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자연으로의 회귀, 글로벌 노마딕 프로젝트의 의미
[윤진섭의 비평프리즘]자연으로의 회귀, 글로벌 노마딕 프로젝트의 의미
  •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 승인 2014.06.06 2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지금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세월호 참사 때문에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고 있다. 전 국민이 약속이나 한 듯이 가무를 금하고, 불과 며칠 동안에 소중한 생명을 잃고 저 세상으로 떠난 사망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특히 사망자와 실종자의 대부분이 천진난만한 청소년들이란 점에서 이번 참사는 더욱 우리의 분노를 자아낸다. 무엇이 우리의 분노를 이토록 자극하는가?

거기에는 생명 경시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의 소중한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가 전도된 우리의 무딘 의식이 이처럼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이번 사태는 인재임에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이 자리 잡고 있다. 거대한 바다의 힘 앞에서 인간이 만든 선박은 한낱 낙엽에 불과하다. 그 엄청난 자연의 힘을 무시하고 거역할 때 인간은 무참하게 보복을 당한다. 인간의 기술만능주의가 불러온 참극은 이제 우리들로 하여금 자연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다. ‘스스로(自) 그러한(然)’ 자연을 오늘 이 자리에 다시 호출하는 일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공주는 마치 뱀이 똬리를 틀 듯 완만히 굽이쳐 흐르는 금강을 끼고 형성된 백제 시대의 고도(古都)이다.

1981년 여름, 일단의 젊은 작가들이 금강 백사장에서 만나 자연의 품에 안기기로 약속을 했다. 자연미술 그룹 ‘야투(野投)’는 그렇게 탄생했다. 원래는 농구 용어이나 ‘들에 몸을 던진다’는 의미로 새기면 벌거벗은 채 들에 몸을 투신하는 행위가 마치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잡힌다.

고승현, 임동식, 유동조, 강희준, 이응우, 고현희, 정장직, 이종협, 나경자, 신남철, 이선주, 허강, 전원길, 조충현, 강전충 등 야투의 초기 멤버들과 나중에 그룹에 참여한 정연민, 이선원 등으로 구성된 ‘사계절연구회’는 1년 중 네 차례에 걸쳐 자연의 품에 안기는 원초적 행위를 벌여 나갔다.

서울에서는 이보다 조금 앞선 1981년 겨울 ‘대성리전’ 멤버들이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대성리 화랑포 북한강변에 모여 자연의 축제를 벌였다. 김정식, 홍선웅, 강용대, 임충재, 문영태 등 [겨울, 대성리 31인전]의 멤버들은 기존의 화단이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도시의 미학을 관철해 나간 것에 반발해 자연의 품으로 귀의했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야투의 활동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초기 대성리전 멤버들의 자연에 대한 발상이 대부분 개념미술로 통칭되는 70년대 미술의 연장선상에 서 있었던 것에 반해 야투는 보다 원초적인 몸짓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차별을 이룬다. 야투의 멤버들로 이루어진 <사계절연구회>는 철저히 몸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자연물을 이용하여 작업을 했으며 그것은 자연과 철저히 동화되는 원초적 행위였다.

그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의 변화에 주목하여 산과 들, 강, 바다로 나아갔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자연이 베푼 산물과 주변 환경을 이용하여 자신의 몸(body)을 자연에 동화시켰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의 예술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전원길)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러한 균형감각은 인간문명을 바라보는 선명한 관점에 뿌리박고 있었다. 80년대 초반 당시는 생수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으나 30여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는 물을 사먹는 시대를 살고 있다. 30년이란 세월은 사물에 대한 관념을 바꿔놓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그 기간 동안에 오염된 땅과 오염된 수질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꿔놓았다.

야투의 멤버들이 보여준 선구자적인 혜안은 도도하게 흘러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로 접목되면서 급기야는 <야투 아이(Yatoo-I International Project>를 탄생시켰고, 그것은 급속한 속도로 국제적 규합을 이루어 세계적인 연결망을 성사시켰다.

글로벌 노마딕 프로젝트(Global Nomadic Project)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모태로 탄생한 신생 대규모 ‘자연미술(Nature Art/(Jayeonmisul)’ 프로젝트이다. 자연의 불가항력적인 힘을 세계 도처에서 확인하는 오늘날 얼마 전 한반도에서 열린 2주간의 글로벌 노마딕 프로젝트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


* 윤 진 섭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과 졸업.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철학박사.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총감독,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국립현대미술관 초빙큐레이터(한국의 단색화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호남대 교수,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저서로 <몸의 언어>,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 <한국의 팝아트>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