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AICA 총회와 아시아의 미술
[윤진섭의 비평프리즘]AICA 총회와 아시아의 미술
  •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 승인 2014.01.3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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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나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직을 맡아 협회 살림을 하던 2005년에 아시아비평포럼을 창설하였다.

1994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총회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렸는데, 당시 한국의 전권 대표로 참가하면서 느낀 바가 컸기 때문이다. 전 세계 60여개 지부에 약 4, 5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제평론가협회는 세계 유일의 국제적인 미술비평 단체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동양 사람은 나와 동경대학 미학과 교수인 츠카모토 박사, 태국의 미술평론가인 아피난 포샤난다 등 단 세 사람 뿐이었다. 꽃문양이 화려한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고 나타난 흑인 한 사람은 나중에 인사를 나누고 보니 모 인류사박물관의 부관장이었다. 당시 콩그레스가 열린 강당에는 머리가 노란 서양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그 속에 남미 회원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국제미술평론가협회의 콩그레스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공식 3개 국어로 진행된다. 본부가 파리에 있는데 이는 1948년 협회의 운영이 창립 초부터 유럽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아시아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다섯 개 지부에 지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약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총회 참석을 마치고 돌아온 이듬해에 나는 홍콩에서 발행되는 ‘Asian Art News'紙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미술평론가들의 결속과 권익 옹호를 위한 독자적인 협회 창설의 당위성을 역설했는데, 말하자면 ‘아시아비평포럼’은 그 대안이었던 셈이다.

환갑을 넘긴 국제미술평론가협회의 역사에서 총회가 아시아에서 열린 것은 단 세 번에 불과하다. 1995년의 마카오 총회를 필두로 1998년의 일본 총회, 2004년의 대만 총회가 그것이다. 올 10월에 수원과 서울에서 열리면 네 번 째가 되는데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숫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회가 전 세계 회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동안 신장된 아시아의 힘 때문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을 기점으로 아시아의 경제적 위상은 높아져 갔고 이처럼 호전된 상황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이 세계 미술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AICA KOREA 2014>의 주제는 ‘미궁에 빠진 미술비평(Art Criticism in a Labyrinth)>이다. 이 주제의 설정 배경에는 비평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비평 환경에 대한 성찰의 의미가 담겨있다. 즉, 변화하는 문화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비평이 제 목소리를 회복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적 삶에 기여하느냐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것이다.

이 주제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소주제로 구성돼 있다. 1. 분열된 사회에서의 예술과 미술비평, 2. 소셜 네트워킹 시대에 있어서 비평적 글쓰기, 3. 아시아 현대미술에 관한 담론 등이 그것이다.

이 소주제들 가운에 눈길을 끄는 것은 맨 끝의 아시아 현대미술에 관한 것이다. 이는 아시아비평포럼이 그 동안 추진해 온 아시아의 비평적 쟁점에 관한 담론의 구축이 세계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아시아를 ‘타자화’해 온 서구의 목소리를 아시아에서 직접 들어보고 도출된 문제점을 상호이해의 관점에서 풀어보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이후 아시아에서 나타난 수많은 비엔날레들이 여전히 서구의존적인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논의는 매우 유익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미술과 자본의 관계는 논의의 핵심이 될 전망이어서 세계 미술이 서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 상황에 대한 분석과 함께 비평과 미술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총회의 성공 여부는 미술인들의 관심과 성원에 달려 있다. 작가, 비평가, 미술사가 그리고 미술에 관심이 있는 대중의 참여가 절대적인 만큼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 윤 진 섭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과 졸업.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철학박사.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총감독,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국립현대미술관 초빙큐레이터(한국의 단색화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호남대 교수,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저서로 <몸의 언어>,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 <한국의 팝아트>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