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 가능성” 부산비엔날레 감독 선임 두고 파행 계속
“보이콧 가능성” 부산비엔날레 감독 선임 두고 파행 계속
  • 최영훈 기자
  • 승인 2013.12.04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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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 1위 후보 대신 2위 佛캐플랑 선임…무원칙 인선 비판

최근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을 둘러싼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릴레이 시위를 벌였던 부산문화연대는 비엔날레 단체 보이콧 가능성까지 언급했고, 문화예술 단체들이 4일 오광수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의 사퇴까지 촉구하고 나서며 사태가 더욱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부산문화연대 서상호 대표는 2일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통화에서 “원칙을 무시한 결정을 좌시할 수 없다”며 이같은 뜻을 밝혔다. 더 나아가 향후 더 많은 단체들과 연대, 전국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계획이어서 ‘비엔날레 감독 선정’에 대한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지역 문화예술단체 연합인 문화연대는 최근 부산비엔날레감독선정위원회에서 최다 득표를 했던 후보 대신 2위 득표자가 감독으로 선정된 것에 이의를 제기해왔다.

▲ 부산문화연대 1인 릴레이 시위(제공 부산문화연대)

한국큐레이터협회 또한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일찍부터 경고한 바 있다. 한국큐레이터협회는 지난 10월 30일 성명서를 통해 감독 선임의 부당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큐레이터협회는 “선정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하고 공동 큐레이터를 제안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1인 총감독제를 전제로 공모를 진행한 상황에서 뒤늦게 공동감독제를 제안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이를 철회할 것” 등을 요구했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전시감독으로 프랑스의 올리비에 캐플랑(매그미술관재단 이사장)을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조직위는 “그동안 감독 선정과 관련한 잡음이 원만한 해소되길 기대했으나 결단을 내리게 됐다”며 “캐플랑의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경력으로 볼 때 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기획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조직위는 올리비에 캐플랑이 서구 네트워크는 강한 반면 아시아 특히 한국에는 약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 또는 아시아에 정통한 한국인 큐레이터 1∼2명을 추가로 초대할 방침이다.

1위 후보에 공동 감독제 제안…논란의 불씨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전시감독 선정 과정에서는 비엔날레 내에서 추천과 선정을 분리한 두 개의 ‘위원회’가 활동을 했다. 우선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선정위원회를 통해 전시감독을 직접 선출해왔으나 내년 비엔날레는 추천위원회를 꾸려 전시감독을 선정했다.

추천위에서 30명을 추렸지만, 지역 미술인이 1명도 없자 오광수 운영위원장 등이 추가로 6명을 추천, 36명을 후보에 올렸다.

▲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선정된 프랑스의 올리비에 캐플랑
이어 전시기획서를 제출한 7명을 놓고 선정위원회 9명이 투표를 통해 1,2,3위를 선정했다. 1위는 5표를 획득한 부산 출신 전시기획자인 김성연 전 대안공간 반디 대표가, 2위는 3표의 캐플랑이 차지했다. 선정위는 3명을 최종 후보로 놓고 운영위에 제출했다.

이때 운영위원장은 1위 김성연 전 대표에게 단독 체제가 아닌 공동감독제를 제안했다. 김 전 대표는 이를 거절했고 2위 캐플랑은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3위를 차지한 국내작가도 공동감독제를 거절했다.

김 전 대표는 공동감독 수락을 묻는 오 운영위원장에게 지난 달 18일 편지로 “선례로 볼 때 선정위 결과와 상관없이 감독을 선정하는 것은 위원장 권한이라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며 “지역 출신 기획자의 능력에 대한 폄하가 아닌지 실로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2위 후보 전시감독으로 선임…비판 직면

결국 지난 2일 캐플랑이 전시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러면서 조직위는 캐플랑과 호흡을 맞출 한국인 큐레이터를 추가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조직위 관계자는 최근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전화인터뷰에서 “동서양의 조화를 위해 한국 쪽 네트워크가 약한 캐플랑과 함께 호흡할 한국인 큐레이터 1~2명을 추가 공동감독으로 초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결정에 문화예술계가 반발하며 사태가 커지고 있다. 부산을 기점으로 한 지역 미술계는 개최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공동감독제를 강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보이콧 가능성…국민 모두 사태 심각성 깨달아야”

부산지역 문화예술단체 25곳은 부산문화연대를 조직하고, 공공동감독제 강행을 강하게 반대하며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부산문화연대는 지난달 22일 조직위 운영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한 데 이어 지난달 26일 ‘부산 문화판,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며 의지를 표명했다. 또 지난달 29일 부산비엔날레가 주최한 국제 학술심포지엄 토론자 참석 거부와 함께 침묵시위를 진행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부산문화연대 서상호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감독이 여러 명일 경우 혼선을 빚을 수 있기에 1인 전시감독 체제로 가기로 당초 합의했으나 조직위가 갑자기 공동감독으로 바꾸고 추가로 6명을 추천하는 등 투명하지 못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며 “운영위원장의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서대표는 “앞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조직해 이번 사태를 온 국민이 알게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고는 “안티 비엔날레 개최, 비엔날레 보이콧 등으로 움직임이 번질 가능성도 있다”며 강력한 추가 대응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같은 반발에도 비엔날레 조직위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조직위는 감독 선정 과정에 이상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엔날레 조직위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선임한 것”

조직위 홍보팀 관계자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동서양 조화를 위해 운영위원장이 공동감독제를 제안했으나 1위 득표자가 감독직을 거부해 2위 득표자를 선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선정위원회에서의 투표는 전시감독 후보자 3배수를 뽑는 과정일 뿐 전시감독을 몇 명으로 할지 누가 할지는 운영위원장의 권한이라는 설명이다.

