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단색화의 세계화를 위한 포석
[윤진섭의 비평프리즘]단색화의 세계화를 위한 포석
  •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 승인 2014.03.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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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2천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밤, 당시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인 [한일현대미술의 단면전]을 기획하던 나는 도록의 교정을 보는 중이었다. 이 전시는 한국의 단색화와 일본의 모노하(物派)를 한 자리에 모은 것으로써 한일 현대미술 교류사에 남을 역사적인 것이었다.

‘역사적’이라고 한 이유는 양국 현대미술사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 두 미술 운동이 한 자리에 함께 하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걸쳐 두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이 미술 현상을 30여 년이 흐른 시점(時點)에서 다시 돌아본다는 것은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뛰는 매우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쓴 서문 한글 원고를 다 읽고 나서 드디어 영문 번역본에 눈길이 가는 순간,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역자는 ‘단색화’라는 용어를 ‘Korean Monochrome Painting’으로 번역을 했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그 앞에 ‘Dansaekhwa’라는 고유명을 써 놓았다. 이 땅에 ‘Dansaekhwa'라는 명칭이 최초로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지만, 스스로 벌인 일에 책임을 지는 문제는 말이 쉽지 녹록치 않았다. 그 후 10여 년간 나는 단색화에 관한 글을 스무 편 가까이 썼고, 그 결실은 2012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Dansaekhwa : Korean Monochrome Painting]으로 맺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 전시의 초빙큐레이터로서 나는 전시와 학술세미나를 통해 단색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국립현대술관 주최의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해외 인사는 두 사람이었다.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의 명예회장인 헨리 메이릭 휴즈와 아트인아메리카 편집장인 리차드 바인이 그들이다. 그 중 헨리 씨는 발제문에 ‘Dansaekhwa’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리차드 씨는 ‘monochrome painting'이라는 명칭을 썼다. 그런 그가 그해 말에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이열 교수의 전시 서문에 'Dansaekhwa movement’라는 용어를 사용, 관점의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금 구글(Google.com)에서 'Dansaekhwa‘란 단어를 검색하면 약 2천개의 항목이 뜬다. 단색화(Dansaekhwa)는 목하(目下) 세계를 항해 중이다. 국내의 정상급 화랑인 국제갤러리는 작년에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에 [Art of Dansaekhwa]란 타이틀로 단색화를 소개해서 호평을 받았는가 하면, 뉴욕에 소재를 둔 알렉산더 그레이 어소시에이츠 갤러리는 2월부터 두 달간에 걸쳐 [Dansaekhwa:Korean Monochrome Movement]전을 연다. L.A 소재 메이저 화랑인 블럼 앤 포 갤러리 역시 올 하반기에 단색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해외의 유명 미술관 몇 곳에서 단색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왜 이처럼 뒤늦게 세계가 단색화에 열광하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단색화, 그 중에서도 특히 70-80년대의 초기 단색화가 지닌 예술적 우수성 때문이다. 서구의 미니멀 회화와는 다른 한국 고유의 미학적 특성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인 것이다. 정신성, 물성(촉각성), 수행성(행위성)은 한국 단색화의 미학적 특성으로서 시각중심적인 서구 미니멀 회화의 그것과는 엄격히 구분된다.

일단 단색화가 부상하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던 화랑들이 1세대 단색화 작가들에 대해 과열된 유치 경쟁을 하거나, 유사한 전시들이 난립 현상을 보이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호사다마(好事多魔)에 지나지 않고 정작 중요한 것은 용어의 사용이다.

 'Dansaekhwa'는 나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나는 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 누구나 이 용어를 사용하여 ‘단색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려주기 바란다. 그것이 나라를 위한 길 아니겠는가?


* 윤 진 섭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과 졸업.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철학박사.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총감독,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국립현대미술관 초빙큐레이터(한국의 단색화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호남대 교수,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저서로 <몸의 언어>,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 <한국의 팝아트>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