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독도]옛 ‘우산국’을 찾아서(3)
[특별기고-독도]옛 ‘우산국’을 찾아서(3)
  •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 승인 2014.04.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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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현대로>의 흐름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우산국’이 신라에 귀복되면서 우리나라가 된 후 오늘의 울릉도와 독도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고려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한 때는 무릉(武陵? 울릉)과 우산(于山-독도)이 함께 개척되는 듯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발전의 길이 등한시 되면서 점차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진①[「삼국사기」권 제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조(條)

 

「...맹주도감청사 ‘이양실’이 사람을 울릉도에 보내 색다른 과실과 나무를 취하여 전해 바쳤다....」(고려사권 15)에서 보듯이 함께 노력 하는 듯 하였으나 얼마 지나질 않아 정책이 바뀌어 옛 우산국 땅에는 관심마저 없어질 만큼 빈 섬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때를 같이하여 동북부의 ‘여진족’과 동남족의 ‘왜족’들이 저희들 섬인양 쳐들어와 해적질을 하기에 이른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이 우산국 사람들은 거의 날벼락을 맞기에 이른다.
그러나 조선왕조로 바뀌면서 한 때는 나라에서 깊은 관심을 갖는 듯도 했었다.

 

 

사진② 「고려사」권17
「우산도 울릉도를 ‘무릉’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은 현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가 높이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으로 갈 수록 점점 낮아진다. 날씨가 맑으면 봉우리 꼭대기 나무와 산아래 모래들을 역역히 볼 수 있다...」(‘신증독구여지승람’ 권 45 강원도 울진현 산천 조(條) 1481년경)

 

그런데 조선왕조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정의 관심마저 멀어지고 심지어 호칭까지도 별나게 바뀌기에 이른다.
즉 「세종실록」권 40에서 보면 종래에는 ‘우산’이라 부르던 오늘의 ‘독도’가 가지도(可支島)로 바뀐다.

 

「...26일 ‘가지도’에 가 본 즉 ‘가지도(물개-海구)’ 다섯 마리가 나와 있으니 이것이 마치 수우(水牛)와 같아서 포수가 두 마리를 쏘아 잡았노라......」

위 기록은 당시의 강원도 관찰사 ‘심보현’이 울릉도 수토관(搜討官) ‘한창국‘ 등과 함께 배를 타고 울릉도의 외변 도서 및 지금의 독도 주변을 탐색한 후에 정조(正祖)에게 상진한 보고서에 의한 것이다.
이 밖에도 「성종실록」에는 삼봉도(三峰島)라는 기록도 있다.

 

 

사진③ 「신증동국여지승람」

 

「...삼봉도의 경차관(敬差官, 우산도를 지키고 있는 옛날의 해양경찰) ‘박종원’이 때때로 침입하는 도적의 무리를 탐색하기 위하여 이 섬에 파견되었다..... 」
위와 같은 경위를 본디의 ‘우산’오늘의 ‘독도’의 호칭이 바뀌고 있었다.

512년 우산도 (于山島)
1471년 삼봉도(三峰島)
1794년 가지도(可支島)
1881년 독도(獨島) 등의 바뀜이다.

이처럼 독도의 명칭과 그의 유래까지도 여러 가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독도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된 연대의 확인도 자세하지가 않다.
한말 광무 10년(서기 1908) 3월 5일의 울릉군수의 보고서에 ‘독도’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고종 18년(서기 1881년)을 전후하여 울릉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침입벌채를 엄금하는 한편, 직접적인 개척착수 아래 울릉도민들이 이름붙인 것으로 유추하게 된다.
지금도 울릉도 본토민들은 흔히 ‘독섬’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본디의 ‘돌섬’에서 ‘독섬’으로 바뀐 것을 한자음으로 ‘독섬’이 ‘獨島’가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다.
한편 해방3년 후인 1948년 ‘조선사 연구회’가 간행한 ‘사해(史海)’를 보면 독도의 전경사진을 특집으로 실을만큼 동해 한가운데의 우리 섬인 울릉도와 독도의 중요성을 광복 후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사진④ [「獨島領有權解說」(독도영유권해설) <근로학생사>가 1954년 간행한 책]

 

1954년 「근로학생사」간행의 ‘황병기’의 「독도 영유권 해설」에서는 지난 일제강점기
한?일 간에 있었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증거 문헌들을 찾아 우리나라 동해 바다의 어로구역을 밝히는 등 불행했던 과거사들을 구석구석 찾아내고 있다.
이처럼 선인들이 노력과 피땀을 다하는 가운데 오늘에 이르러 있는 것이 바로 ‘독도’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