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국립현대무용단 증발 (Into Thin Air is...)
[공연리뷰]국립현대무용단 증발 (Into Thin Air is...)
  • 인순환 객원기자
  • 승인 2013.12.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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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인간의 본성인 사단칠정(四端七情)녹여낸 수작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예술감독의 두 번째 작품 <증발>은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이디트 헤르만의 작품이다. 추위를 맞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11월22부터 11월24일까지 토월극장 무대에서 공연됐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쌀쌀함을 안고 들어가서 만난 무대는 머릿속 온도를 아주 뜨겁게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공연 시작은 무용수가 정장 수트를 걸친 채 무덤덤 할 정도로 성큼성큼 걸어나와 오히려 관객을 구경한다. 이어 불만에 가득 찬 걸음걸이로 나온 교복 같은 차림의 여자는 투정 부리는 듯 한 자세로 무대에 털석 주저앉는다. 계속 점퍼차림, 가디건을 입었던가 또는 다 입은 것인지 불분명한 요사스런 차림의 빨간 뾰족구두여자, 머리 부스스한 츄리닝복, 수영복 심지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수녀복이 아니라 꽉 끼는 잠수복 같은 옷, 스님 등 등 뛰거나 걸어 모두 무대 앞에 앉았다.

불과 9명의 무용수가 사회 각계각층을 상징하는 이들이 다 모여 각자 이름을 소개하는 예(禮)를 갖춘다. “박성현입니다.” (어! 남자아니고 여자네) 이런식으로 소개하는데만 10분은 족히 넘었다. 음악은 전혀 없다.

 모두 무엇엔가 끌리듯 흩어졌다 모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물을 마시는 횡재도 하고 수영복 차람의 열연은 계절을 잊게했다. 그의 연인은 둘둘 말고 나온 미역을 뜯어 먹다 결국 껍질만 남기고 가버렸다. 그 뒤 이별의 엄청난 충격을 소화하느라 잔인하게 널부러진 미역위에서 절규를 온몸으로 풀어낸다. 관객도 당황스러울 만큼의 남녀가 포개고 있던 이전 장면의 19금 자세의 달콤한 정(情)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도 슬픈 그녀는 다시 군중에 흡수 되어 심한 고통에서 벗어나 사회에 잘 적응하는 암시를 보여준다.

반면 기다림의 아이콘 지경민은 세상에 언제나 열외의 사람이 있듯이 무대 한쪽 자리를 지키며 마치 무대와 별개인듯 온몸을 털고 있다. 그러다 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는다. 외출이라도 할듯 점퍼에 가방까지 둘러메었다가 다시 옷을 전부 벗고 속옷으로 결국 한 시간 내내 그 자리를 지키던 지경민의 동작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여자는 또 도전을 받는다. 비너스 동상이 깨지면 오는 충격이 바로 예쁜 여자를 파괴하고자 하는 남자의 본능을 건드린 것인가? 남자의 손에 범벅이 된 피가 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관객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시원한 빗줄기 같은 소나기로 흠뻑 적셔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처럼 비너스를 깨뜨리고 묻은 피가 소품이듯이 시원한 빗줄기도 진짜 물줄기가 아니라 보석처럼 반짝이는 ‘비즈’ 였다. 바닥에 고인 물 아니, 보석들은 호수의 은파 처럼 무대에 펼쳐진 환상적인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 순간 어떤 일을 겪더라도 살아있는 것은 축복이라던 독일 시인 휠더린의 말이 생각났다.

안애순감독의 첫 작품 코엘료의 <11분>은 무대가 보통사람 허리 밑으로 내려갔다가 반대로 위선의 계단으로 솟아오르는 등 무대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 충분한 감동을 주어 다음 작품은 <11분>을 능가 할 수 있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다행히 이번에 공연된 증발은 그런 우려가 기우였음을 보여주었다.

국립현대무용<증발>은 순수한 것이 오염되거나 깨지거나 사라지거나 추구하던 가치가 자기 손을 떠나면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예(禮)를 갖추거나 사람사는 정(情)이 있는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일찌감치 설파 해놓은 사단칠정(四端七情)이 들어 있다. 그들의 주장에는 인간의 모든 행위 심성을 일찌감치 장치해놓은 것이다. 이번 공연이 바로 살면서 절대 필요한 것들을 꼭꼭 집어서 무용이라는 예술로 승화 시켰다.

참고로 국립현대무용단은 2015년 프랑스 샤이오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게 됐다는 소식은 연말 무용계의 낭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