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食道樂 5 <<소호정(笑豪亭)>>
예술가의 食道樂 5 <<소호정(笑豪亭)>>
  • 김종덕 창작춤집단 木 대표/한양대 강의교수
  • 승인 2013.12.25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가 내리는 서러운 주말이다. 시덥잖은 이야기나 하며 한 잔 하자는 사람도 없다.
삶의 굴레에서 맴도느라 주변 사람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악몽은 두렵고 혼자 보내는 주말은 외롭다.
내리는 비에 제 몸을 주체 못하는 단풍잎처럼 내 감정도 위태롭다.

▲소호정 전경

며칠 전 겨울비가 쏟아지더니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낙엽은 포도 위에 겹겹이 쌓여 차가 지날 때마다 볼품없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쉽고 순식간에 떨어져 볼성사납게 나뒹구는 낙엽이 애처로워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 잔을 청하기 위해 친구를 부르려하니 막상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삶의 굴레에서 맴도느라 주변 사람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비오는 날, 우린 습관처럼 파전과 막걸리를 떠올린다. 그 막연한 생각엔 그만한 이유가 있단다. 비오는 날에는 높은 습도로 인하여 기분이 우울하고 열이 많이 나게 되는데, 이럴 때 밀가루 음식이 열을 낮추어 몸을 식혀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전과 육전
특히 막걸리와 해물파전에 많이 들어있는 단백질과 비타민B, 아미노산이 만들어내는 세로토닌 성분이 탄수화물 대사 분비를 증대시켜 기분을 좋게 해준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비오는 날에 먹는 밀가루 음식은 몸에서 생체적으로 필요한 반응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재동에 가면 <<소호정(笑豪亭)>>이라는 국수와 모듬전, 묵무침을 맛있게 하는 음식점이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 부부께서 즐겨 드셨다는 소호정의 안동국시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고 여기에 현미 식초와 계란 흰자를 함께 넣고 반죽하는 것이 특징이다.

30도에서 두 시간, 상온에서 하루정도 숙성한 후 면을 뽑고, 국물은 한우 양지 살코기를 두 시간정도 끓여 그 맛이 담백하다. 굳이 비오는 날이 아니어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곳엔 미각을 자극하는 반찬이 따로 있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양념을 한 깻잎은 그윽한 향과 맛이 일품이다.

▲얼큰한 소고기국밥

이외에도 육전과 어전, 파전, 송이전을 모듬으로 내놓고, 갖은 양념과 함께 김 가루에 버물린 메밀묵은 온갖 재료의 맛이 입안에 살아있는 듯하다.

속이 허하거나 해장이 필요한 사람은 소고기 국밥이 제격이다. 양지 살코기에 양파와 무를 넣어 우려낸 소고기 국에 콩나물과 밥을 넣어 끓여주는데, 소고기 국밥은 한 여름 땀을 흘리며 먹어도 좋고, 추운 날 뜨거운 국물을 식혀가며 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개운하다.

호걸들의 웃음이 있는 집 <<소호정(笑豪亭)>>은 비오는 날에도 좋고, 추운 날 허기가 지거나 해장이 하고 싶을 때도 좋을 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질리지 않을 만큼 정성스러운 손맛과 넉넉한 그릇에 담아내는 음식은 마음을 여유롭고 기분 좋게 한다.

▲자꾸만 손이가는 밑반찬으로 나오는 깻잎찜
허기가 지고, 기분이 우울한 날, 소호정에서 포식한 후 배짱 좋게 웃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좋을 일이다.

고향의 맛 소호정(笑豪亭) 본점
서울시 서초구 논현로 27(양재동 392-11)
02)579-7282. www.sohoj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