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아트페어 대안이 필요하다.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아트페어 대안이 필요하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4.07.1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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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화랑에서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미술정보를 독점하는 화랑이 최고였다. 소장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면서 이익을 챙겼다. 지금은 정보를 독점할 공간이 없다. 애호인들 또한 화랑에 갈 이유가 없다. 아트페어에 가면 가격 경쟁력과 눈에 맞는 작품을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다. 할인 폭도 높다. 아트페어에서 구매자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아트페어 많아도 너어무~ 많다. 아트페어는 가능성과 입지가 애매한 미술가와 지명도가 애매한 화랑이 만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두 세 개의 아트페어에 참여가 가능하다. 아트페어가 많아지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다. 팔리면 좋은 작품인가 하는 시장논리가 은근히 고개를 들고 있다. 아트페어가 범람하다보니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으로 오인될 수 있는 시대다. 좋은 작품이 팔리는 것에야 뭐라 할 말 없지만 소위 말해 검증되지 않은 작품이 지인과 빽과 사람 유명세와 권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팔리는 것에 제동을 걸어본다.


팔리는(?) 문제에 대해 어디서부터 해결해야할지 막막하다. 조건 결합의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그랬다. 아트페어 현장에 작가가 있어야 하는가, 없어야 하는가?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어느 화랑 대표는 전시장에 있을 필요 없다하고, 어느 화랑에서는 미술가가 전시장에 안 나온다고 난리했다. 참으로 고전적인 역사적 사실로 멀어져 갔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미술가는 갤러리에서 작품 거래를 잘해 주길 기대한다. 화랑도 그러고 싶어 한다. 그런데 미술 애호가들은 작품 함부로 사지 않는다. 작품이미지가 눈에 찰 때까지 바라보기만 한다. 꾸준한 페어활동을 지켜볼 뿐이다. 여기서 묘한 충돌이 일어난다. 미술작품이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서로가 눈치를 본다. 미술시장에서 거래가 잘 된다는 것은 굳이 미술가가 있을 이유가 없다. 미술가가 있어야 거래가 되는 것은 미술작품보다 미술가를 보고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일 뿐이다. 여하튼 유명한 미술가도 아니면서, 미술작품이 유명하지도 않다면 그때까지 무엇인가를 하여야 한다.


유명한 미술품과 유명한 화랑은 아무 걱정 없다. 스스로가 스스로 선택하여 자생한다. 여기서 아트페어 범람의 문제가 발생한다. 적당한 화랑과 적당한 미술가들의 협업에 의해 페어에 참여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애초부터 존재한다. 처음부터 상대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미술가는 화랑에서 팔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화랑은 미술가가 팔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자. 화랑에서 팔 자신 있으면 매입해서 움직인다. 미술가의 작품이 잘 팔리면 절대적으로 갑의 입장이다.


적당한 화랑과 적당한 미술가들의 참가비로 아트페어를 진행하는 형국이다. 화랑에서는 십시일반 작가들에게 경비를 갹출하여 부스비 충당하고, 참여 작가는 지인들의 인간성을 이용하여 충당하고, 추최측은 참가비 받아 손해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미술시장의 변화는 분명이 감지된다. 개인화랑에서 집단 판매로 전환되는 것 또

한 현실적인 문제다. 팔리는 것과 본전생각에 급급하여 좋은 작품에 대한 평가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 돈 없어도 가능했던 미술활동이 갈수록 불가능해 진다. 미술관에서는 경제력 있는 미술가들의 거대한 작품이 수용되고, 아트페어는 부스비 지불 하면서도 지인판매가 되는 미술가들이 각광 받는다.
젊고 가난해도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마케팅 공간을 마련할 방법은 없는가? 예술가의 작품은 아파트의 일부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영구임대주택과 같은 등급이 아니다.