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국립오페라단,<라트라비아타>
[공연리뷰] 국립오페라단,<라트라비아타>
  • 인순환 객원기자
  • 승인 2014.05.0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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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실패 딛고 오페라 중 가장 사랑받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연했던 오페라가 바로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였다. 라트라비아타의 뜻은 ‘길을 잘못든 여인’이다. 처음 들여올 때 일본 사람들이 ‘춘희’로 번역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동백아가씨’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오페라 원제목 <라트라비아타>로 정하게 됐다.

이 오페라는 1853년 3월 6일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됐는데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실패의 원인은 주인공 비올레타역의 소프라노가 가냘프야 하는데 자동차와 부딪히면 차가 찌그러질 것처럼 건장한 여장부형이어서 비극이 희극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작 ‘리골레또’나 ‘일토레바토레’를 크게 앞서지는 못한다는 평가마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엔 이 <라트라비아타>가 공연 횟수나 인기가 전작을 능가하는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이다. 그 이유는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강력한 호소력과 늘 신선미를 유지하고 있는 감미로운 음악덕분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라트라비아타>를 국립오페라단이 (4월 24일~4월 27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 홀에서 올렸다.

이번에 ‘라트라비아타’를 지휘한 파트릭 랑에(Patrick Lange)는 독일 출신으로 영국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독일 뮌헨극장,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에서 활동한 촉망받는 지휘자다. 이번 예술의전당 오페라홀 무대에서도 만족스런 연주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아흐노 베르나르(Arnaud Bernard)는 무대 벽을 온통 검은 색으로 연출했다. 일부러 맞춤은 아닐 텐데도 '세월호‘로 인한 요사이 국민적 애도 분위기와 절묘하게 잘 맞았다. 검은 벽 무대의 검은벽 세면은 모두 무대 출입구이자 파티장 출입구로 문을 여는 순간 뿜어져 나오는 조명이 무대 바깥쪽에서 무대 중심을 비추게 했다. 특별한 장치 없이 테이블 하나일 뿐인데도 검정 배경이 의상을 더욱 돋보이게 하여 파티의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라트라비아타’는 주인공 비올레타가 오페라의 성패를 좌우 할 만큼 비중이 높아 누가 그 역을 소화 할지 매우 기대했었다. 비올레타역에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캐나다 출신 조이스 엘 코리(Joyce El-Khoury)와 러시아 출신 리우바 페트로바(Lyubov Petrova) 였다. 1막에서 비올레타 리우바 페트로바가 지나치게 움직이는 동선이 많아 노래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아 걱정했었다. 다행히 ‘아 아마도 그대 였던가’에서는 마리아 칼라스나 레나타 테발디 조차 어려웠던 곡을 무난히 소화했다.

2막 무대에서도 비올레타와 이태리 출신 이반 마그리(Ivan Magri) 테너 알프레도는 환상적인 듀엣이었고, 그 못지않게 아버지 제르몽 역할의 바리톤 유동직도 기대 이상으로 멋진 곡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비올레타에게 떠나기를 말하는 제르몽과도 서로에게 집착하는 장면이 전혀 없이 그야말로, 쿨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요즘 세대를 반영한 연출로 눈길을 끌었다.

2막 피날레 무대에서 보여주는 샹들리에는 크기 때문에 조명을 많이 포기하여 꽤 어려운 여건인데도 무대천정만이 아닌 벽면을 활용한 방법으로 조명을 매우 잘 처리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샹들리에를 보면서 30년 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를 훤히 밝혀주던 그 샹들리에가 떠올랐다. 그 밑에 서면 다른 세상에 온 느낌 그대로 비올레타가 사람들과 파티장에 있는 무대도 충분히 그렇게 보였다. 거기서 아름다운 ‘잘가거라 지난날이여’를 들려준다.

오페라에서 비올레타가 사랑하는 남자주인공 알프레도의 아버지 부탁으로 일부러 행방을 감췄던 그녀는 오랜만에 파티장에서 알프레도를 만난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알프레드는 다른 남자 때문에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런 비올레타가 원망스러워 그녀에게 돈을 뿌리며 연인에서 비즈니스 관계였다는 잔인한 통고를 한다.

이 광경을 본 아버지 제르몽이 알프레도의 지나친 행동을 꾸짖었다. 그러면서 비올레타의 진심을 알고도 침묵하겠다는 노래는 가슴을 저미었다. 더 큰 비극을 품은 두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정에도 여전히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이 가혹한 분위기를 모르는 척 무대에 가득 찬 파티 참석자들에게 화려한 빛을 골고루 비춘다. 수많은 사건을 지켜보는 도시의 야경처럼 무덤덤하다.

3막에서 비극이 고조되어 가는 순간 갑자기 실내에서 눈 내리는 설정이 빈 공간을 채워 눈물이 눈발이 되어 흩날리는 묘사로 슬픔을 극치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곧이어 눈발이 반짝임으로 바뀌면서 사랑의 환희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여져 어색하게 느껴졌다. 비올레타의 심리적 비극을 노래하기 위해 낮은 음부터 슬픔을 끌어올리는 작곡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중간 음부터 설정되었던 부분도 조금 거슬렸다.

대체로 모던한 연출로 의상의 화려함과 조명이 돋보이는 무대였지만 이렇듯 몇 가지 옥에 티는 있었다. 사실 라트라비아타 오페라의 비올레타역이 워낙 어려워 명반조차 없다. 다만 세라핀 지휘의 모노판 정도를 즐기는 매니아들은 있다.

<라트라비아타>, ‘동백꽃아가씨’ 원작자 뒤마피스는 아버지가 방탕 속에 슬쩍 스친 인연인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로 인정받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작곡가 베르디는 부인과 두자녀의 죽음으로 패닉상태를 겪은 후이다.

비련의 주인공 비올레타의 실제 모델이었던 마리 뒤플레시는 그 시대에 타락한 사회의 희생양이었다. 이처럼 <라트라비아타>는 농도 짙은 비극적 배경을 갖고 있다. 지금의 우리도 국민적 아픔을 격고 있는 때라 아픔에 대한 공감대가 크다. 국가적 아픔이 있던 일제시대에 처음 라트라비아타가 공연됐을 때도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처음 오페라 공연을 했던 당시 만해도 이처럼 멋진 오페라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기도 전 나라가 없을 때도 공연했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를 국립오페라단 단장도 공석인 가운데 역사 깊은 오페라를 8년 만에 볼 수 있었다. 실로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