조직위는 “최종 3인의 후보를 정할 때부터 공동감독제를 계획하고 있던 일”이라고 말했다. 부산문화연대 측의 “갑자기 공동감독제로 바꿨다”는 내용과 상반된 주장이다.

▲ 오광수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장(사진=서울문화투데이 DB)

그러면서 “캐플랑과 함께 한국 사정에 밝은 한국인 큐레이터 1~2명을 추가 공동감독으로 초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후보 득표 1위 김성연 전 대표 대신 다른 인물을 내세우겠다는 뜻으로 또다른 공동감독을 선임할 계획임을 알렸다. 이에 일부에선 “1위 후보를 투표 결과대로 신임하고, 모자른 부분을 채울 다른 인물을 공동 감독이 아닌 형식으로 뒀어도 될 일”이라는 반박도 나오고 있다.

“오광수 위원장 사퇴하라” 단체 성명서 발표

▲ 부산문화연대, 부산민예총,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등 문화시민단체는 4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오광수 운영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제공 부산문화연대)

사태가 번지며 지역 문화·시민단체가 함께 오광수 운영위원장의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문화연대, 부산민예총,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등 문화시민단체는 4일 오 운영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이날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오 위원장 사퇴 등 4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불공정한 전시감독 선정 과정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인 오광수 위원장의 사퇴 ▲운영위원 총사퇴와 전문성 있는 위원으로의 재구성 ▲전시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부산시의 전면 감사 ▲부산문화연대의 요구를 곡해한 부산시와 부산비엔날레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오 위원장을 두고 “배경 설명도 없이 즉흥적으로 공동감독을 제안했고 결과적으로 공동감독제가 무산된 데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전시감독 선임 절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부산문화연대를 1위 후보자의 사적 세력으로 폄훼하며 운영위원장의 고유권한만을 주장했다”고 언급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와 함께 “4가지 요구사항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부산 예술인과 시민의 힘을 모아 부산 비엔날레를 보이콧하겠다"고 경고했다.

“제도권 인사인 캐플랑, 실험적 성격의 비엔날레와 맞지 않아”

이같은 단체 움직임 외에 다양한 문화예술단체와 인사들이 이번 부산 비엔날레 파행 사태를 두고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김창욱 부산음악협회 부회장은 부산일보에 ‘예술가의 발언이 필요한 때’라는 칼럼을 통해 조직위와 오광수 위원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부회장은 “선정 원칙과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결정된 사안”이라며 “오 위원장은 부산에 대한 문화적 기여도가 전혀 없이 지역에서 한자리를 꿰찬 인사로, 부산시가 지역문화생태계를 파괴했다”고 언급했다.

▲ 지난 11월 22일 부산문화연대 회원들이 부산 비엔날레가 합리적 의결기구가 되기를 촉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제공 부산문화연대)

서울에 있는 인사들도 이번 사태가 심각한 일임을 주지시켰다. 홍경한 경향 아티클 편집장은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전화 통화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감독을 선정한다고 해서 이번 사태가 깨끗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감독 선정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을 제기했다.

홍 편집장은 우선 선정 및 추천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제시했다. 그는 “다수결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순리”라며 “위원장 마음대로 감독을 선임할 거면 위원회를 꾸릴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캐플랑 감독 선임시 ‘동서의 조화’를 중요시했다는 조직위의 발언에 대해서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혀재는 동서양의 구분을 크게 두지 않는 분위기로, 동서양의 조화는 1990년대에나 어울리는 낡고 식상한 발상이라는 뜻이다.

이와 함께 캐플랑의 경력을 얘기하며 비엔날레와 맞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홍 편집장은 “현 매그미술관재단 이사장인 캐플랑은 제도권에서 쭉 일해온 사람”이라며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비엔날레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술계 또다른 인사는 오 위원장이 내정될 당시 ‘낙하산 인사 의혹’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줄타기로 선정된 위원장이 또 다른 줄타기를 만들었다”는 반응도 보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던 오광수 위원장은 지난 8월 부산 비엔날레 운영위원장으로 내정됐다. 지난 2월 이두식 전 운영위원장이 갑자기 별세함에 따른 인사였다. 그러나 오 위원장의 내정을 두고 부산 일부 단체들이 ‘낙하산’이라며 임명과정 투명 공개를 주장하고 나서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한편 부산 비엔날레는 부산광역시와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격년제 통합 미술제다.

1981년 부산청년비엔날레를 모태로 2001년 비엔날레로 명칭을 변경한 뒤 2002년부터 시작됐다. 부산청년비엔날레와 바다미술제,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 등이 통합된 미술 행사로 이번 8회는 내년 9월부터 11월까지 부산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