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 승인 2014.06.2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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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손정희는 도조(陶彫)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피카소가 “상상한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고 말한 것처럼, 그가 뿜어내는, 얼핏 저 비현실적이며 몽환적으로 보이는 상상의 세계는 흙으로 빚어 구워 내는 순간 현실적인 존재가 된다. 그것이 예술가의 힘이자 예술의 권능이다. 예술가는 수면 위를 박차고 오르는 제비의 날렵한 몸짓처럼, 상상의 세계에서 거침없이 산다. 현실적인 여러 제약과 선입견은 예술가에게는 상상력의 발휘를 저해하는 독소에 다름 아니다. 작가 손정희는 그런 것들과 싸우는 투사에 비견될 수 있으며, 그가 흙으로 빚어내는 저 일견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형상들은 싸움에서 이긴 전리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 굳이 신 중심의 기독교 사회에서 전통적 미의식과 싸운, 그래서 초현실적 지평을 연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손정희가 보여주는 저 개인적 서사(narrative)의 세계는 의식의 사회적 억압에 대한 항거인 것이다. 
 
 
 손정희 작업의 테마는 일상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자녀들에게 ‘백설 공주’ 등의 동화를 읽어주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의 결말을 비틀고 풍자하는 것, 바로 이것이 작업의 컨셉트로 자리 잡게 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업의 다양한 소스들을 동서고금에서 찾게 되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은 다시 작가적 상상력의 개입을 거쳐 변형되고, 마침내 ‘자기화(自己化)’의 과정을 통해 작품으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그것은 가령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 형상의 사티로스처럼, 상체는 인간, 하체는 짐승의 형태를 띤다. 손정희는 사티로스의 전설을 형상화한 중세 이후의 수많은 고전들처럼 알레고리를 주무기로 현실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나무꾼과 선녀’, ‘신데렐라’, ‘해님 달님’, ‘라푼젤’, ‘천일야화(Seherazade)’ 등등의 이야기들은 종종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 혹은 비틀기의 대상이 된다. 그의 작품은 실로 수많은 알레고리들의 다발이다. 손정희는 억압된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탈출과 비상의 이미지를 날개와 거미줄로 상징화하며, 마찬가지로 이러한 알레고리적 장치들은 반인반수의 꼬리와 새의 화려한 깃털로 나타난다. 여기서 손정희의 작업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분석되어야 할 필요는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가 일련의 사회 현상에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데렐라 콤플레스’를 비롯하여 탐욕, 이중인격, 성도착, 남근 숭배 등을 근간으로 한 다양한 몸 담론이 그의 작업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특히 ‘신데레라 콤플렉스’는 현재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른바 성형수술의 유행 현상과 관련이 깊다. 미를 향한 여자들의 뜨거운 갈망이 수많은 인조 성형미인을 낳고 있는 사회적 현상은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를 통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실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와 알레고리를 통해 손정희는 사회와 역사를 비판적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거리두기의 형태는 빨간 사과를 등 뒤에 감춘 백설공주와 이를 바라보는 역대 대통령들의 조상(彫像)에서 극대화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보는 자의 생각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현실에 대한 우의(寓意)라는 점에서 톡 쏘는 듯한 풍자가 담겨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조상들이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캐리커쳐 풍에 의존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손정희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적인 정조(情調)는 연민과 해학, 기다림(願望), 비상 등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주지하듯이, 소포클레스의 비극 ‘이디퍼스 왕’의 배면에 흐르는 정서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소포클레스는 그것을 자신의 추악한 운명에 관한 진실을 안 이디퍼스 왕이 자신의 눈을 후벼 파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이 극은 비극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답다. 손정희 역시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넘어 아름다운 인간의 감정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