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기획]예술계대학 교수 밥그릇챙기기에 학생들은 뒷전
[Issue기획]예술계대학 교수 밥그릇챙기기에 학생들은 뒷전
  • 이가온 ㆍ고무정 기자
  • 승인 2014.04.0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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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경쟁자 두지않기, 자리 독식으로 강사들 돌려막기

 예술계 대학의 여러 문제점들이 정점을 찍고 있다.최근 또 다시 불거진 ‘한예종 사건’으로 그동안 곪아있던 예술계대학들의 문제점들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본지는 그동안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검은거래;’ 의혹이 이는 대학 정 교수 임용문제와 관련해 짚어 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우리는 흔히 교육을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먼 장래까지 내다보고 세우는 큰 계획’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정권이 바뀌면 어김없이 정책이 바뀌니 결과에 대한 평가나 예측이 불가능하다. 교육감과 정권 따라 4년, 5년마다 교육정책이 갈아엎어지니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십년대계나 이루면 대단한 일이겠다.

▲최근 열렸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자정과 쇄신 기자회견장 모습. 교수들의 잇단 문제가 불거지자 급기야 총장이 나서 사과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과거 대학설립과 학과에 무분별한 인·허가를 해주던 교육부가 이제 와서 학교를 통폐합하겠다고 난리다. 또한 경쟁력이 없거나 정원 미달, 혹은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폐지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단다. 정책의 수립은 신중해야 하고, 문제가 발견될 시 장기간의 보안과 수정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모델계의 대부라 일컬음을 받는 분을 최근 만난 적있다. 그분의 사회, 문화, 정치, 역사, 미래에 대한 흥미롭고 예리한 분석과 통찰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분은, 대학교에서 모델학과를 개설하고 모델학으로 학위를 주는 것은 너무 과도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전문대학이나 아카데미에서 단기간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될 것을, 대학교에서 장기간 발목을 묶어두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그는 대학교에 모델학과가 존재하고 모델학위를 주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덧붙였다.

어디 모델학과 뿐이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립예술학과를 보유한 나라도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예술대학은 수요예측은 고사하고 사학재단의 자본축적의 도구로 이용되었고, 과잉공급으로 인한 실업자 양성소가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50% 이상 학과가 폐지되거나 정원을 감축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한 때 국 공립과 사립 합쳐 전국에 70여개의 독립무용학과와 77개에 달하는 음악학과, 135개의 미술학과가 존재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문화예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같이 교육부의 무분별한 승인으로 과잉공급된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취업이 낙타가 바늘구멍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려운 예술계 졸업생들은 교수들로부터 지시받은 온갖 일탈과 부정도 마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은 울타리 안에서 자기 영역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자의 눈밖에 벗어나면 안 된다. 괘씸죄에 걸리면 곧 퇴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득권자인 교수의 권한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교수의 연구실적에 학생들이 동원되어 재능 약탈뿐만 아니라 비용도 부담해야하는 불합리한 구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학문에 뜻이 없고 예술단체를 목표로 한다면 굳이 모두가 대학에서 경제적 비용부담과 경직된 교육에 얽매어 있을 필요가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일부 학생들은 자기계발보다 학점을 담보로 한 교수들의 횡포에 감히 맞서지도 못하고 졸업할 날만 기다리는 것이 현실이다. 기득권자의 횡포가 그 뿐이랴. 품앗이 형태로 서로의 티켓을 교환하여 학생들에게 강매하므로 공연비용을 학생들이 부담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실적 쌓기 공연에 동원되어 동기유발이나 자극도 받지 못하는 그들은 좋은 작품을 선별할 능력조차 없다.

지원금 수혜뿐만 아니라 의상비와 티켓판매는 제자들이 감당하니 관객 동원을 위해 초대권이 남발될 수밖에 없다. 초대권을 남발하면 그 피해는 독립예술가들에게 그대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독립예술가들은 지원금 수혜도 힘들지만 소액을 받아 극장대관, 조명, 의상, 무대감독, 출연, 광고, 홍보비용까지 감당해야 하니 빈익빈(貧益貧)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후학 양성과 연구에 힘을 쏟아야 하는 교수들이 기금을 받아서 공연하는 현실도 모순이지만 학생들을 대거 동원하고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S대학교에서 성악과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교수 임용을 하는 과정에서 점수조작과 비리폭로 등으로 어느 정교수 자리는 공석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다. 정교수의 부재는 학생에게 있어 안정된 교육의 여건이 박탈됨을 뜻한다. 새로운 정교수를 채용하지 않아 경쟁이 축소된 정교수 집단은 발전하지 못한다. 고인 물이 썩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는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공석인 정교수 자리를 강사가 대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육의 질은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유럽에서는 교수 1인당 지도학생 수를 15명에서 16명을 초과하지 않지만, 한국은 100여명이 넘는 학생을 혼자서 지도한다. 학생을 나누지 않고 독식하려는 의도이다.

현재 전국에 충원되어야 할 무용학과 한국무용과 교수만 해도 대표적으로 서울 소재 국립 H대학 2명, 사립 H대학 1명, 또 다른 국립 H대 1명, 지방 사립 K대학 1명 등 전국적으로 상당수를 충원해야 되지만, 교수들의 이해관계나 학생들을 독차지 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학생들은 4년 내내 지도교수와 개별면담이나 독대조차 힘든 상황이다.

정교수들의 입시비리와 사적인 행사에 학생들은 동원된다. 교수의 눈 밖에 벗어나는 대학원생의 논문은 통과되지 못한다. 규정보다 열 배가 넘는 논문심사비를 강탈하고, 사적인 심부름까지 시키는 곳이 대학서열 1위라는 S대학교에서 자행된다. 서울의 국립대학인 S대가 이 모양이니 지방과 사립대학은 말해 무엇하랴는 분위기다.

교수의 이런 부정과 비리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교수가 입시생 과외를 하면서 과다한 레슨비 책정과 수억 원대의 악기판매, 금품수수가 발각되어 감사를 받거나 검찰에 입건되고, 심지어는 자살로 이어지며, 교수이자 중요무형문화재인 예술가는 자신의 제자와 아들을 예술 감독으로 위촉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을 만나 청탁과 직접 심사에 참여해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이 꿈꿀 기회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후배나 제자들의 미래는 아랑곳 않고, 그저 자신들의 이권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들 같다. 교육이 백년대계인 것처럼, 예술도 단시간에 성과를 내는 곳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교나 양식을 통해 미적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발전돼야 가능한 것이 예술이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대한민국 예술의 미래는 암담하다. 급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윤리적 기초위에 원칙을 세우고 정당한 대우, 공정한 평가와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비상식이 통용되는 현재 예술계 앞에 이러한 상식은 퇴색된다.

“학생은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이다. 교수가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비용을 지불하고 그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는 고객으로라도 대우해주기 바랄 뿐이다. 학생은 교수의 자본축적의 도구나 소모품이 아니다.”라는 한 학생의 목소리가 그저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