개천, 도읍의 강을 거쳐 망망한 바다에 다다르는 여정을 한 예인의 춤의 구도행으로 비견한 무용서사시로 풀어낸다.

태동(胎動)_새암, 태초의 숨결을 시작으로 △사랑 하나 △들녘△바람의 길△감로수△파동(波動)_바다, 푸르른 춤의 물결로 이어진다.

예술로서의 춤을 위해 한 예인(藝人)이 춤의 다함(궁극)을 추구하며 살아왔다면 그 삶은 구도(求道)의 길이다. 따라서 박재희 선생의 그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결코 끝날 수 없다.

작품 속 화엄경의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법(法_진리)을 구했다. 그 쉰셋의 선지식들은 문수, 관음, 보현보살 같은 초월적 존재도 있었지만 이 세상의 구도자들, 보통사람들, 차별 받는 천민도 있었다. 그 선지식 가운데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만난 광경을 묘사한 것이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이다.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불교미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는 세계적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벽파 박재희 선생의 공연의 한 장면
겨레의 터전은 금수강산이고 화려강산이다. 우리의 땅은 강과 산으로 이뤄졌다. 강산은 땅이라는 공간만을 상징하는 게 아니다. 강산은 그 강과 산에서 삶을 영위하는 겨레의 영속성 즉 시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나루 밀밭 길을 걷던 나그네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강산을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강은 흐르고 산은 멈춰있다. 인생도 춤도 그러하다. 우뚝 멈춰 있는 산이 있기에 끝임 없이 흐르는 강이 있으니...몸은 멈춰 있으되 마음은 흐르고 그 마음을 붙잡되 몸을 움직이는 게 춤일 것이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비롯된 한모금의 물은 계곡을 지나 마을, 고을을 감싸는 큰내[大川]이 되고 큰 도읍지를 이루게 하는 강이 되고 어느덧 온 세상을 품어 안는 바다에 다다른다. 한 모금의 물이 큰 바다[대해:大海]에 다다름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한 구도자의 득도행이고 큰 깨우침이다.

박재희 선생의 춤도 그러하다. 뜻 하나에서 비롯된 몸짓이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되어 만민의 한(恨)과 신명(神明)을 어루만지는 춤이 된다. 그 춤은 강산이라는 공간과 시간 안에 있다. 옛님들께 어어 받은 몸이 강산이라면 춤은 그 몸의 숨결이다.

벽파 박 재 희 (Park Jai-Hee) 선생은 이화여자대학교 및 同대학원을 졸업하고, 우리나라 무용계에서 홀춤으로는 최초의 인간문화재였던 故한영숙 선생으로부터 1973년에 태평무를 전수받았다.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승무·살풀이춤 등을 전수받아 1976년 전수발표회에서 문화재관리국장상을 수상하며, 1980년 승무 이수자가 됐다

 1982년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무용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박재희새암무용단을 창단(1985)해 수많은 국내·국외 공연을 통하여 한국무용의 발전과 세계화를 추구하는 한편 본인이 직접 무대에 설 때에는 언제나 한영숙류의 춤을 중심으로 전통춤만을 추어왔다.

또한 충청북도 무용협회장, 충청지역 무용교수연합회 회장, 청주시립무용단 안무자 등을 역임하면서 충북무용제, 충청무용제전, 전국대학무용경연대회 등을 개최하여 중부권 무용계의 기틀이 마련되는데 크나큰 공헌을 했다.


이가온 기자 press@s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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