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우리들의 축배
[윤진섭의 비평프리즘]우리들의 축배
  •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 승인 2013.12.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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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지난 달 중순, 드디어 미술계의 오랜 숙원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문을 열었다.

이 역사적인 자리에 대통령도 자리를 함께 해 문화융성을 강조하고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새로 문을 연 서울관은 그 웅장한 모습과 첨단의 현대적인 시설로 말미암아 세계의 어느 곳에 내 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해 보인다.

서울 도심의 한 가운데 둥지를 튼 그것은 서울의 대표적인 화랑가인 인사동과 사간동의 문화벨트를 잇는 요충으로써 앞으로 미술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는 요람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서울관 시대의 개막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첫째는 뛰어난 접근성이다. 경복궁 바로 옆에 자리 잡아 국내외의 관광객은 물론 대중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둘째는 시설이다.

첨단의 시설을 자랑하는 서울관은 전시실이 높고 기능적이어서 미디어 아트와 설치 등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작품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시설의 영화관을 비롯하여 세미나실, 멀티프로젝트홀, 미디어랩, 미디어라운지, 국제화상회의실, 디지털도서관, 세미나실 등을 갖춰 다가올 예술 융합의 시대에 대비한 흔적을 역력히 느낄 수 있다.

셋째는 공간적 개방성과 편의시설의 확충이다. 건물이 높지 않고 수평적으로 배열돼 있을 뿐만 아니라 카페테리아, 식당, 아트숍, 주차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대중이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이 경사스런 축제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발생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준 충격파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영광스런 개관식이 끝나자마자 찾아온 미술인들의 항의 시위는 사태의 전말이야 어떻든 간에 그 본질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을 숙고하게 만들었다.

2만 3천명 회원을 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개막식에 초청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표면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넘어서 왜 미술인들이 분노를 표하며 집단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하는 심층적 원인을 감독관청인 문광부와 더 나아가서는 청와대, 그리고 당사자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직시하기 바란다. 그러한 집단행동의 도화선이 된 것은 특정 대학의 인맥에 의한 ‘관치행정(官治行政)’이고, 그 결과가 바로 이번 재앙의 진원지인 [시대정신전]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기 바란다.

[시대정신전]은 초대작가 중 80%를 특정대학 출신의 작가들로 채움으로써 ‘정실’ 전시기획의 논란을 야기했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 측의 해명에도 나와 있듯이 전시기획은 큐레이터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큐레이터는 고유의 권한을 향유하고 행사하는 만큼 전시에 대해 절대적 무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매우 고독한 ‘역사적’ 존재다. 객관적인 시각과 균형 감각이 큐레이터에게 필요한 미덕이라면, [시대정신전]은 그런 점에서 옳지 못한 선례를 남긴 전시였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대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신규 큐레이터 4명 중 3명이 관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는 관장의 직무와 관련된 윤리적 측면에서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다소 매끄럽지 못한 처사였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나 이에 물리적으로 대응한 미술인들이나 비합리적이며 반(反)이성적이긴 마찬가지다.

최근에 불거진 부산비엔날레 사태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비합리성과 반(反)이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대화의 부재다. 감독 선정을 둘러싸고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부산비엔날레 역시 이러한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소통의 길이 막혀버린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 만큼 ‘막가파’식의 조폭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거기에는 ‘윤리의 실종’이라는,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운 데서 오는 도덕불감증이 자리 잡고 있다.

한 쪽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축배를 들 때, 다른 한 편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만의 축배가 아니라 ‘우리들의 축배’이다.

* 윤 진 섭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과 졸업.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철학박사.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총감독,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국립현대미술관 초빙큐레이터(한국의 단색화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호남대 교수,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저서로 <몸의 언어>,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 <한국의 팝아트>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