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구의 음악칼럼]새로운 음악
[정현구의 음악칼럼]새로운 음악
  •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
  • 승인 2013.12.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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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노바아르테 음악감독)
음악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예술운동이 낡은 전통을 뒤엎고 새 시대를 가져온 것은 몇 번이나 되풀이 되었다.

거슬러 올라가 옛날 기원전 500년 그리스에 이집트와 아라비아 등의 동방음악이 수입되어, 그 당시 성악을 주로 하던 그리스 음악을 기교적인 기악이 위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음악의 태동의 계기가 되었다. 이때 보수적인 그리스의 평론가가 피리 종류의 관악기가 주(主)가 되고 노래가 부(部)가 되는 이 동방의 음악에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스의 아주 오래전 이야기는 차치하고, 9세기에 시작된 다성 음악의 발상은 음악사상 가장 두드러진 변혁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 후 오랜 동안을 걸쳐서 대위법적인 다성 음악의 발달로 이어지고, 바하와 헨델에 의해서 최고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에 이어서 17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단성적인 선율 양식의 음악은 만하임악파를 거쳐 고전파 시대와 낭만파 시대에 이르게 되는데, 이 동안에는 음악의 조류에 급격한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17세기 초기에 작곡된 가극의 아리아도, 200년이 지난 후 슈베르트의 가곡도, 화성법에 의한 선율이 음악적 효과의 전경(前景)을 담당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즉, 이 시대의 음악적 특징은 화성에 의해 받쳐지는 단성 음악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20세기에 들어서서 일어난 음악에서의 변화는 정말로 급격하여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다조성, 무조성, 거기에 12음 음악 등은 모두 200년 이상 계속되어 이어져 온 음악이론의 전통을 뒤집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전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럽에는 전통적인 주류가 있었고 거기에 급진적인 개혁운동이 더해진 것이었으나, 우리나라의 작곡계는 60년대 이후로 각성과 더불어 온갖 유형의 작곡기법이 함께 엉켜서 그 방향성을 정확히 찾아보기가 힘든 지경이다.

거기에 우리의 전통음악과 유입된 서양음악이 합쳐지고, 또한 재즈와 구체음악(具體音樂), 컴퓨터음악까지 그 급진성의 향방은 한 시대를 지나보지 않고는 무어라 말할 수가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현 상태에서 일반 대중의 음악 애호도(愛好度)는 여전히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음악을 주축으로 하고 있음이 사실이고, 연주회의 프로그램이나 음반 시장의 매출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많은 작곡가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중들은 고전과 낭만주의 음악에 마음이 가는 것일까? 그 이유와 해답을 찾아내야만 현대를 살아가는 음악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 시대의 작곡가들의 곡에는 음악이라는 것이 담아야 할 그 무엇인가를 담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다. 그러나 단순한 소리의 나열을 음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음악은 무형의 유기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안에 감동이 숨 쉬어야만 한다. 그 안에 마음을 담아 청중으로부터 그것을 느끼도록 해야만 한다. 이제 진정 숨쉬는 가슴으로 음악을 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