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구의 음악칼럼]인상주의 음악 I
[정현구의 음악칼럼]인상주의 음악 I
  •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
  • 승인 2013.12.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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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노바아르테 음악감독)
우리는 통상적으로 음악을 시대적 조류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중세-르네상스-바로크-고전주의-낭만주의-근대-현대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음악사적 구별이다.

이 중 근대와 현대는 여러 유파가 혼재되어 있어 세분화하여 유파적 특색을 거론하게 된다. 그중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넘어서는 무렵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이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인데, 예술분야 중 회화와 음악에서 크게 대두되었다.

이번 회에는 우선적으로 인상주의 음악을 거론하고자 하는데, 인상주의 음악은 표제음악에서 태동되었다.

그 최초의 발상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완성은 베를리오즈를 거쳐 드뷔시 등의 활약에 힘을 입었다. 그 특징은 예를 들어 구름, 파도 또는 설경을 묘사하려고 할 때, 사물 자체가 이해의 대상이 아니고, 그것으로부터 받은 표면적인 인상과 그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정서나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에 표제음악과 혼동해서는 안 될 점은 표제음악은 음화(音畵)로써 이룰 수 있는 것으로 그저 사실적인 충실도에 집중하는 반면에 인상주의 음악은 그 사물을 둘러싼 심정적(心情的)인 분위기와 거기에서 발사되는 정서와 인상을 묘사하는 것이다.

인상주의 음악과 관계가 깊은 인상주의 회화는 애초에 점묘주의(點描主義 Pointilism)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화법에는 뚜렷한 선이나 윤곽은 없고 흐릿한 점이나 색깔로써 그림을 그려내는데, 결코 사실적인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상의 묘사이기 때문에 실제 사물을 세부적으로 정밀하게 그리는 것은 아니고 색깔이든 선이든 그저 꿈결같이 몽롱한 화법을 구사한다.

그림에서의 분명치 않은 묘사처럼, 인상주의 음악에서도 명확한 선율이나 엄격한 화성이론을 무시하고 많은 보조음이나 인접음을 쓰고 해결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온갖 불협화음을 써서 막연하고 모호한 기분의 묘사에 힘쓴다. 인상주의 예술에서의 이 원칙은, 이 예술의 원천이었던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문(詩文)에서도 동일했으며, 성격적인 사상의 윤곽은 모두 애매모호한 인상묘사로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인상주의의 색이나 선, 화성이나 선율이 선명하지 않았던 그 애매모호한 성질은 고전주의의 투명하고 선명한 표현법에 비해서 보다 많은 환상을 암시해 주며, 미학적인 견지에서 보아도 전혀 다른 효과가 주어진다.

거기에 이국적(異國的)인 특수한 표제나 내용을 가진 미지의 세계에서 제재(題材)를 구하여 꿈과 같은 묘사를 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은 막대해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인상주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같은 색체적인 발음체(發音體)의 악기가 가장 좋고, 선율선이 뚜렷이 나타나는 현악4중주나 아카펠라 합창 등은 적당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렇듯 선명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것이다. 아름다움의 표현은 다양하게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것이 더 많은 표현과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상주의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라 본다. 인간관계를 있어서 때로는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하고, 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이롭거나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서로를 대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때로는 두리뭉실 넘어가 주기도 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가 주기도 하고, 너와 나의 선을 명확히 긋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는 않을까?

가녀린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는 바람이 추위를 한결 더하는 이때 왠지 선이 날카로운 삶보다는 인상주의 음악처럼 조금은 모호해도 꿈결에 실려오는 ‘사랑노래’같은 삶을 따뜻하게 가슴에 품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